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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君主たちは敗戦国の王に自分の公州を与える?w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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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원)은 1231년 이래 약 30년 가까이 7차례에 걸쳐서 고려에 침입하여 마침내 고려를 복속시킵니다. 고려는 그 후 몽골의 정치적 간섭이 시작되어 24대 원종 이후 고려의 태자는 선왕이 죽어 이를 계승하게 될 때까지 몽골에 머무는 것이 상례가 되었고, 부마국(駙馬國, 사위 나라)으로 전락하여 충렬왕·충선왕·충숙왕·충혜왕·충목왕·충정왕·공민왕에 이르는 약 1세기 동안 왕통은 혼혈화되었습니다. 그 첫 주자인 25대 충렬왕의 왕비는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로 본명은 홀도로게리미실(忽都魯揭里迷失)입니다. 원세조 쿠빌라이의 딸로서 상당히 권위적이라 충렬왕도 무서워 했습니다.


그녀가 1297년 39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정치에 염증을 느낀 충렬왕은 아들 장(璋)에게 보위를 넘기니 이가 충선왕입니다. 충선왕의 비는 계국대장공주(薊國大長公主) 보탑실련(寶塔實憐)으로 쿠빌라이의 차남이자 황태자였던 친킴의 장남 진왕 카말라의 딸입니다. 둘 사이는 그다지 좋지 않아 충선왕은 바람 깨나 피웠고, 보탑실련도 지지 않고 바람을 피웠습니다. 충선왕은 세자로 몽골에 머물던 시절, 야속진이라는 몽골녀와의 사이에서 도(燾)라는 아들을 얻었는데, 그가 27대 충숙왕입니다. 이 충숙왕은 아버지 만큼이나 여자 관계가 복잡하여 몽골 공주만 셋과 결혼을 했습니다.


첫번째 왕비는 복국장공주(濮國長公主) 역련진팔라(亦憐眞八剌)로 쿠빌라이의 6남 후게치의 손녀입니다. 하지만 충숙왕은 이미 명덕태후(明德太后) 홍씨와 결혼했기에 역련진팔라를 얼마나 싫어했는지 그녀가 충숙왕이 때려서 죽었다라는 풍문 때문에 원에 불려가 자칫 왕위를 잃을 뻔 했지만 황제가 바뀌는 바람에 간신히 살아난 뒤 새 장가를 듭니다. 이번에는 조국장공주(曹國長公主) 금동(金童)으로 친킴의 차남 다르마발라의 장남 위왕 아무가의 딸입니다. 그러나 그녀도 다음 해 아들을 낳고 죽고 맙니다. 이렇듯 연이어 몽골 공주들이 죽어 나가니 충숙왕은 다시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다행히 이때 원은 황제 계승을 둘러싼 내란 중이어서 이 문제를 문책할 상황이 아니었기에 충숙왕은 왕위를 보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원의 황제가 문종 툭 테무르의 즉위로 안정되자 충숙왕의 왕위는 박탈당하고, 장남 정(禎)이 왕위에 올랐으니 28대 충혜왕입니다. 그는 선왕들과는 달리 충숙왕과 고려 여인 명덕태후 홍씨의 소생입니다. 그가 충숙왕과 금동 사이에서 낳은 용산원자(龍山元子)를 제치고 왕위에 오른 것은 툭 테무르 즉위의 공신인 승상 엘 테무르와 그가 14살 때 원에서 만났는데, 이 때부터 엘 테무르가 그를 친아들처럼 귀여워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한편 왕위를 빼앗긴 충숙왕은 원으로 들어가 다시 몽골 여인과 결혼하니 경화공주(慶華公主) 백안홀도(伯顔忽都)입니다. 그녀는 공주라는 호칭으로 볼 때 왕족은 맞지만 아마도 쿠빌라이의 후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어쨌든 충숙왕은 충혜왕의 지지자인 엘 테무르가 죽자 다시 왕위에 오릅니다. 그리고 충숙왕이 죽고 또 다시 왕위에 오른 충혜왕은 서모 백안홀도를 강간합니다. 또한 아버지의 후비 수비 권씨도 강간하는 등 얼굴만 반반하다 싶은 여자는 모두 범하는 그야말로 패륜아의 극치였습니다. 결국 그는 원이 보낸 사신에 의해 체포되어 압송되어 귀양을 가서 죽고 맙니다. 


