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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知な日本人がオンドルを研究した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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フランクロイドライト(Frank Lloyd Wright 1867-1959)’というアメリカ建築家がある. アメリカでは彼の英雄的イメージによって彼が設計した建築物たちは社会的関心の対象だったしもし撤去するといううわさがあれば ‘ボルテ’ のような勢いでライトの建築物を守ろうとする運動が起きたりする. アメリカオレゴン株に 1956年ライトが設計した ‘ゴドンハウス(Gordon House)’という住宅がある. この家主人は 2000年これを他人で売ったし, 新しい家主はこの家を撤去して周辺を開発する計画だった. この消息が知られると, アメリカ全域でライトの ‘ゴドンハウス’を守ろうという保存運動が起きた. 遂にここに屈服した所有与える 100日以内に他の地域に移す条件にこの家を共益団体に寄贈するようになった. 2001年結局この家は三つの端くれで分離して巨大なトラックに積まれて院位置で約 40キロメートル離れた ‘オレゴンガーデン(Oregon Garden)’という公園に移されてまた立てられた. ライトの ‘ゴドンハウス’がトラックに積まれて移される歴史的な光景は CNNを通じてアメリカ全域に生中継された. も, この家を移す過程に対する話は ‘The Gordon House: A Moving Experience’という本で詳らかに紹介された. ところでこの家には放課居間底を暖めるための温水パイプが敷かれていた. 1914年, ライトは帝国ポテル(Imperial Hotel)を設計するために日本東京を訪問した. どの寒い冬の日, ホテル設計を依頼した日本王族の招待を受けて不思議な部屋に案内されたが, あの時ライトはその部屋で今まで経験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安楽さを経験して “この部屋がどうしてこんなに安楽なのか”と問った. これに ‘韓国式部屋(Korean Room)’という答とともにその原理を説明聞いて大きく感銘受けて, 当時彼が設計した帝国ポテルのふろ場に韓国のオンドルを適用した. また, アメリカに帰って来た後多くの軒の住宅に韓国のオンドルを適用したがその中の一つが ‘ゴドンハウス’というのだ. ライトは ‘ゴドンハウス’の底に温水パイプを敷いてその上をコンクリートで締め切った. ライトの経験した韓屋は一体どんなに日本に建てられたことだろう? その講義を聞いた後常に分かりたいところにある日意図しなくその答を捜すことができた. この間, 木原大学校キム・ジョン洞教授講義を聞く機会があったが, ライトが経験して歎服したまさにその家が景福宮の東宮である ‘慈善当たり(資善堂)’というのではないか! ¥"オクラギハチで(大倉喜八郎)’という日本人が 1914年景福宮の慈善当たりを日本で持って来て自分の家に移しておいて美術館で使った. この建物は 1923年発生した地震で燃えてお影石でワルデだけ残るようになった. その後このワルデはその間オクラホテルの境内に放置されて来ている途中キム・ジョン洞教授が見つけて 1996年韓国に返還された. しかしこの石たちは火事によって弱化されて景福宮東宮復元市慈善当たりの月どおり使うことができなくて新しい不在で代わりをするしかなかった. 現在この不在たちは明成皇后弑害場所近所に移されている. ライトの自敍伝を探して見れば残りの解答を捜すことができるようだった. 予想どおりライトは彼の自敍伝 ‘An Autobiography’で三ページにわたって韓国のオンドルに対する彼の経験とこれに対する適用事例を詳らかに明らかにしている. 1914年冬, ライトは帝国ポテル設計を始めるためにホテル設計を依頼した東京にある ‘ところではオクラ(Baron Okura)’の家で夕方招待を受けた. 当時日本の普遍的な暖房は ‘ヒヴァするの(hibachi)’というのだったがこれは白い灰下にいくつの炭棒を満たして丸い器に盛って部屋底に残す方式だった. 人々がその周辺に囲んですわってときおりずつその上にちょっと手をあげて拳を握った伸ばしたと言って寒さを追った. しかしこのような暖房方式はいつも満足ではなかった. ライト仲間は寒さに震え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ことをよく分かっていたが, オクラの夕方招待に応じた. 奥という日本皇宮周辺に多くの軒の家を所有していた.

