利川ソさん(利川徐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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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調書信である(徐神逸)は新羅 52大王であるヒョゴングワングの時に一緒にする過ごしている途中国の運が終えることを分かって二千孝養山に複姓当たりを建てて隠居しながら自称チォサラして後進養成に余生を捧げた. それで子孫たちが隠居誌である利川を本館にした.西申日に関する面白い説話が伝えて下る. 彼の初めて先祖である立っておきなさい(新羅開国功臣)は牙城(利川の昔の名前) 大将軍であったし, 書信である台に至って山村(山村)に暮していたが, 一日は鹿一匹が矢を当たったまま狩人に追い回されて家の中に走って入って来るので可愛想に思って矢を抜いてくれてえさを与えて手厚く看病してくれた次また山で放してやった. その晩夢に一白髪の山神霊が現われて言うのを今日君の家へ来た鹿は私の子で狩人の矢を叩かれて死ぬようになったが幸いに君の恩徳で暮すようになったから君の子孫が代代に宰相を勤めると言った. 年 80になるようにもとに血肉がいなかった彼はその日から奥さんの身に胎気があって息子を生んだら, 彼がゾングミンゴング(貞敏公) 犀皮を(徐弼)であり, ソピルの息子が正しく有名なソ・ヒ(徐煕) 将軍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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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서씨(利川徐氏)
시조 서신일(徐神逸)은 신라 52대왕인 효공왕 때에 아우를 지내다가 나라의 운이 다함을 알고 이천 효양산에 복성당을 짓고 은거하면서 자칭 처사라하고 후진양성에 여생을 바쳤다. 그래서 후손들이 은거지인 이천을 본관으로 하였다.서신일에 관한 재미있는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그의 처음 조상인 서두라(신라 개국공신)는 아성(이천의 옛이름) 대장군으로 있었고, 서신일 대에 이르러 산촌(山村)에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사슴 한 마리가 화살을 맞은 채 사냥꾼에게 쫓겨 집 안으로 뛰어 들어오므로 불쌍히 여겨 화살을 빼주고 먹이를 주며 극진히 간호해 준 다음 다시 산으로 놓아주었다. 그날 밤 꿈에 한 백발의 산신령이 나타나서 말하기를 "오늘 그대의 집에 왔던 사슴은 나의 자식으로 사냥꾼의 화살을 맞아 죽게 되었는데 다행히 그대의 은덕으로 살게 되었으니 그대의 자손이 대대로 재상을 지 내리라"고 했다. 나이 80이 되도록 슬하에 혈육이 없던 그는 그날부터 부인의 몸에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으니, 그가 정민공(貞敏公) 서필(徐弼)이요, 서필의 아들이 바로 유명한 서희(徐熙) 장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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