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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중독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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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중독 사회

2011년 03월 05일 12시 06분

원문 입력:2011/03/04오전03:01(2916자)
박로자(바크・노쟈, Vladimir Tikhotov)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 교수・한국학



자신이 대통령보다「서열의 높은 보스」라고 믿어 버리고 있는―그러니까「대통령 하야 운동」를 과감하게 허두권부를 압박한―조��모토이(조-・욘기, 1936~) 목사의 용감 무쌍인(?) 행동을 눈앞으로 하고, 하나 아무래도 알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도대체 어떠한 경위로 한국 사회에 있어서의 종교가 지금과 같은, 거의「성역」에 가까운 위치에 서게 되었는지요.
어떻게 한국의 일부의 종교가들은 재벌과 정치가, 그리고 과거의 조선 사회의「산림」, 즉 일종의「사회의 리더」와 같은 기능을 일신에 맞추어 가진다기묘한「삼위일체 」를 완수했는지요.

우리에게는 정도의 높은 종교가들이 누구를 향해도 꾸짖을 수 있는 광경에 익숙해 있습니다만,이것은, 실은 조선내지 동아시아의 전통이라든지든지의 격차가 있는 것이어, 또 세계의 나라들의 그렇지 않으면 상당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습니다.「종교가 만능」라고 하는 레벨에 대해 지금의 대한민국은 사실상 꽤 독특합니다.

어느 면에 있어서는,종교적 파벌(「종파 」)의 두목들의 만능의 권위/권력은,재벌 만능 주의와 고도의병영화/군사 주의와 함께남한 사회의「3대특색 」를 이루는 것과도 보여집니다.





이 광경은 조선이나 동아시아의 전통이라고 하는 시점에서는 왜 이례적인의입니까.정권이 항상 종교의 제공하는 정당성을 필요로 해 온동남아시아과는 달리,동아시아에서는 당초부터 국가는 벌써 그 자체로서 충분한 정당성을 보유해 온 것입니다.

종교란, 「왕화」에 이바지하는 한에 두고, 또는 이바지하는에 따라 용인되어 장려까지 되었습니다만, 「왕화」, 즉정권의 정치적/문명적인 기능을 바꿀 수 있는 입장에서는 전혀 아니었습니다.반대로 정권의 요구 대로 자기의 고유한 원칙 조차도 마치 쓰레기와 같이 버리는 것이 많았습니다.임진왜란(문녹의 역 ) 당시의 승병 징병이나 그 후의 도리승려(국가를 위해서 부역을 맡는 승려)에 의한 남한산성 축조와 같은 (일)것은, 타이나 스리랑카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동남아시아에서는 승려보물에 대한 외호개소화 왕권의 존립 하는 전제 조건입니다.

그런데 , 우리 조선은 정반대입니다.승려든, 한양의 소격서의 도관이든, 또 유림조차도, 모두 왕조를 보좌하지 않는 한 입장은 얻을 수 없었습니다.중국이나 일본에 있어서의 정치와 종교 관계의 구조도 근본에 대해 이것과 서로 통하고 있어,종교 지도자들이 적어도 사회를「지도」할 수 없는 오늘의 중국이나 일본은 확실히 동아시아의 전통에 대해「정상」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읍시다.

혹은유럽과 비교해도 한국의 종교는 뛰어나 비대화 하고 있습니다.루터파를 아직도 형식상의 국교로 하고 있는 노르웨이에서도, 실제로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전체의 형식적인「크리스챤」의 약 4%에 지나지 않고, 크리스트교적인 언설은 소수의 우파 정당(크리스트교 민중당등) 이외는, 사회에 전혀 영향력을 미칠 수 없습니다.

노르웨이에서, 예를 들어 오슬로의 주교가 조��모토이씨와 같은 발언을 하면,먼저는「월권 」(종교인으로서의 부당한 정치 관여)의 시비가 추궁 당할 것입니다만, 결국 대체로의 사람은 아마 이것을 단순한「농담」로서 받아 들이겠지요.오슬로의 주교는 인기가 있는 방송국의 기자나 인기 작가보다 훨씬 더 권위가 없기 때문입니다.

