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는 조선땅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1877년 일본정부의 공문서, 태정관지령(오늘날의 총리훈령에 해당)
요약 해석
별지(別紙) 울릉도와 독도(竹嶋外一嶋) 지적편찬의 건(地籍編纂之件)은
1692년(元祿五年) 안용복 등 양국어민 충돌사건이래(朝鮮人 入嶋以來)
일본과 조선과의 외교교섭 결과(政府 該國ト往復之末)
일본과 관계없음을 유념할 것(本邦關係無之儀ト可相心得事)
1877년(명치10년) 3월 29일 일본 총리(太政官)
明治十年: 1877년, 고종14년
元祿五年: 1692년에 해당함
1692년 처음으로 울릉도에서 한일 양국어민간 충돌이 있었고,
1693년 동래어부 안용복과 박어둔이 일본에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하여
양국간에 울릉도와 독도의 영유권과 관련한 외교교섭이 시작됨
1696년 안용복이 일행 11명을 이끌고 자진해서 도일
당시 안용복이 조선팔도지도를 보여 주면서
“강원도 안에 울릉도, 독도 있다“ 고 주장한 내용을 상세하게 기록한 문서가
2005년 일본 시마네현의 민가에서 발견되었음 -> "元祿九丙子年朝鮮舟着岸一卷之覺書"
元祿五年 朝鮮人 入嶋以來: 1692년 양국어민 충돌사건이래
竹嶋外一嶋: 당시에는 울릉도를 죽도라고 불렀기 때문에 태정관지령에서 "竹嶋"가 울릉도라는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음
문제는 “外一嶋” 인데, 부속지도가 발견되기 전에는 일본측에서 “外一嶋”는 독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강력 부인 했으나, 2006년 가나자와 교회 목사에 의해 부속지도(磯竹島略圖)도 발견 공개되어 일본은 더 이상 이를 부인할 수 없게 되었음
本邦關係無: 일본과 관계없음
竹嶋外一嶋 本邦關係無: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과 관계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