충혜왕의 왕비는 덕녕공주(德寧公主) 역련진반(亦憐眞班)으로 쿠빌라이의 7남 오그룩치의 증손녀입니다. 충혜왕 사후 신하들과 통정을 했다고 하는데, 그녀와 충혜왕의 소생인 8살의 장남 흔(昕)이 충목왕에 올랐다가 4년 만에 죽었기에 왕비는 없습니다. 뒤를 이은 충정왕도 12살에 즉위하여 3년 만에 죽어 왕비가 없습니다. 충정왕의 뒤를 이은 31대 공민왕은 충혜왕의 동생으로 어머니도 명덕태후로 같습니다. 왕비는 노국대장공주(徽懿魯國大長公主) 보탑실리(寶塔失里)로 위왕 아무가의 손녀이며, 충숙왕비 금동의 조카입니다. 둘은 공민왕이 아직 왕위에 오르기 전 원에서 결혼했습니다.


충정왕 원년 당시 강릉대군이었던 공민왕은 충혜왕 이후 왕위를 기대했으나 그렇게 되지 못했기에 정치적 세력을 얻고자 몽골 공주인 보탑실리와 결혼한 것입니다. 이처럼 정략적 결혼이었지만 두 사람은 깊은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공민왕은 적극적인 자주정책으로 원 왕실과 결탁한 기철 일파의 숙청, 몽골풍과 쌍성총관부 폐지 등 혁신정책을 펼쳤지만 보탑실리가 죽자 그녀를 추모하는 불사에만 전념했습니다. 그러다 자제위의 홍륜이 후궁 익비를 임신시키자 이를 무마하려고 홍륜과 최만생을 죽이려다 오히려 그들에게 암살당합니다. 이로써 몽골 공주들이 고려 왕실에 시집오는 일도 끝을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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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라 왕:고려인은 열등하니까 빨리 내 딸들을 고려 왕에게 시집 보내서 고려를 내 편에 있게 해야지.

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

평범한 혐한인들의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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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군주들은 패전국의 왕에게 자신의 공주를 주는?ww

몽골(원)은 1231년 이래 약 30년 가까이 7차례에 걸쳐서 고려에 침입하여 마침내 고려를 복속시킵니다. 고려는 그 후 몽골의 정치적 간섭이 시작되어 24대 원종 이후 고려의 태자는 선왕이 죽어 이를 계승하게 될 때까지 몽골에 머무는 것이 상례가 되었고, 부마국(駙馬國, 사위 나라)으로 전락하여 충렬왕·충선왕·충숙왕·충혜왕·충목왕·충정왕·공민왕에 이르는 약 1세기 동안 왕통은 혼혈화되었습니다. 그 첫 주자인 25대 충렬왕의 왕비는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로 본명은 홀도로게리미실(忽都魯揭里迷失)입니다. 원세조 쿠빌라이의 딸로서 상당히 권위적이라 충렬왕도 무서워 했습니다.


그녀가 1297년 39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정치에 염증을 느낀 충렬왕은 아들 장(璋)에게 보위를 넘기니 이가 충선왕입니다. 충선왕의 비는 계국대장공주(薊國大長公主) 보탑실련(寶塔實憐)으로 쿠빌라이의 차남이자 황태자였던 친킴의 장남 진왕 카말라의 딸입니다. 둘 사이는 그다지 좋지 않아 충선왕은 바람 깨나 피웠고, 보탑실련도 지지 않고 바람을 피웠습니다. 충선왕은 세자로 몽골에 머물던 시절, 야속진이라는 몽골녀와의 사이에서 도(燾)라는 아들을 얻었는데, 그가 27대 충숙왕입니다. 이 충숙왕은 아버지 만큼이나 여자 관계가 복잡하여 몽골 공주만 셋과 결혼을 했습니다.