에서는, 대한민국은 도대체 어째서 지역에서도 세계에서도 드문 종교계의 보스들의「행복한 놀이터」가 되었는지요.




아마 근대 초기 이후, 개신교(Protestant)를「문명」와 동일시한 초기 민족주의자나, 일제 시대의 섬에 있는 산 안창호(안・창호, 1878~1938)와 같은 크리스챤들의 독립 운동에 있어서의 공적을 먼저는 채택하는 사람들도 존재할 것입니다만 아무쪼록 하나만 염두에 두어 주셨으면 합니다.그러한 측면은 확실히 있었다고 해도,일제 말기의 조선에 있어서의 크리스트교도는 전인구의 약 2%, 오늘의 일본과 별로 바뀌지 않았습니다.불교의 기반은 훨씬 더 견고했습니다만, 불교계 지도자들의 심한 대일 협력등에 의해, 그들의 대 사회적인 권위는 생각할 만큼 높지는 않았습니다.

한국의「크리스트교화」는 미군 점령과 이승만의 반식민지적 정권의 수립, 미국의 심대한 영향으로 시작되었다것입니다만,주로 1960~80년대의 이농 인구의 교회에의 유입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최저 임금제마저 없었다「무복지 개발독재」아래에서,교회는「공동체에의 소속」를 잃은 수많은 사람들에게「대체/유사 공동체 」가 되었습니다.불교계는 주로 1980년대 이후는, 꽤 크리스트교의 선교 방법을 그대로 채택해, 그 교세를 펼쳤습니다.

그러나, 오늘과 같이, 도시화의 과정도 거의 마지막을 고해 적어도 기본적인 복지 서비스가 이미 교회의 밖에서도 서서히 할 수 있는 시대에 왜 조��기가등의종교계의 호족들의「신장사 」가 아직도 번성하고 있는 것입니까.이 정도 많은 사람들을「종교 중독」에 빠뜨리는 사회적인 요인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나의 대답은 간단합니다.교회나 절이란, 결국 진정한 의미의 개인적인 종교의 대체물이기도 해(직접신을 만나 프랑스를 만날 수 있는 사람에게는 교회나 절도 완전히 소용없습니다), 또 행복의 대체물이기도 합니다.행복도 지수가 한국과 같이 낮은 사회에서 종교에의 광신도 지수가 오늘과 같이 높은 것은 절대로 우연히가 아닙니다.이 둘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고 있습니다.신이나 프랑스님에게 새전의 형태로(통해도 하지 않는다)「뇌물」에서도 올려 해결하려고 하는 문제와는, 우리가 평상시는 풀 수 없는, 풀 수 없기 때문에 더욱 항상 고민하고 있는 문제입니다.살인적인 경쟁을 통해 이루어지는궁극적으로 무의미한 암기에 끝나 버리는「공부」, 보람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불안과 공포를 항상 느끼는 직장, 상호 이용과 충성 경쟁,「아래에의」멸시와「위에의」참깨 소매치기에 압축되는 대인관계, 일종의 기업체가 되어 버린 가정 등등.이 무의미의 왕국에서 그런데도 살아 남으려고 하는 많은 사람들은 결국조��기들을 매개로 해,「최고의 상사 」라고 생각되는신이나 프랑스님의 앞에 나아가기 나와 스스로의 모든 문제에 대한「최종 결재 」를 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경쟁과 참깨 소매치기의 이 왕국에서 모든 문제는 개인적으로 상사에게 접근해 해결하도록(듯이), 행복의 문제도 개인적으로, 공인된 매개자를 통해 풀려고 하는 것입니다.당연하고 이 매개자들이 전통으로부터도, 국제 관례상으로부터도 종류 드문 힘을 획득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행복을 손에 넣으려고 하는 이 마음이야말로 불행의 종이 되어 버립니다.유감스럽지만, 지옥에서는 개인 힘만으로 그 지옥의 불로부터 피할 수 없습니다.지옥을 타파하려면 , 염라대왕에 호소해도 안되고, 저승 죄를 재판하는 10명의 왕에게 개인적으로 기도해도 안됩니다.서로 손과 손을 잡아, 서로 사랑하면서, 도산으로 몸의 고기토막을 없애 떨어뜨려질 각오로 함께 번민좋습니다.그리고 다행히는, 확실히 그 과정에서 찾아내지는 것입니다.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32360

