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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人は韓国に支配された劣等な先祖を憎みます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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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書紀は百済の立つのを倣ったことで見ている. 日本書紀で古代史は神話と伝説で一杯で, 誇張されるとか虚構が多い. それは彼らが記録を残しておかなくてほとんどすべてのものを伝来言い伝え(伝来伝言)に寄り掛から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からだ. 記録ができなかったことは文を知り合いがあまりいないことから生じた事だ.

▲ 万葉 ガーナ式文字 (C) 日本東京大学図書館

その例で, 日本書紀ミンダルワンニョン(敏逹元年)<西紀572年>組に見れば高句麗で漢文になった手紙が来たが日本臣下の中それを読める者が誰もいなかったという記事がいる. 6世紀までも日本全域には字もない暗黒期が持続する劣悪な文化水準だった. 日本書紀にはその文を解読するために百済係流民小児麻子(蘇我馬子)を代わりで封じて, その文を読むようにしたという記事がいる.


唐に初めて日本の国王名前が紹介されて記録に出たことは追考女帝(推古女帝)<西紀 592年-西紀 628年>だった. スイコ(推古) 女王は百済係の小児さん(蘇我氏)が土着勢力であるムルブシ(物部氏)を追い出して推戴した人だった.

日本書紀に出ている文を総合すれば, 百済係の小児さん勢力が保守派を打倒して政権を掌握したことは仏教公認を取り囲んだけんかがきっかけになったと言う. 当時百済のアズァテザ(阿佐太子)が日本へ行って(西紀 579年) 成徳太子(聖徳太子)の師匠になった.

成徳太子と百済係の飛虎を受けて仏教が盛んでその後で仏像で僧侶たちが日本に入って来た. すると土着保守派たちが反撥しながらミンダル(敏逹)14年<西紀 585年> ムルブシ土着勢力が斜塔, 仏像, 仏典を火を放って破壊した.

その年天皇が死んで勇名(用明)が即位したが, 君臣間の葛藤で天皇がまた死んで, またスングズン(崇峻)が天皇に上がる. しかし, ムルブシ勢力がずっと仏教振興を反対したから百済係小児さん勢力はムルブシを首切りしながら天皇も一緒に殺害する. 天皇をとり除いて小児麻子(蘇我馬子)の甥姪女であるスイコ(推古)を帝位にあげる. 百済血統の女が天皇に上がったのだ.


日本書紀によれば 5世紀に百済の王である(王仁)が渡日(渡日)真書初めて漢字を教えてくれたし, その後百済, 新羅, 高句麗三国の僧侶と学者たちがずっと渡日して漢文を教えた結果 8世紀(西紀700年代)に来てどの位字が広がった.

▲ 日本書紀の内容中一つ. 高句麗で漢文になった手紙が全中来たが日本臣下の中それを読める者が誰もいないでその文を解読するために百済係流民小児麻子(蘇我馬子)に文内容を読むようにする挿し絵

百済の五経博士(五経博士)が渡日してボクサー(卜書), 医書(医書), 力で(暦書)を教えたが, この頃に日本語うーんを現わすリドックシック(吏読式) 表記であるマンヨブ(万葉)ガーナ式日本文が形成されたと言う.

国家のフレームをまともに取り揃える時期が古事記と日本書紀を作った西紀 712年で西紀 720年頃であり, 日本の史学者たちは日本が正式で国家を形成した時期を 6-7世紀アスカ(飛鳥)時代に見るが, 力強い国家形態を持ったと言っても天下統一になったのではなか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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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은 한국에 지배된 열등한 선조를 미워합니까?

일본서기는 백제의 서기를 본뜬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서기에서 고대사는 신화와 전설로 가득하고, 과장되거나 허구가 많다. 그것은 그들이 기록을 남겨 놓지 않아 거의 모든 것을 전래전언(傳來傳言)에 의존해야 했기 때문이다. 기록을 못한 것은 글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서 생긴 일이다.

▲ 萬葉 가나식 문자    © 일본 동경대학교 도서관 

그 예로, 일본서기 민달원년(敏達元年)<서기572년>조에 보면 고구려에서 한문으로 된 편지가 왔는데 일본 신하 가운데 그것을 읽을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는 기사가 있다. 6세기까지도 일본 전역에는 글자도 없는 암흑기가 지속되는 열악한 문화수준이었다. 일본서기에는 그 글을 해독하기 위해서 백제계 유민 소아마자(蘇我馬子)를 대신으로 봉하고, 그 글을 읽게 했다는 기사가 있다.


당나라에 처음으로 일본의 국왕 이름이 소개되어 기록에 나온 것은 추고여제(推古女帝)<서기 592년-서기 628년>였다. 스이코(推古) 여왕은 백제계의 소아씨(蘇我氏)가 토착세력인 물부씨(物部氏)를 몰아내고 추대한 사람이었다.

일본서기에 나와 있는 글을 종합하면, 백제계의 소아씨 세력이 보수파를 타도하고 정권을 장악한 것은 불교 공인을 둘러싼 싸움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 백제의 아좌태자(阿佐太子)가 일본에 가서(서기 579년) 성덕태자(聖德太子)의 스승이 되었다.

성덕태자와 백제계의 비호를 받아 불교가 성행하면서 그 이후로 불상이며 승려들이 일본에 들어왔다. 그러자 토착 보수파들이 반발하면서 민달(敏達)14년<서기 585년> 물부씨 토착세력이 사탑, 불상, 불전을 불 지르고  파괴했다.

그해 천황이 죽고 용명(用明)이 즉위했지만, 군신간의 갈등으로 천황이 또 죽고, 다시 숭준(崇峻)이 천황에 오른다. 그러나, 물부씨 세력이 계속 불교 진흥을 반대했기 때문에 백제계 소아씨 세력은 물부씨를 숙청하면서 천황도 함께 살해한다. 천황을 제거하고 소아마자(蘇我馬子)의 생질녀인 스이코(推古)를 제위에 올린다. 백제 혈통의 여자가 천황에 오른 것이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5세기에 백제의 왕인(王仁)이 도일(渡日)해서 처음으로 한자를 가르쳐 주었고, 그후 백제, 신라, 고구려 삼국의 승려와 학자들이 계속 도일해서 한문을 가르친 결과 8세기(서기700년대)에 와서 어느 정도 글자가 퍼졌다.

▲ 일본 서기의 내용중 하나. 고구려에서 한문으로 된 편지가 온 가운데 왔는데 일본 신하 가운데 그것을 읽을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자 그 글을 해독하기 위해서 백제계 유민 소아마자(蘇我馬子)에게 글 내용을 읽게 하는 삽화    

백제의 오경박사(五經博士)가 도일해서 복서(卜書), 의서(醫書), 력서(曆書)를 가르쳤는데, 이 무렵에 일본어 음을 나타내는 리독식(吏讀式) 표기인 만엽(萬葉)가나식 일본글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국가의 틀을 제대로 갖추는 시기가 고사기와 일본서기를 만들던 서기 712년에서 서기 720년 무렵이며, 일본의 사학자들은 일본이 정식으로 국가를 형성했던 시기를 6-7세기 아스까(飛鳥)시대로 보지만, 강력한 국가 형태를 지녔다고 해도 천하통일 된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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