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업데이트2010-10-05 15:32:07

포로의 목을 치고 목이 떨어지는 순간ⓒ 인터넷 커뮤니티
일제강점기 남태평양 마셜제도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이 일본군의 식인만행에 저항하다가 100여명이 학살된 사실이 정부조사로 규명됐다.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지원 위원회)는 지난 2006년부터 조사를 시작해 "밀리환초 조선인 저항사건과 일본군의 탄압 진상조사 보고서를 5일 공개했다.
지원위원회는 보고서를 통해 1942년 군사시설을 만든다는 이유로 조선인 군무원 800~1천 명가량을 마셜제도 동남쪽에 위치한 밀리환초로 강제 동원했다.
원주민 500여명만 살던 섬에 일본군과 조선인 군무원까지 몰려와 거주인원이 5천300여명(1944년 기준)을 넘어서게 되었다.
토질, 기후가 좋지 않은 데다 설상가상으로 미군의 공격에 밀려 1944년 6월부터 식량보급이 끊겨 일본군은 식량채집이나 농사를 지어 자체조달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1945년 초 한 일본인이 조선인들에게 "고래고기"를 갖다 줘 이를 먹었는데 며칠 뒤 근처 무인도에서 살점을 도려낸 채 살해당한 조선인의 시체가 발견된 것이다.
조금씩 주변 사람들이 없어지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고 있던 차에 조선인들은 일본군이 산 사람을 살해해 먹었고 조선인에게도 먹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에 1945년 2월 28일 체르본 섬에 살고 있던 조선인 120여명은 감시를 위해 섬에 파견된 일본인 11명 가운데 7명을 유인해 살해하고 이튿날 미군에 투항하려 했다.
그러나 다음날 루크노르섬에서 완전무장한 일본군인 15명이 체르본섬을 공격해 조선인 100여명을 학살했고 야자수 나무 위로 피신해 겨우 목숨을 건진 조선인들의 증언으로 이 사건은 세상에 공개될 수 있었다.
조건 전문위원은 "저항사건의 발단이 된 "일본군 식인사건"은 실증에 어려움이 있으나 적지 않은 정황자료와 증언을 토대로 사실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밀리환초 식인사건은 독특한 정신주의와 결부된 일본군 내의 가혹한 풍토, 기아상황과 미군에 대한 공포, 전쟁 스트레스가 중첩돼 일어난 만행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일본인은 배고프면 사람도 먹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