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10월 30일 , 일본 학생들이 한국 여학생을 희롱하였다.
광주학생항일운동의 장본인인 광주고보 2학년 박준채학생은, 희롱당하는 여학생이 자신의 사촌누나 박기옥인것을 확인하고, 박기옥을 희롱한 일본학생 후쿠다를 때렸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일본학생들과 한국학생들사이에 패싸움이 일어났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달려온 일본순사는 한국학생들만 꾸짖었습니다.
다음날에도 기차안에서 그들 사이에 패싸움이 일어났는데, 이 때도 한국학생들만 꾸짖었고, 그곳에 있었던 광주 일보의 기자는 후쿠다의 말만 듣고 일본학생만 두둔하는 기사를 써서 보도하였습니다.
이 기사에 분노한 한국학생들은, 일제의 명절인 "명치절"이었던 1929년 11월 3일에 거리로 몰려나가 만세 운동을 했습니다. 이 때 일본은 이 운동을 진압하면서, 한국학생 75명을 구속하고, 일본학생은 불과 7명만 구속했다가 모두 석방시켰습니다.
이에 대해 11월 12일, 각 학교 학생대표들이 광주시내에서 2차로 봉기를 하였습니다.
이것은 전국으로 퍼졌고, 1930년 3월 말이되어서야 겨우 조용해졌습니다.
광주학생항일운동은, 3.1운동이후의 최대의 만세운동이었습니다.
일본학생들은 변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