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1부대 "마루타"들의 목숨건 탈출 사건의 증언, 그리고 중국 하얼빈의 현 731부대의 유적지 방문
731부대 "마루타"들의 목숨건 탈출 사건의 증언.

"731부대"에 의해 잡힌 중국인 "마루타"들
구 일본 관동군은 1932년부터 "731부대" 혹은 "이시이 부대" (의학박사/중장)로 불리는 군시설에서 인체 실험을 개시했다. 실험 대상자인 피실험자는 마루타로 불렸다. 여기에서는 1933년 중추절에 중국인 왕자양씨를 비롯해 30여명이 부대내의 정전을 틈타 목숨을 건 탈출사건이 발생했다.
이때 간수의 눈을 피해 10여명이 극적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그들은 근처의 어민들에게 도움을 받으며 겨우 731부대가 있던 중마성을 벗어날 수 있었다. 이들 탈옥자 일부는 그 뒤 항일전쟁에 참가하였다. 이 사건 뒤로 731부대는 평방지구로 이전 되었다. 1935년 말 731부대는 평방지고로 이전해 실험재료(마루타)의 수용가 상당히 늘어났다.
여기에서 일본군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같은 인간에 대한 대규모의 생체실험을 다시 본격 가동하게 되었다. 실험의 중심부인 사방루에서는 특설감옥이 설치되어 실험재료인 인간을 수용하여 각각 그 이름대신 세자리 숫자를 붙여 관리 감시하고 있었다.
"Unit 731", 이시이부대

731부대 유적지(현 박물관)임구의 첫 건물(본부)인 이곳은 731부대의 본부로 쓰였던 곳이다.
"세균병기의 준비 및 사용 혐의에 따른 구일본 육군인의 재판자료"에서 밝혀진 731부대 대원의 술회에 따르면, 1939년부터 45년 사이 적어도 3,000명 이상의 중국인과 그 외의 외국인을 살해했다고 한다. 하얼빈으로 특별 이송되어 온 피실험자들은 객화료로 불리던 비밀연락소에 일시적으로 감금되었다가 전용철도로 이용해 비밀리에 731부대 본부로 운반되었다.
때로는 수인정용 호송차로 직접 731부대로 문반되기도 했다. 괴뢰 만주국 통치하에서는 이 특별군사구역을 통과할 때는 평방지구의 한 정거장 전에서부터 미리 창문 커텐을 내리고 창밖을 내다 보는 것조차도 엄격히 금지 되었었다. 이 기정 사실을 모릍채 밖을 보았다가는 정치적 용의로 체포되어 경철서나 헌병대로 보내지는게 예사였다.
이 상태가 잠시동안 계속되기 때문에 승객들은 이 구간, 즉 한 정거장 전부터 평방역까지 약 60 중국리의 구간을 "육십리 국경선"이라고 불렀다. 말 할 필요없이 당시 철도의 합리성이란 강자가 약자를 짐으로 물건으로 취급하는 대량수송의 수단이었다.
중국"731부대 유적지"의 세계유산 등록 신청의 움직임

정식명칭 구일본 "관동군 방역급수부 혹은 만주 제 731부대", 구일본 관동군은 1932년부터 "731부대" 혹은 "이시이부대"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흑룡강성 하얼빈시 중마성에 "전염병예방과 군대의 음료수의 수질정화를 목적"으로 설치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세균전 연구를 위한 인체실험이 이루어져 수 천명의 중국인, 구소련인, 조선인 그리고 몽골인 등의 포로와 스파이 용의로 연행되어온 민간인들이 희생되었다. 민간인들의 대부분은 항일운동을 하던 지하정보원들로 일본 관헌에 의해 연행된 사람들이었다.

731부대가 손발이 묶인 마루타의 실험모습을 촬영한 기록사진
"731부대" 소속의 카와시마 키요시 제4부 세균제조부 부장은 1949년 구소련 극동의 하바로브스크 재판에서 1939년부터 45년까지 적어도 500명을 인체실험에 사용했다고 증언했다.
사족: 최근 2010년 5월 17일 국영 신화사통신은 구일본 관동군의 세균전부대 "731부재"로 인한 인체실험의 희생자 1,467명의 신원이 새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의학박사이며 중장이 지휘하는 "731부대"혹은 "이시이 부대"는 비밀리에 콜레라, 장티부스, 페스트, 탄저균, 독가스 마스터가스 등을 연구 실험, 개발, 제조를 담당해 이런 것을 실험하기 위해 쥐나 벼룩 같은 것 까지도 사육하고 있었다. 그리고 세균병기의 연구실험으로 생체실험으로 약 3,000여명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1945년 소련군이 만주에 침공과 함께 패전을 탐지한 일본은 증거 은폐를 위해 모든 자료의 소각과 관계시설의 파괴를 명령했다.

본부건물: 이 본부건물은 731부대의 행정지휘부로 내부는 관수실, 표본진열실 그리고 헌병실과 진료부를 특별히 두고 있다. 건물은 목조 벽돌의 2층 구조이며 길이 170미터, 폭 12미터, 총 명적 4,080평방미터이다. 1945년 731부대가 패주하기 전에 건물 정체를 소각했으나 그 뒤로 전체를 복원해 이전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당시의 "731부대"의 공중 촬영사진

731부대의 중국인 마루타 실험장면 모습

하얼빈시 남동쪽으로 약 25키로 떨어진 평방에 있으며, 정면 입구에는
"침화일군 제731부대 유적지"라는 문자가 눈에 띈다.

당시 이 철로를 이용해 수많은 "마루타"가 운반되어 왔다.

이 건물은 731부대의 심장부로 불리는 동력반의 건물로 발전설비,
난방용 급유시설 그리고 "마루타"의 소각시설이었다.
당시의 건축기준 보다 엄격하게 지어져 일본군 패전때
"이시이 중장"의 명령하에 파괴 되었으나 완전 파괴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마루타의 인체해부한 표본을 보관한 곳

박물관안에는 일본에서 온 관광객들이 수많은 종이학과
만행의 동정과 사죄의 편지를 남기고 있다.

731부대의 지휘관 이시이가 만든 세균폭탄.
독가스와 세균을 채워 항공기로 투하하는 도기제 용기 독가스 세균폭탄.

군의 중장 이시이 시로우가 당시 사용하고 있던 목재옷장과 의자로
옷장 위에는 "이시이 부대" 낙이이 새겨져 있다.

쥐나 벼룩에 페스트, 콜레라균, 탐저균 등 세균을 감염시킨 다음
이것을 직접 민가에 침투시켜
세균감염의 성과를 실험하고 있는 모습.
구만주국 흑룡강성 하얼빈시 평방지구에는 세계에 현존하는 대규모 세균전의 731부대 유적지가 남아있다. 이곳은 중국에 있어서 제2차 세계대전의 3대 전쟁의 유적지의 하나로 지난 20년 동안 보존 개발을 해왔다. 이러한 731부대 유적지는 "중국 100대 혁명성지"로써 관광명소가 되어 세계 각지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731뷰댜 유족지" 연구에 관계해온 전문가와 학자들은 유럽 폴란드의 악명높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와 일본 히로시마 원폭 유적지가 각각 세계유산에 등록되었다며, "731부대 유적지"가 세계 유산에 지정됨으로써 지명도가 오르고, 보다많은 사람에게 역사적인 비참했던 과거의 역사를 세계에 알려 평화를 호소하는 기회가 될것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731부대 유적지"의 세계유산 등록에 신청하는 것은 유적지 보존에 가장 이상적인 보호방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