http://news.livedoor.com/category/date/44/




꽤 흥미로운 분석이다 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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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教中毒社会





宗教中毒社会

2011年03月05日12時06分

原文入力:2011/03/04午前03:01(2916字)
朴露子(バク・ノジャ、Vladimir Tikhotov)ノルウェー、オスロ国立大教授・韓国学



自分が大統領より「序列の高いボス」だと思い込んでいるような―だからこそ「大統領下野運動」を果敢に言い出し権府を圧迫した―趙��基(チョー・ヨンギ、1936~)牧師の勇敢無双な(?)行動を目の当たりにして、一つどうしても知りたいことがありました。

一体どのような経緯で韓国社会における宗教が今のような、ほとんど「聖域」に近い位置に立つようになったのでしょうか。
いかにして韓国の一部の宗教家たちは財閥と政治家、そして過去の朝鮮社会の「山林」、すなわち一種の「社会のリーダー」のような機能を一身に合わせ持つ奇妙な「三位一体」を成し遂げたのでしょうか。

私たちには位の高い宗教家たちが誰に向かっても叱りうる光景に慣れていますが、このことは、実は朝鮮ないし東アジアの伝統とかなりの隔たりがあるものであり、また世界の国々のそれとも相当な違いを露呈しています。「宗教家万能」というレベルにおいては今の大韓民国は事実上かなり独特です。

ある面においては、宗教的派閥(「宗派」)の親分たちの万能の権威/権力は、財閥万能主義と高度の兵営化/軍事主義とともに南韓社会の「三大特色」をなすものとも見受けられます。





この光景は朝鮮や東アジアの伝統という視点からは何故に異例なのでしょうか。政権が常に宗教の提供する正当性を必要としてきた東南アジアとは異なり、東アジアでは当初から国家はすでにそれ自体として十分な正当性を保有してきたわけです。

宗教とは、「王化」に資する限りにおいて、又は資するに応じて容認され奨励までされましたが、「王化」、すなわち政権の政治的/文明的な機能を取り替えられる立場ではまったくありませんでした。逆に政権の要求どおり自己の固有な原則さえもまるでゴミのように捨てることが多かったのです。壬辰倭乱(文禄の役)当時の僧兵徴発やその後の義僧(国家のために夫役を務める僧侶)による南漢山城築造のようなことは、タイやスリランカでは想像もできません。東南アジアでは僧宝に対する外護こそが王権の存立する前提條件です。

ところが、我が朝鮮は正反対です。僧侶であれ、漢陽の昭格署の道官であれ、さらには儒林でさえも、みな王朝を補佐しないかぎり立場は得られなかったのです。中国や日本における政教関係の構造も根本においてはこれと相通じており、宗教指導者たちが少なくとも社会を「指導」することのできない今日の中国や日本はまさに東アジアの伝統においては「正常」に近いといえましょう。

あるいはヨーロッパと比較しても韓国の宗教は飛び抜けて肥大化しています。ルター派を未だに形式上の国教としているノルウェーでも、実際に教会に通う人々は全体の形式的な「クリスチャン」の約4%に過ぎず、キリスト教的な言説は少数の右派政党(キリスト教民衆党など)以外は、社会にまったく影響力を及ぼすことができません。

