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건너뛰기

KJCLUB 한일 문화교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너등 한반도 문화재 유산 관리 철저히 해라

조회수 : 89
KO 255 jjangggae 2,241,134 / 2,811,753
확대 사진 보기 확대 사진 보기 [한겨레] ‘3대 절경’ 마쓰시마 다도해

지반 침하·교량 붕괴 피해커

다가조 고을터 곳곳엔 균열


일본 대지진의 참화 앞에서 문화유산 역시 온전하지 못했다. 8세기 백제 의자왕 후손 경복(697~766)이 다스리며 금을 캤던 다가조의 고을터도, 17세기 일본 전통시 하이쿠의 달인 마쓰오 바쇼(1644~1694)가 천하의 경치로 극찬했던 마쓰시마 명승지구도 대지진, 쓰나미의 발톱은 비켜가지 않았다. 2차대전 이후 최대의 피해를 입힌 일본 동북지방 대지진은 미야기현 센다이 근처의 일본 3대 절경 마쓰시마를 할퀴고, 백제 유민들 자취가 어린 다가조 특별사적에도 상당한 피해를 줬다. 한국과 관련된 유적지여서 국내 학계에서도 이 지역의 피해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아사히> <요미우리> 등 현지 신문 등을 보면, 센다이 인근 마쓰시마만에 260여개 섬들이 다도해를 이루는 특별 명승 마쓰시마는 지난 11일 일어난 지진과 쓰나미로 일부 섬들의 지반이 무너지고, 섬들을 잇는 다리가 망가졌다. 또 지역내 국보급 사찰 즈이간사는 공양간 등 건물 벽 일부가 무너지고 큰 균열이 생긴 것으로 확인됐다.

즈이간사는 17~19세기 동북 지방을 지배했던 영주 다테 마사무네 가문(임진왜란 때 진주성 전투에도 참전했다)의 원찰로, 지진에 마사무네의 청동상과 후대 번주의 위패 등이 훼손됐다. 다만, 만 일대 들어찬 섬들이 방파제 구실을 한 덕분에 해일 피해는 다른 지역보다 비교적 적은 편. 섬의 상당수 문화재와 마쓰시마 박물관은 쓰나미의 직접 피해는 모면했다고 한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마쓰시마 섬들이 재해에서 우리를 지켰다”는 말들이 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국내 학계의 관심이 쏠리는 센다이시 북동쪽 다가조 유적은 현지 조사 결과 핵심인 정청(옛 행정기관) 정전터 기단부의 포장과 돌부재 등에서 폭 5㎝ 전후의 균열이, 다른 관청터 유적 동쪽 경사면 일부에도 폭 5m나 되는 균열이 생겼다. 또 경내 일부 유적 계단 디딤돌이 지진 충격으로 어긋나는 현상도 관측됐다. 다가조 유적 조사 연구소의 후루카와 연구원은 <한겨레>에 보낸 전자우편에서 “눈에 띈 피해사례는 4건으로 당장 큰 문제는 보이지 않지만, 정밀 진단과 복구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가조 유적은 고대 일본에서 변방의 중요 거점이었다. 8세기 초 일본 조정이 동북 개척과 원주민 에조(아이누인) 정복을 위해 행정기관을 설치한 이래 200~300년간 변방 도시로 융성했다. 1960년대부터 정청터와 관청터, 마을터 등이 잇따라 발굴됐고, 현재는 특별사적 공원으로 개방되어 있다.

특히 이 유적은 8세기 초 백제 유민 출신 경복이 지방관으로 다스렸던 곳이어서 한반도와 인연이 깊다. 749년 경복은 이 지역의 고가네야마에서 백제 장인들을 동원해 일본 역사상 처음 금 900냥을 캐내 조정에 바쳤는데, 이 사실이 중요 사건으로 사서에 기록되어 있다. 바친 금이 당시 일본 왕실이 국운을 걸고 추진했던 도읍 나라의 큰 절 도다이사(동대사)의 대불상에 입혀지면서 대불사가 원만히 끝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일왕(쇼무왕)은 이 지역에 조세를 면제하고 경복을 형부경(법무부 장관)에 중용할 정도로 높이 평가했다고 전한다. 실제로 유적에서는 경복의 친필로 추정되는 명문뿐 아니라 그의 행적이 기록된 목간(나무쪽 문서)들이 발굴된 바 있다. 고가네야마 유적이 있는 와쿠야초에도 1994년 전시관이 세워져 백제인들의 금 채굴과 관련된 사료들을 전시중이다.

