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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私はイギリス人意思だ. 耐病, 韓国が直した. 気持ち良い衝撃だ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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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私はイギリス人意思だ. 耐病, 韓国が直した. 気持ち良い衝撃だった.” イギリス応急外科・家庭医学科専門医ロバートウェルズ電子メールインタビュー

“私にまたこんな症状が生じたらその時も躊躇なしに韓国の病院を尋ねるでしょう.” 2004年 8月, イギリスの一専門医が何らの軟膏もない韓国を尋ねた. 当時只今 40代だった彼はイギリスの応急外科と家庭医学科専門医であるロバートウェル(Dr. Robert A Wells) 博士だった. その時まで彼は韓国という国に別に関心がなかった. 関心がないから分からないことも多かった. そんな彼がどうして韓国を尋ねただろうか. 最近 e-メールを通じて彼と対話を交わした. 彼は “非常に気持ち良い経験だった.”と喜んで質問に答えた. 次は彼が明らかにした内容を根拠で彼の ‘韓国医療経験記’を再構成したのだ.

“あれが私の脊椎でしょうか?” 放射線医に聞いた. 自分功名映像(MRI) 映像を見せてくれた放射線医が “残念だがそうだ.”と答えた. 私が見るにもスクリーンに現われた脊椎は深刻に見えたし, それが私の脊椎という事実が衝撃的だった. その前にも木瓜腕に痛症を感じたが別に問題がないと思った.

▲ 我が国で二度にかけて三つの所の脊椎手術を受けて劇的に健康を回復したロバートウェルズ博士の近況. 彼はソウル新聞との電子メールインタビューで “韓国での成功的な治療は新しくて予想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経験だ.”と次には楽な心でまた韓国を尋ねたいと言った.

#マヒ危険に手術もできなかった脊椎以上

当時私は盛んに働く 30代だった. 運動も楽しんで学生時代には陸上選手に活動した. 軍医に服務する時も世界あちこちを歩き回ってすべての肉体的訓練を遂行した. 家庭医学科及び応急外科専門医として医療支援と係わった多様なスポーツイベントに参加した. 一度はリフティングをしている途中腰推にけがをしたがすぐ回復した. ゴルフはもちろんスカッシュとサッカー, スキーを選り分けなかった. それだけではなく私の事にも熱情を傾けた. 医療関連会社(A national O・H medical company)を設立したし MBA 資格を取るための勉強も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そんな私のモックピョがあの地境だって….

#苦痛耐えれなくなり韓国病院紹介受けて

私はよく分かる神経外科専門医を呼んだ. 彼は気を落としたように首を横に振って “私がこんな状態の患者を見たことは落下訓練の中でけがをした軍人だけ”と言った. どんなに治療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問うと彼は “突き出たディスクをとり除いて骨盤骨をはなして頚椎を補強しなければならないしこのために首の先方から機関紙-食道-甲状腺-血管-神経順序に切開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言った. 陽気な彼の顔が固まっていた. 彼が言葉を引き継いだ. “問題は首下側がまひすることもできるという事実だ.” 私は恐ろしかったし, 結局手術を拒否した.

そうな間病症はもっとひどくなって堪えにくい痛症が群がって来たし, 左腕を動かすことさえ難しかった. あの時で手術を決心して関連資料を皆探した. 結論はイギリスで珍しく最小浸湿方式で脊椎手術(MISS)をするマンチェスター医大マーティンナイツ博士に手術を任せようというのだった. しかし彼の返事は失望だった. 彼は “腰推は経験が多いが頚椎手術は経験がない.”と手を横に振った. それとともに彼が問った. “あなたがイギリスの医療のみを信じるのがないなら韓国で行って見る意向があるのか.” 彼がお勧めした韓国の意思がすぐ私たち病院イ・サンホ(私たち病院理事長) 博士だった.

ウェルズ博士はためらった. 韓国医療はもちろん韓国に対しても分かるのがなくからだった. ‘イギリスでできなかった治療を韓国で….’という考えに眠気がささなかった. ナイツ博士が渡したジャーナル論文もき帳面に察した. 韓国行を決心するのに決定的なきっかけになったことはイ・サンホ博士チームが直接開発した ‘燎微鏡レーザー手術’で治療した結果ただ一件の下半身麻痺もなかったという臨床論文だった. 難しく成り立ったこの博士との通話でこころよく ‘OK’という返事を聞いた. もう決まった事を置いてためらう理由がなくて韓国行飛行機に乗った. 2004年 8月だった.

私たち病院でこの博士が直接私の状態を察した. 私が以前に見られなかった ‘一番進歩された’ 撮影装備が人目を引いた. 検診後この博士は私に良い消息と悪い消息を一緒に伝えた. 第一は, ディスクと脊椎状態が MISSを適用するにはとても深刻だというのだったし, したがって MISS 代わりに身体に及ぶ影響を最小化することができる他の手術法が必要だという提案だった. 彼の提案を受け入れて翌日脊椎原版ゾルゼスル(頚椎ドイセで靭帯ゾルゼスル)が進行された. 私の予想と違い手術は背中後で成り立った. 頚椎 4・5・6番(回)骨を骨盤で引き離した骨とチタン素材で補強したし, 頚椎の間の空間にスクリューを挿入して骨を固定させる手術だった. 手術後この博士から “すべてのものがすべてよくできた. 残ったことはリハビリと姿勢校正だけだ.”という言葉を聞いて深い眠りに落ちた. 食べ物と病室環境も良かったし, 専担看護婦も不便なしに私の面倒を見た. 後でよく見たら手術傷は小さくてこぎれいだったし忽ち腕の痛症もしずまって動きがずっと柔らかかった.

