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원래 소위 말하는 국뽕(배타적 국수주의)가 강한 민족은 아니었다
쭉 한중으로부터 문물을 전수받아 살아 왔기 때문에, 근저에 가진 열등감이
어느 시점에 폭발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서구와의 접촉을 통해 이루어졌다
처음은 蘭學을 통해, 실사구시 사상이 조금씩 스며 들면서
후에는 그것의 반동으로 유학자들에 의해, 국학 운동으로 전개되었는데
과도한 국뽕으로 지금의 일본 신화가 만들어졌다
당시 중국, 朝 鮮에서는
사변적 합리주의를 탈피해, 주자학 이전의 선왕的 유학 본질론으로 초점이 옮겨가고 있었는데
그에 영향을 받은 일본의 유학자들
특히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에 의해 집대성된, 국학은
기존의 일본 유학자들이 이전의 유학의 방법론으로, 유학을 否定하고, 일본의 神道를 이용해, 황국사관을 세우게 된다
즉, 유교 불교를 배척하고, 순수한 일본만의 것을 찾으려 했고, 특히 [고사기]의 연구를 통해, 천황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일본 신화를 체계화했다
(그래서 지금도 일본인은 유학은 나쁘고 낡은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지만, 원래는 일본도 유교의 강한 영향 아래에 있던 국가다)
원래 유학에서 말하는 통치자(王)은, 仁義에 의한 지배만으로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지만, 그것을 상실하면
지배권력의 정당성도 상실된다고 보므로, 역성혁명도 大義를 가지는 한 정당하다
일본의 국학은 王(천황)을 神的 존재로 격상해 버리고, 학문이란, 곧 皇朝의 학문을 가르키는 것으로 정립하므로써
일본식 국뽕 이론인, 황국사관을 만들고
거기에 찬조하기 위한 각종 창작행위가 이루어 지며, 일본의 한중에 대한 열등감을 해소하기 위한 작업도 꾸준히 이루어 진다
일본의 종교는 불교가 지배적이었는데, 토속적 神道 사상과 융합되어 있었다
여기서 국학자들은 神道와 불교를 분리하고(神佛分離)
神道만이 참된 진리인 것처럼 하여, 불교를 탄압한다 (廢佛毁釋 - 불교적인 것을 훼손하고 승려의 특권을 박탈) - 조선의 억불 정책을 비난하지만, 일본도 에도 후기에는 비슷했다
결국 모든 이념의 근간에는 천황(神의 칙명을 이행하는 자)이 자리잡게 되면서
일본인은 그의 신민이라는 , 특권적 의식과 일본은 특별이라는 선민의식이 싹트기 시작한다
그 전통이 근대화를 거친 지금의 시대에도 일본인의 마음을 지탱하는 뿌리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민주화가 이루어진 현대 사회에서도, 일본 사회는 진정한 의미의
평등사상, 개인주의가 뿌리 내릴 수 없다.
내부적으로는 천황(神)을 정점으로 하는 위계질서, 외부적으로는 일본에서 태어나서 좋았다는 선민의식이 일본인의 思考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여왕개미의 페로몬에 일사분란하게 복종하는 개미 제국을 연상하게 만드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