스스로 일으킨 전쟁에서 결국 미군에 투항하면서 자신들을 원폭 피해자로 자처함으로써 전범국이란 책임에서 벗어나며
그 역사적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일본
일본은 반성은 고사하고 부끄러운 역사를 지우는 데 급급하다는 사실을 잇달아 확인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으로 응징되어야 했는데, 원자탄의 피폭국이란 명분으로 오히려 전쟁 피해국으로 분장하여
그 책임을 회피했다. 그러고서 미국의 비호 아래 50년대의 한국전쟁, 60년대의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의 병참기지가 됨으로써
전후 복구에서 더 나아가 부국으로 크게 성장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한국에 대해, 그 발전에 대해, 더 억누르지 못해 안달하는 듯 보였다.
드디어 외교관으로서 인격과 국가의 격을 의심하게 만든 소마 히로히사의 극우적 망언.
나는 여기 이르러 일본의 한국에 대한 억지가 혹 한때의 자기네 식민지였던 나라의 비약에 대한 콤플렉스 일 것이다.
일본이 자랑하던 자동차 산업도 미국과 동남아에서 한국에 추격당하고 21세기 산업으로 각광받는 반도체와 배터리에서는
오히려 우리가 크게 앞선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서 ‘선진국’으로 만장일치 공인받은 한국의 역동적 성장에 그들은 놀라고 질시하며 두려움을 느꼈다.
겉과 속의 다름이 책임지지 않는 태도를 가져오고 그 무책임이 반성도, 비판도 희석시키며 혁명이란 생각도 못 할 일로 만든다.
우리나라가 지난 60년 동안 몇차례의 혁명 혹은 그 비슷한 유사 변혁과 권력 교체를 통해
국민적, 정치경제적,사회문화적 도약을 이루어 오늘에 이르렀는데
돌이켜보면 일본은 천황의 ‘만세 일계’를 자랑하며 전후 60여년 동안을
중국과 별로 다름없는 ‘일당독재’적 자민당 체제 속에서 ‘갈라파고스 현상’에 갇혀 온 것이다.
게다가 상징적 표상인 천황, 문벌로 나뉜 내각, 완강한 관료로 삼분된 권력 구조 때문에
새로운 정책 선택 결정권과 그 결과론적 책임을 서로 미룬다.
“일본은 미국의 품 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판단에서 정상회담에서는 미국 눈치를 보며 기를 못 펴는 ‘소국 근성’의 일본에 비해
한국인들이 세계화에 일본보다 훨씬 더 우월하게 대응”하고 있다
그 무력감, 무책임, 무반성의 실재가 무더위 속에서 펼쳐진 2021년의 ‘2020 도쿄올림픽’에서 재현된 것이다.
세계 최대의 행사를 유치했음에도 정작 그 유치 공로자는 개회식에 불참하고 천황은 ‘축하’를 전하지 못하는,
그럼에도 8월 땡볕과 코로나 델타의 긴급사태 속에서 무관중 경기로 강행하는 책임을 아무도 묻지도, 지지도 않았다.
세계를 위한, 미래를 향한 어떤 비전도 보이지 않은 폐회식에서 나는 왜소해진 일본을 또 보았다.
이런 일당 장기정권 체제의 정치적 무책임 구조가 한국을 오염시키지 않기를 나는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