#初めには半信半疑… 今は絶対的信頼

イギリスに帰って来た後症状が早く好転した. 痛症やマヒ後遺症がなくてまた仕事ができるという期待に胸がときめいた. その後毎年韓国を尋ねて手術部位狭窄などの問題をこの博士と相談した. 身が徐徐に安定して医者である私が自ら ‘成功’と判定することができた.

しかし私が持ったすべての問題がすべて解決されたのではなかった. 2007年からヒュングツ部位に痛症が現われた. あまり悩むこともなしにこの博士を捜した. 幅広く細密な検事(チォックツゾヤングスル)が成り立ったし, 結果はディスク突き出だった. 今度は MISSが可能だと言った. 2007年 3月にヒュングツ 8・9番(回), 4月に 4・5番(回)脊椎原版ゾルゼスルを受けた. 内視鏡とレーザーを利用したデ−スクソングヒョングスルだった. 局所痲酔後レーザーを利用してディスクがもとの場所を維持するように措置したし, 神経が経つ脊椎官も拡大した.

手術予後は期待より良かった. 徐徐に胸部痛症が消えたし, 腕度頂上に近い運動能力を回復した. この博士は “検査結果, ヒュングツ 2・3番(回)も少しの問題があるが大部分の脊椎が安定した.”と伝えた.

ウェルズ博士に韓国は気持ち良い体験でいっぱいになった所だった. 彼は “韓国での経験は確かに衝撃だった.”と “医療先進国というイギリスの専門医が韓国で身柄を治療するとは思うことができなかった. 私の分かることが全部ではないという事実を学んだ.”と吐露した. “こんな良質の医療サービスが韓国をもっと富裕で豊かに変えること”という彼は “これからは治療ではなく韓国をもっと深く体験することができる旅行のために韓国を尋ねたい.”と言った.

シムゼオック専門記者

 

韓国の医療技術>>>イギリスの医療技術>日本の医療技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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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국인 의사다. 내 병, 한국이 고쳤다. 기분좋은 충격이었다.”

“나는 영국인 의사다. 내 병, 한국이 고쳤다. 기분좋은 충격이었다.” 영국 응급외과·가정의학과 전문의 로버트 웰스 이메일 인터뷰

“나에게 또 이런 증상이 생긴다면 그 때도 주저없이 한국의 병원을 찾을 것이다.” 2004년 8월, 영국의 한 전문의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한국을 찾았다. 당시 갓 40대였던 그는 영국의 응급외과와 가정의학과 전문의인 로버트 웰(Dr. Robert A Wells) 박사였다. 그 때까지 그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별 관심이 없었다. 관심이 없으니 모르는 것도 많았다. 그런 그가 왜 한국을 찾았을까. 최근 e-메일을 통해 그와 대화를 나눴다. 그는 “매우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면서 기꺼이 질문에 답했다. 다음은 그가 밝힌 내용을 근거로 그의 ‘한국 의료체험기’를 재구성한 것이다.

“저게 제 척추인가요?” 방사선사에게 물었다. 자기공명영상(MRI) 영상을 보여주던 방사선사가 “유감스럽지만 그렇다.”고 대답했다. 내가 보기에도 스크린에 드러난 척추는 심각해 보였으며, 그것이 내 척추라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그 전에도 목과 팔에 통증을 느꼈지만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여겼다.

▲ 우리나라에서 두 차례에 걸쳐 세 곳의 척추수술을 받고 극적으로 건강을 회복한 로버트 웰스 박사의 근황. 그는 서울신문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한국에서의 성공적인 치료는 새롭고도 예상하지 못했던 경험이었다.”며 다음에는 편한 마음으로 다시 한국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마비 위험에 수술도 못 한 척추 이상

당시 나는 한창 일할 30대였다. 운동도 즐겨 학창 시절에는 육상 선수로 활동했다. 군의관으로 복무할 때도 세계 곳곳을 누비며 모든 육체적 훈련을 수행했다. 가정의학과 및 응급외과 전문의로서 의료 지원과 관련된 다양한 스포츠 이벤트에 참여했다. 한번은 리프팅을 하다가 요추를 다쳤으나 곧 회복되었다. 골프는 물론 스쿼시와 축구, 스키를 가리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내 일에도 열정을 쏟았다. 의료 관련 회사(A national O·H medical company)를 설립했으며 MBA 자격을 따기 위한 공부도 해야 했다. 그런 나의 목뼈가 저 지경이라니….

