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용재기자] *2011년 9월4일, 3일차
오늘도 어김없이 낮에는 숙소 밖으로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해가 지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해가 진 후엔 어김없이 쿠웨이트 격파를 위한 한국 축구국가대표팀 훈련이 시작됐다.
찜질방을 방불케 하는 쿠웨이트 카치아 스타디움에 도착했고 자랑스러운 대표팀 선수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훈련하는 것을 지켜봤다. 그러던 중 저 멀리서 범상치 않은 한 쿠웨이트 청년이 등장했다. 그의 얼굴에는 무언가 모를 자신감 있는 표정이 가득 차 있었다. 그 청년이 가까이 다가오자 그의 자신감의 원천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바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명문" 아스널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쿠웨이트 청년이 이곳까지 왜 왔는지, 누구를 만나기 위해서 왔는지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내가 바로 박주영의 팬이다"라며 당당히 말하는 것과 같았다. 그는 최근 아스널에 입단한 박주영의 팬이었던 것이다. 박주영의 팬으로서 자신 있게 한국대표팀 훈련장을 방문한 것이다.
그에게 말을 걸어보기 위해 기자가 다가갔다. 그 때 갑자기 그는 뒤로 돌아섰다. 순간 기자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이유는 그가 입은 아스널 유니폼은 일반적인 아스널 유니폼이 아니었다. 반 페르시의 이름이 적힌 것과 같은 일반적인 아스널 유니폼은 국내에서도 아스널 팬들이 많아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유니폼 뒤에는 백넘버 9번과 함께 J.Y.PARK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기자는 박주영의 이름이 적힌 아스널 유니폼을 실제로 처음 봤다. 그것도 쿠웨이트에서 이 유니폼을 처음 보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상상은 현실이 됐고 기자는 그에게 더욱 큰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압둘 라만. 그는 18세의 쿠웨이트 학생이었다. 라만은 아스널의 광팬이다. 그래서 아스널 선수들 모두를 좋아한다. 따라서 라만은 자연스럽게 박주영의 팬이 됐다. 한국 대표팀이 쿠웨이트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라만은 박주영의 유니폼을 샀다. 박주영의 사인을 받고 박주영과 사진을 찍기 위해 이곳으로 찾아왔다.

지난 3일 훈련 때는 박주영은 4명의 건장한 쿠웨이트 청년들과 사진을 찍은 바 있다. 하지만 그들은 원래 박지성의 팬이었다. 박지성이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한 것을 모른 채 이곳을 찾았고 박지성이 없자 박주영을 잘 안다며 박주영과 함께 사진을 찍고 돌아갔다.
하지만 라만은 "진짜" 박주영 팬이었다. 라만은 "나는 아스널 광팬이다. 아스널을 너무 좋아한다. 파브레가스를 가장 좋아했는데 떠나 아쉽다. 그리고 박주영 선수가 아스널에 입단한 것을 알았고 박주영 선수를 좋아하게 됐다. 오늘 아스널 유니폼을 30 디나르(약 12만원)를 주고 샀다. 박주영 선수에게 사인을 받기 위해 이곳에 왔다"며 설렘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라만은 박주영이 훈련 중이라 당장 우상을 만나지는 못했다. 라만은 대표팀의 모든 훈련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대표팀 훈련이 끝나고 대표팀 선수들이 빠져나오자 라만은 가장 먼저 박주영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기자에게 했듯이 뒤로 돌아서 등을 내보였다. 박주영은 친절하게 라만의 등 뒤 자신의 아스널 유니폼에 사인을 해줬고, 이후 함께 다정하게 사진을 찍기도 했다. 라만은 너무나 행복한 추억을 선물 받은 것이다.

하지만 라만의 곁에는 우울한 표정의 친구가 한 명 있었다. 그는 한없이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라만은 "이 친구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좋아하고 한국의 박지성 선수를 좋아한다"고 설명해줬다. 분명 그 친구가 이곳에 온 목적도 예상할 만했고, 그 목적을 절대 이룰 수 없게 됐다는 것도 쉽게 알 수 있었다.
<④편에 계속…>
/쿠웨이트시티=최용재기자 indig80@joy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