予想どおり夕食場所はとても寒くて食事ができなくてライトはやっと食べる振りばかりしたし, 夕食後, ライトは “韓国式部屋 (Korean room)”と呼ばれる所で案内になった. この部屋は約 12ピイトに 24ピイト(約 3.6メートルに 7.3メートル) 広さと 7ないし 8ピイト(約 2.1ないし 2.4メートル)の高さを持っていた. 底には赤い絨緞が敷かれていたし, 壁はとても平たかったしヨンノ−と色を帯びていた. ところで奇蹟が起きた. 天気が変わったのだ. 急に春になったようだった. ライト仲間の身は暖かくなって幸福感が押し寄せた. しかしどこにも暖房のための装置は見えなかった. 暖房ではなく気候が変わったようだった.

これがちょうど自然親和的な暖房ではないか! 奥という底下でふえる入れるオンドルの原理を説明した. 下からの暖房は信じられない位快適だった. これを経験したライトは直ちに帝国ポテルのふろ場底に電気を利用したオンドルを適用した. このようにすることでタイルになった底はいつも暖かくなった. 暖かいふろ場底を素足に入って行くことは楽しい事だった.

表示凶漢すべての電気ラジエーターたちは皆除去されることができた. また底を暖かくすることでより昼は温度でより快適な暖房が可能になった. 人工的な空間により元気な自然的な気候が作られたのだ.

ライトはアメリカに帰った後, その後彼が設計した 30軒以上の建築物に ‘改良オンドル’を適用した. ライトは底を暖める暖房方式を一番理想的な暖房方式で見て太陽熱より良い暖房だとほめたて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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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한 일본인이 온돌을 연구했지만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 1867-1959)’라는 미국 건축가가 있다. 미국에서는 그의 영웅적 이미지로 인해 그가 설계한 건축물들은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었고 만약 철거한다는 소문이 있으면 ‘벌떼’ 같은 기세로 라이트의 건축물을 지키려는 운동이 일어나곤 한다. 미국 오레곤 주에 1956년 라이트가 설계한 ‘고돈 하우스(Gordon House)’라는 주택이 있다. 이 집 주인은 2000년 이를 다른 사람에서 팔았고, 새로운 집주인은 이 집을 철거하고 주변을 개발할 계획이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미국 전역에서 라이트의 ‘고돈 하우스’를 지키자는 보존운동이 일어났다. 마침내 여기에 굴복한 소유주는 100일 이내에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는 조건으로 이 집을 공익 단체에 기증하게 되었다. 2001년 결국 이 집은 세 개의 토막으로 분리되어 거대한 트럭에 실려 원 위치에서 약 40킬로미터 떨어진 ‘오레곤 가든(Oregon Garden)’이라는 공원으로 옮겨져 다시 세워졌다. 라이트의 ‘고돈 하우스’가 트럭에 실려 옮겨지는 역사적인 광경은 CNN을 통해 미국 전역에 생중계되었다. 또한, 이 집을 옮기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The Gordon House: A Moving Experience’라는 책으로 자세히 소개되었다. 그런데 이 집에는 방과 거실 바닥을 데우기 위한 온수 파이프가 깔려 있었다. 1914년, 라이트는 제국호텔(Imperial Hotel)을 설계하기 위해 일본 도쿄를 방문했다. 어느 추운 겨울날, 호텔 설계를 의뢰한 일본 왕족의 초대를 받고 신기한 방으로 안내되었는데, 그때 라이트는 그 방에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안락함을 경험하고 “이 방이 왜 이렇게 안락한가”라고 물었다. 이에 ‘한국식 방(Korean Room)’이라는 답과 함께 그 원리를 설명 듣고 크게 감명 받아, 당시 그가 설계하던 제국호텔의 욕실에 한국의 온돌을 적용했다. 또한, 미국으로 돌아온 후 여러 채의 주택에 한국의 온돌을 적용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고돈 하우스’라는 것이다. 라이트는 ‘고돈 하우스’의 바닥에 온수 파이프를 깔고 그 위를 콘크리트로 마감했다. 라이트가 경험한 한옥은 도대체 어떻게 일본에 지어진 것일까? 그 강의를 들은 후 늘 궁금하던 차에 어느날 뜻하지 않게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얼마 전, 목원대학교 김정동 교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라이트가 경험하고 탄복한 바로 그 집이 경복궁의 동궁인 ‘자선당(資善堂)’이라는 것이 아닌가! "오쿠라 기하치로(大倉喜八郞)’라는 일본인이 1914년 경복궁의 자선당을 일본으로 가져다가 자신의 집에 옮겨 놓고 미술관으로 사용했다. 이 건물은 1923년 발생한 지진으로 불 타고 화강암으로 월대만 남게 되었다. 그 후 이 월대는 그 동안 오쿠라 호텔의 경내에 방치되어 오다가 김정동 교수가 발견하고 1996년 한국으로 반환되었다. 그러나 이 돌들은 화재로 인해 약화되어 경복궁 동궁복원 시 자선당의 월대로 사용할 수 없어 새로운 부재로 대신할 수 밖에 없었다. 현재 이 부재들은 명성황후 시해 장소 부근으로 옮겨져 있다. 라이트의 자서전을 뒤져보면 나머지의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상대로 라이트는 그의 자서전 ‘An Autobiography’에서 세 페이지에 걸쳐 한국의 온돌에 대한 그의 경험과 이에 대한 적용 사례를 자세히 밝히고 있다. 1914년 겨울, 라이트는 제국호텔 설계를 시작하기 위해 호텔 설계를 의뢰한 도쿄에 있는 ‘바론 오쿠라(Baron Okura)’의 집으로 저녁초대를 받았다. 당시 일본의 보편적인 난방은 ‘히바치(hibachi)’라는 것이었는데 이는 흰 재 밑에 몇 개의 숯 막대를 채워서 둥근 그릇에 담아 방바닥에 두는 방식이었다. 사람들이 그 주변에 둘러 앉아 이따금씩 그 위에 잠깐 손을 올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추위를 쫓았다. 그러나 이러한 난방 방식은 항상 만족스럽지 못했다. 라이트 일행은 추위에 떨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오쿠라의 저녁초대에 응했다. 오쿠라는 일본 황궁 주변에 여러 채의 집을 소유하고 있었다.

