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
세종 11년 12월 3일
일본에 통신사로 다녀온 박서생의 보고서
1.일본에서는 대나무로 큰 밧줄을 만들어 양쪽 언덕에 매어 놓고, 통나무를 깎아서 배를 만들어 대나무 밧줄에 등자[?]을 달아 배 위로 내려뜨리고는, 기둥을 세우고 들보를 가설하고, 널빤지[板子]를 죽 깔아 다리를 만들어 놓고는, 진리(津吏)로 하여금 건너는 세를 가볍게 징수하게 하여 후일에 교량이 낡아 허물어졌을 때의 보수 자금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한강과 임진강은 남북을 통하는 큰 관진(關津)입니다. 비옵건대, 이 예에 따라 다리를 가설하고 다릿세를 거두어서 무너지는 대로 즉시 보수하게 한다면, 다만 돈을 사용하는 법이 광범위해질 뿐만이 아니라 남북의 인마(人馬)가 험로(險路)를 걸어서 피곤해 쓰러지는 폐단도 또한 없어질 것입니다.(중략)
1. 일본 상가(商街)의 제도는 시장 상인들이 각기 처마 아래에다 널빤지로 층루(層樓)를 만들고 물건들을 그 위에 두니, 다만 먼지가 묻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쉽게 이를 보고 살 수 있었으며, 시중(市中)의 음식물들을 귀천(貴賤)의 구별 없이 모두 사 먹고 있었습니다. 우리 나라의 시장은 건습(乾濕)할 것 없이 모든 어육(魚肉) 등의 식물들을 모두 진토(塵土) 위에 두고는 혹은 그 위에 앉기도 하고 밟기도 하오니, 비옵건대 운종가(雲從街) 좌우의 행랑(行廊)에서부터 동쪽 누문(樓門)에 이르기까지, 종루(鐘樓) 남쪽에서부터 광통교(廣通橋)에 이르기까지 모두 보첨(補?)을 달아내고, 그 아래에 물건들을 진열해 놓을 층루를 만들어, 어느 간(間)은 무슨 물건을 둔 곳이라고 죽 편액(扁額)을 달아서 쉽게 알아 볼 수 있도록 하소서.(중략)
1. 일본에서는 모든 금(金)·은(銀)·동(銅)·철(鐵) 등 진귀한 물품이 생산되는 곳에 방금(防禁)을 세우지 아니하고 그 지방에 사는 자로 하여금 대대로 채취하여 이익을 보게 하고, 나라에 바치는 세공(歲貢)은 일정한 수량뿐이고 다른 부역이 없기 때문에, 이를 주관하는 자가 태만하지 아니하여 보물의 생산이 무궁하여, 공사(公私)간에 모두 이익이 된다고 합니다. 원컨대, 이제부터 일본의 예에 의하여 모든 진귀한 물품이 생산되는 곳에는 금법(禁法)을 세우지 말고 평민들에게 그 이익의 독점을 허용하여, 세공(歲貢)을 제정하고 부역을 면제해 주어 길이 세업(世業)을 삼도록 하소서.(중략)
1. 일본 농민에게 수차(水車)를 설비하여 물을 퍼 돌려 전답에 대는 자가 있기에, 학생(學生) 김신(金愼)으로 하여금 그 수차를 만든 법을 살펴보게 하였더니, 그 수차가 물을 타고 저절로 회전하면서 물을 퍼 올려 대고 있어, 우리 나라에서 전년에 만들었던 수차인 인력(人力)으로 물을 대는 것과는 다른데, 다만 물살이 센 곳에는 설치할 만하오나, 물살이 느린 곳에는 설치할 수가 없습니다. 수침(水砧)도 또한 그러하였으니, 신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비록 물살이 느리더라도 사람이 발로 밟아서 물을 올린다면 또한 물을 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제 간략하게 그 모형을 만들어 바치오니, 청컨대 각 고을에 설치할 만한 곳에 이 모형에 따라 제작하여 관개(灌漑)의 편리에 돕도록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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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세종 때부터 이미 일본의 제도, 기술, 관습을 본받아 적용할 것을 건의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