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倭国の朝鮮通信使もてなしに使った費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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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年米上がり高 12% 接待費で使用”

オックスフォード ルイス教授論文

曰で王のようなもてなしを受けた先進 朝鮮通信使


“日本が朝鮮通信使の一回訪問に使った接待費用は (日本の) 一年米上がり高の 12%を越えた.”

朝鮮時代日本に文化を伝えた朝鮮通信使仲間が現地で受けた至れり尽せりなもてなしがどの位だったのか具体的に費用を推算した論文が出た. イギリスオックスフォード大東洋学縁旧ソジェイムズルイス教授が先月 31日成均館大大同文化研究員主催で開かれた東洋学学術会議で発表した ‘文明の価格? 17〜19世紀朝鮮の日本謝絶の役目と費用’だ.

ルイス教授はこの日ソウル成均館大 600周年記念館で開かれた学術会議で日本史料に記録がある壬辰の乱以後の朝鮮通信使資料を分析した結果を出した. この期間朝鮮通信使は 1607年から 1811年まで皆 11回送ったし 1617年幹事と 1811年対馬地域を抜けば皆江戸(・現東京)に送った.

彼は 1566〜1825年日本の公式的な外国との関係を盛った文書を編んだ ‘通航一覧()’を引用して 1682年江戸に行く中間拠点である近畿() 地域で朝鮮通信使接待に使われた費用が米 318万7000余石だったと明らかにした. これは 1697年日本の米総生産量(2580万石)を基準で計算すれば一年米生産量の 12%にのぼる羊だ.

彼はまたこの数値がすぎるほど多いという意見に対して “日本全域で朝鮮通信使接待に使われた総費用を盛った資料は発見されなかったが 1655年朝鮮通信使を応待するのに金 100万両(米 83万3000席余り)が使われたという言及もある”と “この記録だけおいてみても 17世紀最小限 3%の局所()が朝鮮通信使接待に使われたと見られる”と言った.

こんな莫大な費用を手におえるために当時幕府政権は朝鮮通信使が過ぎ去る経路にある村に特別税金を賦課して労役に数万人を動員したと言う. 朝鮮通信使が全 1764年 20万人規模の泯乱が起きたことも特別税追加負担と無関係ではないということ.

ルイス教授は “幕府政権は文明国である朝鮮との交流を通じて被支配層に対する権威を強化して水準の高い文化を受け入れるために朝鮮通信使を長続くのを願ったが 19世紀に至って接待費用が ‘破壊的な水準’になるとこれを中止するしかなかった”と分析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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倭國의 조선통신사 대접에 쓴 비용

 

“한해 쌀 수확량 12% 접대비로 사용”

옥스퍼드 루이스 교수 논문

曰에서 왕과 같은 대접을 받은 선진 조선통신사


“일본이 조선통신사의 한 차례 방문에 쓴 접대비용은 (일본의) 한 해 쌀 수확량의 12%를 넘었다.”

조선시대 일본에 문화를 전파한 조선통신사 일행이 현지에서 받은 융숭한 대접이 어느 정도였는지 구체적으로 비용을 추산한 논문이 나왔다. 영국 옥스퍼드대 동양학연구소 제임스 루이스 교수가 지난달 31일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주최로 열린 동양학학술회의에서 발표한 ‘문명의 가격? 17∼19세기 조선의 일본사절의 역할과 비용’이다.

루이스 교수는 이날 서울 성균관대 6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학술회의에서 일본 사료에 기록이 있는 임진왜란 이후의 조선통신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내놓았다. 이 기간 조선통신사는 1607년부터 1811년까지 모두 11차례 보내졌고 1617년 간사이와 1811년 쓰시마 지역을 빼면 모두 에도(·현 도쿄)로 보내졌다.

그는 1566∼1825년 일본의 공식적인 외국과의 관계를 담은 문서를 엮은 ‘통항일람()’을 인용해 1682년 에도로 가는 중간거점인 긴키() 지역에서 조선통신사 접대에 쓰인 비용이 쌀 318만7000여 석이었다고 밝혔다. 이는 1697년 일본의 쌀 총생산량(2580만 석)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한 해 쌀 생산량의 12%에 이르는 양이다.

그는 또 이 수치가 지나치게 많다는 의견에 대해 “일본 전역에서 조선통신사 접대에 쓰인 총비용을 담은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1655년 조선통신사를 접대하는 데 금 100만 냥(쌀 83만3000여 석)이 쓰였다는 언급도 있다”며 “이 기록만 놓고 봐도 17세기 최소한 3%의 국부()가 조선통신사 접대에 사용됐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막대한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당시 막부정권은 조선통신사가 지나가는 경로에 있는 마을에 특별세금을 부과하고 노역에 수만 명을 동원했다고 한다. 조선통신사가 온 1764년 20만 명 규모의 민란이 일어난 것도 특별세 추가 부담과 무관치 않다는 것.

루이스 교수는 “막부정권은 문명국인 조선과의 교류를 통해 피지배층에 대한 권위를 강화하고 수준 높은 문화를 받아들이기 위해 조선통신사를 지속하길 원했지만 19세기에 이르러 접대비용이 ‘파괴적인 수준’이 되자 이를 중지할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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