#고통 견디다 못해 한국 병원 소개받아

나는 곧잘 아는 신경외과 전문의를 불렀다. 그는 낙담한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내가 이런 상태의 환자를 본 것은 낙하훈련 중 다친 군인뿐”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치료해야 하느냐고 묻자 그는 “돌출한 디스크를 제거하고 골반뼈를 떼어 경추를 보강해야 하며 이를 위해 목의 앞쪽에서부터 기관지-식도-갑상선-혈관-신경 순으로 절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쾌활한 그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문제는 목 아래쪽이 마비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두려웠고, 결국 수술을 거부했다.

그러는 사이 병증은 더 심해져 참기 어려운 통증이 몰려왔고, 왼팔을 움직이기조차 어려웠다. 그때서야 수술을 결심하고 관련 자료를 모두 뒤졌다. 결론은 영국에서 드물게 최소침습 방식으로 척추수술(MISS)을 하는 맨체스터의대 마틴 나이츠 박사에게 수술을 맡기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실망스러웠다. 그는 “요추는 경험이 많지만 경추 수술은 경험이 없다.”면서 손을 저었다. 그러면서 그가 물었다. “당신이 영국의 의료만을 믿는 게 아니라면 한국으로 가 볼 의향이 있느냐.” 그가 추천한 한국의 의사가 바로 우리들병원 이상호(우리들병원 이사장) 박사였다.

웰스 박사는 망설였다. 한국 의료는 물론 한국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어서였다. ‘영국에서 못 한 치료를 한국에서….’라는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았다. 나이츠 박사가 건네 준 저널 논문도 꼼꼼히 살폈다. 한국행을 결심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이상호 박사팀이 직접 개발한 ‘현미경 레이저수술’로 치료한 결과 단 한 건의 하반신 마비도 없었다는 임상 논문이었다. 어렵게 이뤄진 이 박사와의 통화에서 흔쾌히 ‘OK’라는 대답을 들었다. 이미 결정된 일을 두고 망설일 이유가 없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2004년 8월이었다.

우리들병원에서 이 박사가 직접 내 상태를 살폈다. 내가 이전에 보지 못한 ‘가장 진보된’ 촬영장비가 눈길을 끌었다. 검진 후 이 박사는 내게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을 함께 전했다. 첫째는, 디스크와 척추 상태가 MISS를 적용하기에는 너무 심각하다는 것이었고, 따라서 MISS 대신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다른 수술법이 필요하다는 제안이었다.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 다음 날 척추원판 절제술(경추 뒤세로 인대 절제술)이 진행됐다. 내 예상과 달리 수술은 등 뒤에서 이뤄졌다. 경추 4·5·6번 뼈를 골반에서 떼어낸 뼈와 티타늄 소재로 보강했으며, 경추 사이의 공간에 스크루를 삽입해 뼈를 고정시키는 수술이었다. 수술 후 이 박사로부터 “모든 것이 다 잘됐다. 남은 것은 재활과 자세 교정뿐이다.”라는 말을 듣고 깊은 잠에 빠졌다. 음식과 병실 환경도 좋았고, 전담 간호사도 불편 없이 나를 보살폈다. 나중에 살펴보니 수술 상처는 작고 깔끔했으며 금세 팔의 통증도 가라앉아 움직임이 훨씬 부드러웠다.

#처음엔 반신반의… 지금은 절대적 신뢰

영국으로 돌아온 후 증상이 빠르게 호전되었다. 통증이나 마비 후유증이 없어 다시 일을 할 수 있다는 기대에 가슴이 설랬다. 그 후 해마다 한국을 찾아 수술 부위 협착 등의 문제를 이 박사와 상의했다. 몸이 점차 안정되어 의사인 내가 스스로 ‘성공’이라고 판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가진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2007년부터 흉추 부위에 통증이 나타났다. 별로 고민할 것도 없이 이 박사를 찾았다. 폭넓게 세밀한 검사(척추조영술)가 이뤄졌고, 결과는 디스크 돌출이었다. 이번에는 MISS가 가능하다고 했다. 2007년 3월에 흉추 8·9번, 4월에 4·5번 척추원판 절제술을 받았다. 내시경과 레이저를 이용한 디스크성형술이었다. 국소마취 후 레이저를 이용해 디스크가 제자리를 유지하도록 조치했으며, 신경이 지나는 척추관도 확대했다.

수술 예후는 기대보다 좋았다. 점차 흉부 통증이 사라졌고, 팔도 정상에 가까운 운동능력을 회복했다. 이 박사는 “검사 결과, 흉추 2·3번도 약간의 문제가 있지만 대부분의 척추가 안정되었다.”고 전했다.

웰스 박사에게 한국은 기분 좋은 체험으로 가득 찬 곳이었다. 그는 “한국에서의 경험은 확실히 충격이었다.”면서 “의료 선진국이라는 영국의 전문의가 한국에서 신병을 치료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배웠다.”고 토로했다. “이런 양질의 의료서비스가 한국을 더욱 부유하고 풍요롭게 바꿀 것”이라는 그는 “이제는 치료가 아니라 한국을 더 깊이 체험할 수 있는 여행을 위해 한국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심재억 전문기자

 

한국의 의료 기술>>>영국의 의료기술>일본의 의료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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