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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장막을 걷고 들어가, ‘태평양전쟁 책임자’인 히로히토(裕仁) 전 일왕(1901~1989년)의 사진을 콜라주한 회화 작품을 지나자, 오른쪽 저편에 ‘그 소녀’가 앉아 있다. 검정 치마와 흰 저고리, 단정히 두 손을 모은 단발머리 소녀. 그 옆의 빈 의자는 어서 와서 앉으라는 것 같다. 소녀 뒤로 비치는 할머니의 그림자. 그리고 “그 숭고한 정신과 역사를 잇고자 이 평화비를 세우다”라고 적힌 평화비.

일본군 위안부나 일왕, 평화헌법 9조 등 일본에서 금기시하는 내용을 다뤘다는 이유로 전시를 못했던 작품 17점이 설치된 전시실을 찾은 관람객들의 발검음은 한결같이 소녀상 앞에서 멈췄다. 소녀像이 전시된다는 걸 모르고 왔다가 실물을 처음 접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나고야에서 전철로 1시간 정도 떨어진 기후 (岐阜)시에서 왔다는 단바라 미호(65)도 같은 경우다. 그는 “실물을 직접 보고 가슴이 아팠다”며 “소녀像이 평화로 나아가는 이미지로 널리 퍼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올봄 오키나와현립예술대를 졸업한 야마시타 가나코(23)는 친구의 두살배기 아이를 안고 소녀像 옆에 앉아봤다. 그는 “소녀像 옆에 앉아보니까 나와 같은 크기의 소녀, 가까운 존재로 느껴졌다”면서 “소녀像은 남겨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소녀像이 이곳에 전시되기까지는 먼 길을 돌아와야 했다. 소녀像 축소 모형이 2012년 도쿄도미술관에 전시됐지만, ‘정치적 표현물’이라는 이유로 나흘 만에 철거됐다. 2015년 1월 도쿄 후루토(古藤)갤러리에서 열린 ‘표현의 부자유전’에서 지금의 소녀像이 전시됐다. 당시 소녀像은 ‘비밀작전’ 하듯 일본에 들여왔다. 그후 일본 시민들에게 맡겨졌지만, 받아주겠다는 박물관이 없어서 소극장 공연 등에서나 가끔 선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