예상대로 저녁식사 장소는 너무 추워 식사를 할 수 없어서 라이트는 겨우 먹는 시늉만 했고, 저녁식사 후, 라이트는 “한국식 방 (Korean room)”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안내 되었다. 이 방은 약 12피이트에 24피이트(약 3.6미터에 7.3미터) 넓이와 7내지 8피이트(약 2.1내지 2.4미터)의 높이를 가지고 있었다. 바닥에는 붉은 융단이 깔려 있었고, 벽은 아주 평평했으며 연노랑 색을 띠고 있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날씨가 바뀐 것이다. 갑자기 봄이 된 듯 했다. 라이트 일행의 몸은 따뜻해져 행복감이 밀려왔다. 그러나 어디에도 난방을 위한 장치는 보이지 않았다. 난방이 아니라 기후가 변한 것 같았다.

이것이 바로 자연 친화적인 난방이 아닌가! 오쿠라는 바닥 밑에서 불을 넣는 온돌의 원리를 설명했다. 밑으로부터의 난방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쾌적했다. 이를 경험한 라이트는 즉시 제국호텔의 욕실 바닥에 전기를 이용한 온돌을 적용했다. 이렇게 함으로서 타일로 된 바닥은 항상 따뜻하게 되었다. 따뜻한 욕실 바닥을 맨발로 들어가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보기 흉한 모든 전기 난방기들은 모두 제거될 수 있었다. 또한 바닥을 따뜻하게 함으로서 보다 낮은 온도로 보다 쾌적한 난방이 가능해졌다. 인공적인 공간에 보다 건강한 자연적인 기후가 만들어진 것이다.

라이트는 미국으로 돌아간 후, 그 후 그가 설계한 30채 이상의 건축물에 ‘개량 온돌’을 적용했다. 라이트는 바닥을 데우는 난방방식을 가장 이상적인 난방방식으로 보고 태양열보다 좋은 난방이라고 극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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