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소련 재판부는 일본이 조직적으로 세균무기를 사용해 인류를 파멸시키려고 했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야마다 관동군 총사령관 및 군의부장, 수의부장 등에게는 강제노동 25년형이 선고되고, 나머지 전범들에게도 최소 2년~25년형이 선고됐다.
그러나 일본의 반인륜적 범죄를 처음으로 단죄한 하바로프스크 재판은 서방 진영의 무관심 속에 그 실상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재판이 끝난 다음해 소련은 다시 미국 국무장관에게 731부대의 범죄를 다루기 위해 새로운 국제군사재판을 열자고 제의했으나 미국은 그 제의마저 묵살했다.
그러나 일본 전범은 나중에 모두 석방 되었다 ..허무 하군
소련이 너무 인도적이여 ..
731부대에 대한 더 이상의 단죄는 없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미국이 그때 왜 침묵했는지에 대한 증거가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미국은 종전 이후 731부대에 대해 총 4차례에 걸친 조사를 한 뒤 4건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미국 정보장교였던 샌더스 중령은 731부대에서 인공혈액을 연구한 나이토 등을 심문해 1945년 9월 제1차 샌더스 보고서를 남겼다.
▲ 731부대원들의 야외 훈련 모습 2차 조사관으로 임명된 의학자 톰슨은 이시이 시로와 두 번째 731부대장이었던 기타노 마사지를 심문해 1946년 3월 제2차 톰슨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 후 로버트 펠에 의해 1947년 4월에 작성된 제3차 펠 보고서에서 미국은 처음으로 731부대의 생체실험 정보를 접했다. 1947년 12월 제4차 힐 보고서를 작성할 때는 주요 731부대원으로부터 생체실험 표본 및 자료를 완벽히 확보했다.후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미국은 제1차 샌더스 보고서 작성시부터 731부대원에게 면책을 확약하며 생체실험에 대한 정보를 요구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전범재판의 최고 책임자였던 맥아더 미 극동사령관도 731부대원의 죄과를 면책해줄 것을 워싱턴에 요구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일본의 한 요리점에서 미국 정보부 요원과 731부대원 간의 합의가 이루어진 정황도 드러났다.
미국이 정보를 넘겨받는 조건으로 731부대원에게 금전을 제공한 사실도 밝혀졌다. 일본의 한 대학교수가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2005년 발견한 2건의 기밀 해제 문서에 의하면, 당시 미군은 731부대원에게 생체실험 자료를 넘겨받는 대신 전범재판의 기소를 면제해주고 총 15만~20만엔을 제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5년 일본에서 발견된 이시이의 미공개 노트에도 이시이와 연합군사령부 간부들이 회식을 한 사실이 적혀 있었다.
일본의 NHK 방송국은 미국 유타주에 위치한 육군 더그웨이 실험장의 문서관에서 731부대가 작성한 생체실험 자료를 찾아내 공개하기도 했다. 약 2천 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이 자료에는 생체실험을 한 과정이 약 8천장에 이르는 현미경 사진 및 인체 해부도, 각종 도표 등과 함께 구체적으로 나열돼 있었다.
[출처] 731부대의 비밀 2|작성자 gangl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