ノルウェーで、たとえばオスロの司教が趙��基氏のような発言をすれば、先ずは「越権」(宗教人としての不当な政治関与)の是非が問われるはずですが、結局 大抵の人はおそらくこれを単なる「冗談」として受け止めることでしょう。オスロの司教は人気のある放送局の記者や人気作家よりも遥かに権威がないからです。

では、大韓民国は一体どうして地域でも世界でも珍しい宗教界のボスたちの「幸せな遊び場」になったのでしょうか。




おそらく近代初期以降、改新教(プロテスタント)を「文明」と同一視した初期民族主義者や、日帝時代の島山 安昌浩(アン・チャンホ、1878~1938)のようなクリスチャンたちの独立運動における功績を先ずは取り上げる人々も存在するはずですが、どうか一つだけ念頭に置いていただきたいのです。そのような側面は確かにあったとしても、日帝末期の朝鮮におけるキリスト教徒は全人口の約2%、今日の日本とあまり変わりませんでした。仏教の基盤は遥かに堅固でしたが、仏教界指導者たちの甚だしい対日協力などにより、彼らの対社会的な権威は思っているほど高くはありませんでした。

韓国の「キリスト教化」は米軍占領と李承晩の半植民地的政権の樹立、アメリカの甚大な影響で始まったのですが、主に1960~80年代の離農人口の教会への流入によって成されました。最低賃金制さえなかった「無福祉開発独裁」下で、教会は「共同体への所属」を失った数多くの人々に「代替/類似共同体」となったのです。仏教界は主に1980年代以降は、かなりキリスト教の宣教方法をそのまま採択し、その教勢を広げました。

しかし、今日のように、都会化の過程もほぼ終わりを告げ、少なくとも基本的な福祉サービスがもはや教会の外でも徐々にできつつある時代に何故に趙��基家などの宗教界の豪族たちの「神様商売」が未だに繁盛しているのでしょうか。これほど多くの人々を「宗教中毒」に陥れる社会的な要因は一体何なのでしょうか。




私の答えは簡単です。教会やお寺とは、結局真正な意味の個人的な宗教の代替物でもあり(直接神に逢い仏に逢うことのできる人には教会もお寺もまったく無用です)、また幸せの代替物でもあります。幸福度指数が韓国のように低い社会で宗教への狂信度指数が今日のように高いのは絶対に偶然ではありません。この二つは、互いに緊密に繋がっています。神さまや仏さまに賽銭の形で(通じもしない)「賄賂」でも供えて解決しようとする問題とは、私たちが普段は解くことのできない、解けないからこそ常に悩んでいる問題です。殺人的な競争を通して成される窮極的に無意味な暗記に終わってしまう「勉強」、やりがいを感じるのではなく不安と恐怖を常に感じる職場、相互利用と忠誠競争、「下への」蔑視と「上への」ゴマすりに圧縮される対人関係、一種の企業体となってしまった家庭等々。この無意味の王国でそれでも生き残ろうとする多くの人々は結局趙��基たちを媒介にし、「最高の上司」と考えられる神さまや仏さまの前に進み出て自分たちのすべての問題に対する「最終決栽」をもらおうと思うわけです。競争とゴマすりのこの王国ですべての問題は個人的に上司に接近して解決するように、幸せの問題も個人的に、公認された媒介者を通して解こうとするわけです。道理でこの媒介者たちが伝統からも、国際慣例上からも類希な力を獲得するようになります。




個人的に幸せを手にしようとするこの心こそ不幸の種になってしまいます。残念ながら、地獄では個人の力だけでその地獄の火から逃れることはできません。地獄を打破するには、閻魔大王に訴えてもだめで、冥府十王に個人的に祈ってもだめです。互いに手と手を繋ぎ、互いに愛し合いながら、刀山で身の肉片を削ぎ落とされる覚悟で一緒に悶えれば良いのです。そして幸せとは、まさにその過程で見出されるもの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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なかなか興味深い分析だ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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