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京戦犯裁判が終わるとソ連は 731部隊の罪状を告発するために 1949年 12月 25日から 6日間ハバロフスク戦犯裁判を開いた. この裁判に起訴されたこれは山田オート組関東軍総司令官及び関東軍軍医部長, 獣医部長を含めて 731部隊所属軍医, 衛生兵などソ連に逮捕した日本軍 12人だった.
当時ソ連裁判府は日本が組織的に細菌武器を使って人類を破滅させようと思ったと有罪を宣告した. 山田関東軍総司令官及び軍医部長, 獣医部長などには強制労動 25年型が宣告されて, 残り戦犯たちにも最小 2年‾25年型が宣告された.
しかし日本の反人倫的犯罪を初めて断罪したハバロフスク裁判は西側陣営の無関心の中にその実際がほとんど知られなかった. 裁判が終わった後してソ連はまたアメリカ国務長官に 731部隊の犯罪を扱うために新しい国際軍事裁判を開こうと申し入れたがアメリカはその提議さえ黙殺した.
しかし 日本戦犯は後で皆釈放になった ..虚しいね
ソ連がとても人道的よ ..
唯一に 731 部隊を断罪したハバロフスク軍事裁判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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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게 731 부대를 단죄한 하바로프스크 군사재판은
도쿄전범재판이 끝나자 소련은 731부대의 죄상을 고발하기 위해 1949년 12월 25일부터 6일간 하바로프스크 전범재판을 열었다. 이 재판에 기소된 이는 야마다 오토조 관동군 총사령관 및 관동군 군의부장, 수의부장을 비롯해 731부대 소속 군의관, 위생병 등 소련에 체포된 일본군 12명이었다.
당시 소련 재판부는 일본이 조직적으로 세균무기를 사용해 인류를 파멸시키려고 했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야마다 관동군 총사령관 및 군의부장, 수의부장 등에게는 강제노동 25년형이 선고되고, 나머지 전범들에게도 최소 2년~25년형이 선고됐다.
그러나 일본의 반인륜적 범죄를 처음으로 단죄한 하바로프스크 재판은 서방 진영의 무관심 속에 그 실상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재판이 끝난 다음해 소련은 다시 미국 국무장관에게 731부대의 범죄를 다루기 위해 새로운 국제군사재판을 열자고 제의했으나 미국은 그 제의마저 묵살했다.
그러나 일본 전범은 나중에 모두 석방 되었다 ..허무 하군
소련이 너무 인도적이여 ..
731부대에 대한 더 이상의 단죄는 없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미국이 그때 왜 침묵했는지에 대한 증거가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미국은 종전 이후 731부대에 대해 총 4차례에 걸친 조사를 한 뒤 4건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미국 정보장교였던 샌더스 중령은 731부대에서 인공혈액을 연구한 나이토 등을 심문해 1945년 9월 제1차 샌더스 보고서를 남겼다.
▲ 731부대원들의 야외 훈련 모습 2차 조사관으로 임명된 의학자 톰슨은 이시이 시로와 두 번째 731부대장이었던 기타노 마사지를 심문해 1946년 3월 제2차 톰슨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 후 로버트 펠에 의해 1947년 4월에 작성된 제3차 펠 보고서에서 미국은 처음으로 731부대의 생체실험 정보를 접했다. 1947년 12월 제4차 힐 보고서를 작성할 때는 주요 731부대원으로부터 생체실험 표본 및 자료를 완벽히 확보했다.
후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미국은 제1차 샌더스 보고서 작성시부터 731부대원에게 면책을 확약하며 생체실험에 대한 정보를 요구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전범재판의 최고 책임자였던 맥아더 미 극동사령관도 731부대원의 죄과를 면책해줄 것을 워싱턴에 요구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일본의 한 요리점에서 미국 정보부 요원과 731부대원 간의 합의가 이루어진 정황도 드러났다.