신희권 문화재청 학예관은 “2006년 풍납토성 국제학술회의 때 일본 연구자를 초청해 다가조 유적의 실상을 처음 소개한 바 있다”며 “전화 사정이 열악해 상세한 현지 피해 상황과 복구 계획 등을 파악할 수 없다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번역문보기

お前等韓半島文化財遺産管理徹底的にしなさい

onerror=blankImg(this,0,0);document.getElementById(¥"articleImage0¥").style.display=¥"none¥" 拡大写真表示 onerror=blankImg(this,0,0);document.getElementById(¥"articleImage1¥").style.display=¥"none¥" 拡大写真表示 [ハンギョレ] ‘3台絶景’ マスシマ多島海

地盤沈下・橋梁崩壊被害大きくて

ダがゾゴウルトあちこちには割れ目


日本大震災の惨禍の前で文化遺産も完全ではなかった. 8世紀百済椅子王子孫軽服(697‾766)が治めて金を掘ったダがゾのゴウルトも, 17世紀日本伝統の時俳句の達人マスオ芭蕉(1644‾1694)が天下の景色でほめたてたマスシマ名勝地球も大震災, スナミの足指の爪は引き分けなかった. 2次大戦以後最大の被害を被らせた日本東北地方大震災は宮城県仙台近くの日本 3台絶景マスシマを引っ掻いて, 百済流民たち名残が幼いダがゾ特別史蹟にも相当な被害を与えた. 韓国と係わる遺跡地なので国内学界でもこの地域の被害状況を憂慮している.

<朝日> <読売> など現地新聞などを見れば, 仙台隣近マスシマぶりに 260余個島々が多島海を成す特別名勝マスシマは去る 11日起きた地震とスナミで一部島々の地盤が崩れて, 島々を引き継ぐ足が壊れた. また地域内国宝級査察ズイガンサは供養間など建物壁一部が崩れて大きい割れ目が生じたことで確認された.

ズイガンサは 17‾19世紀東北地方を支配した領主ダテマサムの家門(壬辰の乱の時晋州城戦闘にも参戦した)のワンチァルで, 地震にマサムネのブロンズと後代ボンズの位牌などが毀損された. ただ, 万一帯立ちこんだ島々が防波堤役目をしたおかげさまで津波被害は他の地域より比較的少ない方. 島のかなり多い数文化財とマスシマ博物館はスナミの直接被害は兔れたと言う. 住民たちの間では “マスシマ島々が災害で私たちを守った”と言う言葉が回ると現地言論たちは伝えた.

国内学界の関心が集まる仙台市北東の方ダがゾ遺跡は現地の調査結果核心である政庁(昔の行政機関) ゾングゾント気団部の包装とドルブゼなどで幅 5

좋아요·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

댓글 ( 1 )

게시물 목록

2,241,134 / 2,811,753

  1. JA 255 Member_50655
  2. 조회수 : 64
    JA 255 THX311tsunami
  3. JA 0 takeshima222
  4. KO 255 drosophilas
  5. JA 255 菊池武雄
  6. 조회수 : 49
    KO 0 うえのきむち
  7. 조회수 : 317
    KO 255 심문선2
  8. JA 255 josuncorea
  9. JA 30 よいこ
  10. 조회수 : 98
    KO 255 hothothot
  11. JA 255 yonsamadesu
  12. 조회수 : 64
    KO 0 うえのきむち
  13. 조회수 : 88
    KO 255 Desu
  14. KO 255 jjangggae
  15. JA 255 THX311tsunami
  16. 조회수 : 69
    KO 255 socialism2011
  17. KO 255 Member_60388
  18. KO 255 jjosengin
  19. 조회수 : 50
    KO 255 socialism2011
  20. JA 0 i_am_s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