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인간의 생식행위가 생리적 필요나 쾌락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고 순수하게 이성적인 계획으로만 아이가 태어난다면, 인류는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그럼 사람들은 다음 세대에 태어나는 자식을 오히려 가엾게 여기고 그들에게 인생의 짐을 떠맡기는 것을 꺼려하지 않을까?
어린 시절 우리는 다가올 삶을 바라볼때 우리는 마치 막이 오르는 극장에서 들뜬 마음으로 공연 시작을 기다리는 아이들과 같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다는 것은 축복이다.
만약 미리 내다볼 수 있다면 아이들은 삶이라는 형벌에 선고받고도 아직 그 판결의 뜻을 모르는 죄 없는 죄수 처럼 보이겠지
그럼에도 모든 사람은 노년까지 살고자 한다. 삶이란 과업이다. -쇼펜하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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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이성적 판단만으로 번식한다면 인류는 유지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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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생식은 역사적으로 생리적 욕망, 사회적·문화적 압력, 쾌락 등 다양한 요인으로 얽혀 있습니다. 순수하게 이성적 판단만으로 자식을 계획한다면, 아이를 낳는 ‘이유’가 철저히 계산적이 되고, 삶의 가치·책임·자원의 한계 등을 감안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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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 관점에서 보면, 이성적 판단이 우세하면 아마 출산율은 급격히 떨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왜냐하면 아이를 낳는 것이 ‘아이에게 가해지는 고통’과 ‘부모가 부담해야 할 책임’을 명백히 계산하게 되므로, 이 선택은 쉽게 내려지지 않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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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인류의 지속 가능성은 위태로워질 수 있습니다. 극단적으로는 ‘인간이 스스로 삶의 고통을 면하려는 의지 때문에 번식을 거부하는 사회’가 형성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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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삶이라는 짐’으로 인식하게 되는 윤리적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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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신 것처럼, 만약 모든 고통과 삶의 어려움이 미리 인식된다면, 아이를 낳는 일은 거의 강제된 행위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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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의 비관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삶은 근본적으로 고통의 연속이고, 인간은 그 고통을 피하고자 하면서도 생존을 추구합니다. 여기서 아이를 계획한다는 것은, 스스로는 피하고 싶은 고통을 다른 존재에게 전가하는 행위로 보일 수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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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인간의 삶에는 예측할 수 없는 ‘즐거움’과 ‘발견’이 존재하며, 이것이 삶의 의미를 만들어줍니다. 막이 오르는 극장과 같은 설렘은 바로 그런 불확실성에서 옵니다. 만약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하다면, 삶의 가치와 의미 자체가 크게 희석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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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인간이 완전히 이성적·계산적으로만 번식한다면 인류는 유지되기 어렵고, 번식의 윤리적 부담과 삶의 고통을 고려한다면 아이를 낳는 일 자체가 꺼려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본능적·심리적 요소 때문에 ‘살고자 하는 욕망’을 갖고, 삶을 과업으로 받아들이는 존재이죠. 쇼펜하우어가 말한 것처럼, 삶은 고통이지만 동시에 살아가는 과업이자 책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