미국이 정보를 넘겨받는 조건으로 731부대원에게 금전을 제공한 사실도 밝혀졌다. 일본의 한 대학교수가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2005년 발견한 2건의 기밀 해제 문서에 의하면, 당시 미군은 731부대원에게 생체실험 자료를 넘겨받는 대신 전범재판의 기소를 면제해주고 총 15만~20만엔을 제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5년 일본에서 발견된 이시이의 미공개 노트에도 이시이와 연합군사령부 간부들이 회식을 한 사실이 적혀 있었다.
일본의 NHK 방송국은 미국 유타주에 위치한 육군 더그웨이 실험장의 문서관에서 731부대가 작성한 생체실험 자료를 찾아내 공개하기도 했다. 약 2천 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이 자료에는 생체실험을 한 과정이 약 8천장에 이르는 현미경 사진 및 인체 해부도, 각종 도표 등과 함께 구체적으로 나열돼 있었다.
당시 소련 재판부는 일본이 조직적으로 세균무기를 사용해 인류를 파멸시키려고 했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야마다 관동군 총사령관 및 군의부장, 수의부장 등에게는 강제노동 25년형이 선고되고, 나머지 전범들에게도 최소 2년~25년형이 선고됐다.
그러나 일본의 반인륜적 범죄를 처음으로 단죄한 하바로프스크 재판은 서방 진영의 무관심 속에 그 실상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재판이 끝난 다음해 소련은 다시 미국 국무장관에게 731부대의 범죄를 다루기 위해 새로운 국제군사재판을 열자고 제의했으나 미국은 그 제의마저 묵살했다.
그러나 일본 전범은 나중에 모두 석방 되었다 ..허무 하군
소련이 너무 인도적이여 ..
731부대에 대한 더 이상의 단죄는 없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미국이 그때 왜 침묵했는지에 대한 증거가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미국은 종전 이후 731부대에 대해 총 4차례에 걸친 조사를 한 뒤 4건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미국 정보장교였던 샌더스 중령은 731부대에서 인공혈액을 연구한 나이토 등을 심문해 1945년 9월 제1차 샌더스 보고서를 남겼다.
▲ 731부대원들의 야외 훈련 모습 2차 조사관으로 임명된 의학자 톰슨은 이시이 시로와 두 번째 731부대장이었던 기타노 마사지를 심문해 1946년 3월 제2차 톰슨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 후 로버트 펠에 의해 1947년 4월에 작성된 제3차 펠 보고서에서 미국은 처음으로 731부대의 생체실험 정보를 접했다. 1947년 12월 제4차 힐 보고서를 작성할 때는 주요 731부대원으로부터 생체실험 표본 및 자료를 완벽히 확보했다.후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미국은 제1차 샌더스 보고서 작성시부터 731부대원에게 면책을 확약하며 생체실험에 대한 정보를 요구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전범재판의 최고 책임자였던 맥아더 미 극동사령관도 731부대원의 죄과를 면책해줄 것을 워싱턴에 요구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일본의 한 요리점에서 미국 정보부 요원과 731부대원 간의 합의가 이루어진 정황도 드러났다.
미국이 정보를 넘겨받는 조건으로 731부대원에게 금전을 제공한 사실도 밝혀졌다. 일본의 한 대학교수가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2005년 발견한 2건의 기밀 해제 문서에 의하면, 당시 미군은 731부대원에게 생체실험 자료를 넘겨받는 대신 전범재판의 기소를 면제해주고 총 15만~20만엔을 제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5년 일본에서 발견된 이시이의 미공개 노트에도 이시이와 연합군사령부 간부들이 회식을 한 사실이 적혀 있었다.
일본의 NHK 방송국은 미국 유타주에 위치한 육군 더그웨이 실험장의 문서관에서 731부대가 작성한 생체실험 자료를 찾아내 공개하기도 했다. 약 2천 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이 자료에는 생체실험을 한 과정이 약 8천장에 이르는 현미경 사진 및 인체 해부도, 각종 도표 등과 함께 구체적으로 나열돼 있었다.
[출처] 731부대의 비밀 2|작성자 gang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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