百済地から行くと遺物が出たと?
[中央日報維持号]
全南新安郡安坐もベノルリゴブンで発掘されたかぶと・よろい・刀・矛・矢先などの姿. 下側写真は伽揶係輸血式ソックグァックミョ. [童身台文化博物館調査団提供]
全南木浦で西南方へ 21
KJCLUB 日韓文化交流へようこ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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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南新安郡安坐もベノルリゴブンで発掘されたかぶと・よろい・刀・矛・矢先などの姿. 下側写真は伽揶係輸血式ソックグァックミョ. [童身台文化博物館調査団提供]
全南木浦で西南方へ 21
[중앙일보 유지호]
전남 신안군 안좌도 배널리고분에서 발굴된 투구·갑옷·칼·창·화살촉 등의 모습. 아래쪽 사진은 가야계 수혈식 석곽묘. [동신대 문화박물관 조사단 제공]
전남 목포에서 서남쪽으로 21㎞ 떨어진 신안군 안좌도가 과거 군사적 요충지였다는 학설이 나왔다. 한·중·일 등 고대 동아시아 무역항로의 거점인데다, 바다와 내륙의 관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중국·일본의 무역선이 영산강을 따라 육지로 들어오기 위해선 안좌도·압해도를 거쳐야 했다. 또 강진·영암·나주 등의 특산품은 안좌도를 거쳐 바다로 나갔다. 이런 안좌도에서 5세기 무렵에 제작된 가야 무덤과 유물이 무더기로 출토됐다. 서남해안의 섬 지역에서 갑옷 파편 등이 출토된 사례는 있지만 완벽한 형태의 투구와 갑옷 등이 발굴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동신대학교 문화박물관 조사단(단장 이정호 교수)은 4월 중순부터 안좌도 "읍동고분(중심지)"과 "배널리고분(변두리)"에서 발굴작업을 했다. 이 가운데 모두 3기가 발견된 배널리 고분 한 곳에서 5세기경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투구·갑옷·칼·창·화살촉·장식구(옥) 등 다량의 무기류가 발굴됐다. 투구는 충각부주(정수리에서 이마까지 각이 진 투구)이고 갑옷은 삼각판갑(삼각철판을 이어 만든 갑옷)으로, 5세기에 제작됐다. 이 고분의 양식은 가야계 수혈식 석곽이며, 갑옷·무기 등의 부장품 역시 가야의 매장 풍습이다. 조사단은 이 같은 점으로 미뤄 고분의 주인공이 가야와 깊은 관계가 있는 장수로 추정했다. 나머지 2기의 고분은 묘실까지 도굴됐으나 잔존 형태로 봤을 때 백제 계통으로 추정됐다.
배널리와 함께 발굴된 읍동에서도 고분 2기가 발굴됐다. 조사단은 읍동고분이 배널리보다 40∼50년 늦으며, 백제 귀족들의 무덤으로 추정했다. 부여 능산리 고분과 양식이 같은 백제 사비기의 횡혈식 석실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재근 신안군 학예연구사는 “고대시대엔 육로보다 해양 루트 개발이 중요했다”며 “해양 세력이 내륙으로 진출하거나 육지에서 바다로 나가기 위해선 관문 역할을 하는 섬(안좌도)을 선점해야 하는데, 이 때 군사력이 필요했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지역 역사학계에선 백제 근초고왕이 4세기 마한을 병합하고 대가야(고령)·소가야(고성)까지 세력을 확대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군사적으로 중요한 안좌도를 지키기 위해 당시 관계를 맺고 있는 가야군을 용병으로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이정호 동신대 조사단장은 교수는 “배널리 고분군이 입지한 섬은 고대에는 사람이 살기 어려운 작은 무인도였다”며 “안좌도 일대가 고대 해양 루트의 전략적 요충지이고 무덤은 해로(海路)를 지키던 군사집단의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조사단은 이번에 출토된 투구·갑옷 등은 과학적 보존 처리 과정을 거쳐 조만간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백제문화권으로 알려진 전북 장수군 일대에서 가야시대 문화유적이 대거 발굴돼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발굴된 청동기 유물. | 장수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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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권’ 전북지역서 가야 유물 발견
ㆍ전북 장수서 200여기 옛 무덤 “봉분 구조 가야형”
“이렇게 큰 무덤이 무더기로 발견된 것은 백제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가야시대 본방에서도 이렇게 많은 고총들이 발견된 곳은 없습니다. 가야 소국 왕의 무덤일 가능성도 있지요.”(군산대 곽장근 교수)
백제문화권인 전북 동부산악지대에서 가야시대 문화유산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전북 장수를 지나는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와 익산~장수 간 고속도로 공사가 진행되면서 이뤄진 문화유적 발굴조사가 시발점이 되었다. 학술조사 결과 고령, 김해 등 경남지방을 중심으로 알려진 가야의 영역이 5~6세기까지 전북 동부산악지대에까지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남원과 진안 등 동부산악권의 가야문화는 특히 장수군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까지 장수군에서 발굴된 가야 문화유적은 방대하다. 고총의 경우 장수읍 동촌리 83기를 비롯해 장계면 삼봉리 41기, 월강리 23기, 장계리 20기, 호덕리 41기 등 총 208기가 확인됐다. 당시 세력을 지키기 위한 5곳의 산성과 14곳의 봉수도 속속 밝혀지고 있다.
장수군 가야문화 발굴작업은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1996년 천천면 삼고리 고분군을 시작으로 발굴조사를 시작했다. 군산대학교 박물관이 나서 장수군 전 지역을 대상으로 실시한 문화재 지표조사에서는 장수읍 동촌리 일원에 고분군이 자리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이 고총이 가야의 것임은 봉분구조에서 드러났다. 봉분의 크기가 20~30m에 이르는 대형고분이 200여기나 발견된 것이다. 백제에서 이런 고분은 왕릉 빼고는 없다. 가야에도 대형고분이 군집을 이루기는 했으나 200여기가 발견된 것은 이례적이다.
군산대 곽장근 교수(51·사학과)는 “장수권에서 유일하게 밀집된 수백여기의 고총은 호남의 상징적 관문인 육십령 고개를 장악했던 가야계 소국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준다”면서 “가야본국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던 대형봉분이 무더기로 나온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금까지 학술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장수지역에 5~6세기 초엽까지 국가형태를 유지하면서 발전한 가야세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그간 호남지방이 백제 영토였다는 일반적인 인식을 뒤집는 것이기도 하다.
장수군은 지난 10월 ‘백제와 가야 그리고 신라의 각축장 금강상류지역’이란 주제의 한국 상고사학회 학술발표대회와 제8차 가야문화권 14개 시장·군수협의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는 가야문화권 종합개발계획 수립 등 6개 안건이 처리되는 결실을 맺었다.
장재영 장수군수는 “가야고분 발굴을 위해 내년에 토지매입과 기초조사 용역에 나서는 등 그간 무관심했던 역사 재정비 작업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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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 기록의 정확성은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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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에는 전라도는 본래부터 백제토지로 나와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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