첫번째 왕비는 복국장공주(濮國長公主) 역련진팔라(亦憐眞八剌)로 쿠빌라이의 6남 후게치의 손녀입니다. 하지만 충숙왕은 이미 명덕태후(明德太后) 홍씨와 결혼했기에 역련진팔라를 얼마나 싫어했는지 그녀가 충숙왕이 때려서 죽었다라는 풍문 때문에 원에 불려가 자칫 왕위를 잃을 뻔 했지만 황제가 바뀌는 바람에 간신히 살아난 뒤 새 장가를 듭니다. 이번에는 조국장공주(曹國長公主) 금동(金童)으로 친킴의 차남 다르마발라의 장남 위왕 아무가의 딸입니다. 그러나 그녀도 다음 해 아들을 낳고 죽고 맙니다. 이렇듯 연이어 몽골 공주들이 죽어 나가니 충숙왕은 다시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다행히 이때 원은 황제 계승을 둘러싼 내란 중이어서 이 문제를 문책할 상황이 아니었기에 충숙왕은 왕위를 보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원의 황제가 문종 툭 테무르의 즉위로 안정되자 충숙왕의 왕위는 박탈당하고, 장남 정(禎)이 왕위에 올랐으니 28대 충혜왕입니다. 그는 선왕들과는 달리 충숙왕과 고려 여인 명덕태후 홍씨의 소생입니다. 그가 충숙왕과 금동 사이에서 낳은 용산원자(龍山元子)를 제치고 왕위에 오른 것은 툭 테무르 즉위의 공신인 승상 엘 테무르와 그가 14살 때 원에서 만났는데, 이 때부터 엘 테무르가 그를 친아들처럼 귀여워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한편 왕위를 빼앗긴 충숙왕은 원으로 들어가 다시 몽골 여인과 결혼하니 경화공주(慶華公主) 백안홀도(伯顔忽都)입니다. 그녀는 공주라는 호칭으로 볼 때 왕족은 맞지만 아마도 쿠빌라이의 후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어쨌든 충숙왕은 충혜왕의 지지자인 엘 테무르가 죽자 다시 왕위에 오릅니다. 그리고 충숙왕이 죽고 또 다시 왕위에 오른 충혜왕은 서모 백안홀도를 강간합니다. 또한 아버지의 후비 수비 권씨도 강간하는 등 얼굴만 반반하다 싶은 여자는 모두 범하는 그야말로 패륜아의 극치였습니다. 결국 그는 원이 보낸 사신에 의해 체포되어 압송되어 귀양을 가서 죽고 맙니다. 


충혜왕의 왕비는 덕녕공주(德寧公主) 역련진반(亦憐眞班)으로 쿠빌라이의 7남 오그룩치의 증손녀입니다. 충혜왕 사후 신하들과 통정을 했다고 하는데, 그녀와 충혜왕의 소생인 8살의 장남 흔(昕)이 충목왕에 올랐다가 4년 만에 죽었기에 왕비는 없습니다. 뒤를 이은 충정왕도 12살에 즉위하여 3년 만에 죽어 왕비가 없습니다. 충정왕의 뒤를 이은 31대 공민왕은 충혜왕의 동생으로 어머니도 명덕태후로 같습니다. 왕비는 노국대장공주(徽懿魯國大長公主) 보탑실리(寶塔失里)로 위왕 아무가의 손녀이며, 충숙왕비 금동의 조카입니다. 둘은 공민왕이 아직 왕위에 오르기 전 원에서 결혼했습니다.


충정왕 원년 당시 강릉대군이었던 공민왕은 충혜왕 이후 왕위를 기대했으나 그렇게 되지 못했기에 정치적 세력을 얻고자 몽골 공주인 보탑실리와 결혼한 것입니다. 이처럼 정략적 결혼이었지만 두 사람은 깊은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공민왕은 적극적인 자주정책으로 원 왕실과 결탁한 기철 일파의 숙청, 몽골풍과 쌍성총관부 폐지 등 혁신정책을 펼쳤지만 보탑실리가 죽자 그녀를 추모하는 불사에만 전념했습니다. 그러다 자제위의 홍륜이 후궁 익비를 임신시키자 이를 무마하려고 홍륜과 최만생을 죽이려다 오히려 그들에게 암살당합니다. 이로써 몽골 공주들이 고려 왕실에 시집오는 일도 끝을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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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라 왕:고려인은 열등하니까 빨리 내 딸들을 고려 왕에게 시집 보내서 고려를 내 편에 있게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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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혐한인들의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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