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상징이다."vs"구시대 유물이다."
총리 등 내각에 정치적 권한과 책임이 있는 입헌군주제 국가에서 왕실 존재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입헌군주제에서 왕과 여왕은 대부분 상징적ㆍ의례적 지위에 그치고 있다. 반면 국민의 정신적 지주이자 전통성이라는 점이 왕실의 존재 이유가 되고 있다.
현재 입헌군주제는 모태인 영국을 비롯해 덴마크, 일본, 말레이시아, 노르웨이, 스페인, 태국, 네덜란드, 캐나다, 캄보디아, 모로코, 요르단, 오스트레일리아 등 30여개 나라에서 유지되고 있다. 히말라야 산맥에 자리잡은 부탄은 2008년 국민투표를 통해 절대왕정을 버리고 입헌군주제로 전환했다. 네팔에선 마오주의 공산당이 2008년 4월 총선에서 압승하면서 239년 역사의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제로 전환했다.
특히 세계 경제 위기가 닥치면서 살림이 화려한 왕실에 대한 불만이 늘고 있다. 왕실의 비용을 정부에서 지원하기 때문이다.
스웨덴에서는 지난 6월 왕위 계승 서열 1순위인 빅토리아 공주의 결혼식 비용으로 약 30억원이 들어간 것으로 알려지자, 초호화 결혼식에 대한 비난이 이어졌다. 결혼비용의 절반은 국민들의 혈세인 스웨덴 정부 재정으로 부담했다.
영국 정부도 재정적자 감축을 위해 비상 긴축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왕실 지원금을 연간 790만파운드(약 146억원) 수준에서 동결했다. 영국 왕실은 2008년 왕실 계좌에 적자가 났다며 추가 예산을 요청했다가 퇴짜를 맞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지난 6월 캐나다를 공식 방문한 당시 나온 여론조사를 보면, 캐나다 국민의 48%는 군주제가 "현대 캐나다에서는 무의미한 식민지 시대의 유물"이라고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웨덴은 2000년 국민의 85%가 군주제에 찬성했지만, 최근 조사에서는 국민의 58%만이 군주제 유지에 찬성했다.
영국은 식민지로 있던 영연방 10여개 국가의 국왕을 지금도 맡고 있다.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파푸아뉴기니 등이 대표적이다.
태국은 불교를 숭상하는 대표적인 국가다. 그러나 불교보다 더 숭상하는 것이 바로 국왕이다. 태국 국기에 나타난 청색과 백색, 적색의 삼색 가운데 한 가지가 국왕을 상징하는 것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거리 곳곳에서 국왕의 사진을 접할 수 있으며 국왕을 모욕하거나 국왕의 얼굴이 새겨진 지폐를 찢는 등의 행위가 금기시되고 있는 점에서도 태국 국민들의 국왕 사랑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지난 4월 태국의 반정부 시위 사태가 일어나면서"시위 때 국왕은 뭐했나"라며 입헌군주제에 대한 반기류가 돌기도 했다. 당시 외신은 "시위 사태는 끝났지만 왜 국왕이 이 사태에 개입하지 않았나, 앞으로 입헌군주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둘러싼 의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면서 "반군주제를 주장하는 웹사이트가 수십 개씩 생겨나고, 학계에선 입헌군주제가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분석이 활발하다"고 보도했다. 태국에선 국왕 모독은 불경죄로 몰려 징역 15년형에 처해진다. 격세지감의 변화가 꿈틀대고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도 국왕제가 도마에 오르곤 한다. 2008년 12월 일본의 한 누리꾼이 야후재팬 게시판에 "왕실의 존재는 후진성을 보여주는 거 아닌가요?"라는 질문을 올렸다. 하지만 호응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한 누리꾼은 "일본 왕실은 살아 있는 세계문화유산이다. 유지하는 데 기껏해야 내 세금 몇 백엔밖에 들지 않는다"고 썼다. 또 다른 누리꾼은 "일본에서 1,000년 넘는 역사를 갖고, 왕실 이상으로 의미를 갖고 있는 인물이나 물건이 뭐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이런 반응은 일본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왕실의 지위와 잘 어울린다. 1947년 발효한 일본 헌법은 제1조에 "천황은 일본의 상징이고,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이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본인들이 왕실 존속을 바란다는 사실은 2006년 왕실전범 개정 관련 여론조사에 잘 나타나 있다. 남자로만 왕위를 승계할 경우 손이 끊길 위험에 직면해 여성 승계도 할 수 있게 하는 게 어떠냐는 질문에 75%가량이 찬성했다. 남계로 이어온 "만세일계"의 신화를 깨뜨리고라도, 왕이 승계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그만큼 많았던 것이다.
현 마사코 일본 왕세자빈이 아들을 낳지 못한 것과 연관이 있는 대목이다. 일본에서는 아들을 낳지 못하는 "왕실 문제"가 정치문제로 번지고 있다. 여자든 남자든 제1자가 왕위를 계승하도록 하는 내용의 왕실전범 개정안이 마련된 가운데 이를 둘러싼 내홍이 계속되고 있다. /스포츠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