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 사회주의자와 선인의 방화가 많다
9월 2일
(오전 10시) 불령선인(不逞鮮人-불량한 조선인을 뜻함)들의 내습이 있을 것이다. 9월 1일 화재는 다수의 불령선인들이 방화 또는 폭탄을 던져서 일어난 것이다
(오후 2시) 그들은 단결하여 도처에서 약탈을 감행하며 부녀를 능욕하고 잔존 건물에 불을 질러 파괴하는 등 폭동이 심하여 전시(全市)의 청년단, 재향군인단 등은 현(縣) 경찰부와 협력하여 이를 방지코자 노력하고 있다.
(오후 2시) 요코하마 방면에서 내습하는 선인의 수는 약 2천 명으로, 총포. 도검 등을 휴대하고 이미 오오고(大鄕)의 철교를 건넜다. 군대는 기관총을 비치하고, 선인의 입경을 차단시키고자 하며, 재향군인 청년단원 등도 출동하여 군대를 응원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군대를 失口 방면으로 향하고 있다.
(오후 4시) 原田町을 습격한 2백여 명은 다시 相原·片倉의 두 마을에 침입, 농가에 들어가서 물건을 빼앗고 부녀를 살해했다
(오후 4시) 선인들이 鶴見 방면에서 부녀자를 살해했다
(오후 5시) 선인 1백10명이 寺島에서 관내 四木橋 부근에 모여 흉기를 휘두르며 폭행을 하고 방화도 한다. 선인들이 기회만 있으면 폭동을 일으키려고 계획하였는데, 진재가 돌발함에 따라 예정계획을 변경하여 미리 준비했던 폭탄과 독약을 유용하여 제도(帝都) 전멸을 꾀하고 있으므로 우물물을 마시거나 과자를 먹는 것은 위험하다.
9월 3일
(오전 1시) 선인 약 2백 명이 本鄕·向島 방면으로부터 대일본방적㈜와 隅田역을 습격했다
(오전 4시) 선인 수백 명이 本鄕·湯島 방면으로부터 上野공원에 내습한 모양이니 속히 谷中 방면으로 피난하라. 짐 가지고 갈 필요는 없다
(오전 10시) 군대 약 30명이 선인의 폭동을 진압하기 위하여 月島에 갔다
(오후 3시) 선인들이 경찰서에서 석방되었으니 속히 이들을 잡아 죽여버려라.
(오후 6시) 선인이 시내 우물에 독약을 투입했다.
(오후 9시) 上野공원과 불타버린 곳에는 경찰관으로 변장한 선인이 있으니 주의하라.
이렇듯 당시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약을 푼다", "방화 강도 강간을 벌인다", "조선인들이 폭동을 일으킬 것이다." 등 이런 유언비어들은 일본인의 민심을 크게 동요시켜 진재의 공황 속에서 한국인은 일본민중의 공동의 적이 되었다. 이러한 유언비어는 日변호사聯보고서에서도 확인되었던 것과 같이 일본정부가 의도적으로 퍼뜨렸다는 증거가 확실하므로 그것은 유언비어가 아니라 일본이 책임회피를 위한 또 하나의 역사조작이요, ‘한국인을 살해하라는 암호’였다.
◆ 조선인을 학살하라!
일본정부는‘남자는 무장하고 여자는 피하라. 조선인을 보면 타격해도 무방하며 살해해도 관계없다"며 자경단(自警團)을 조직할 것을 촉구했다. 이리하여 순식간에 전직 군인과 젊은이들로 구성된 자경단(自警團)이 도쿄 1,593개, 가나가와현 603, 사이타마현 300, 치바현 366, 이바라키현 336, 군마현 469, 기타 16개, 합계 3,689개의 자경단이 조직됐다고 한다. 길거리에는 검문소가 설치되어 군대·경찰·자경단에 의한 인간사냥, 한국인 대학살의 서막이 시작되었다.총.칼.톱. 곤봉. 몽둥이. 죽창으로 무장한 이들의 외침은 "조선 놈이면 다 죽여버려라"는 것이었다. ▲화가 가야하라하쿠도(萱原白洞, 본명은 다케오(竹尾) 후에 黃丘로 개명)의 총 11.5m 관동대지진 묘사 두루마리그림 중 칼과 죽창 곤봉을 든 자경단의 조선인 학살 장면
‘내 부모 내 자식과 아내를 죽인 것은 다 조선 놈들이다. 내 집을 부수고 우리를 기아의 지경에 몰아넣은 것도 그놈들 때문이다’. ‘죽여라 쳐버려라’ 외치며 자행된 학살은 박살, 사살, 교살 등 갖은 악랄한 방법으로 한국인 살해가 저질러졌다. 일본 내무성에서 지방에 내려 보낸 ‘불령조선인(不逞朝鮮人) 단속’ 공문이 군대와 경찰까지 동원돼 학살에 기름을 붓은 격이 되었다.
당시 ‘이재동포위문반’의 조사에 따르면 일주일 동안 관동지역에 살던 3만여 명의 한국인 중 생존자 약 7천여 명을 제외한 2만 2천여 명이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한다. 증거가 인멸된 후 사고조사에 나섰기에 6천 6백여 명이 학살된 것으로 밝혀쪘다. 하지만 얼마나 되는 인원이 학살되었는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죽임을 당해야 할 영문도 모른체 처참하게 죽어갔다. 도시 전체가 피비린내 나는 아비규환 인간도살 현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