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기회에 뿌리 출판사에 나온 책 ‘핵물리학자 이휘소’(공석하 저)를 읽고 충격을 받아 일주일 동안 관련 자료에 빠져 살았다. 그 결과 내린 결론은 이휘소 박사의 삶과 죽음은 미국에 종속된 한국 지식인들 모순의 총체라는 것이었다.
이휘소 박사의 삶을 탐구하면서 비단 이휘소 박사 개인으로 끝날 비극이 아니며 이 모순을 바로잡지 못한다면 제2, 제3 이휘소의 비극은 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몇 편의 글을 통해 이휘소 박사에 대해 살펴볼까한다. 제1편에서는 이휘소 박사가 6-70년대 이론물리학계에서 어떤 뛰어난 업적을 남겼는지 그 핵심을 짚어보고 2편에서는 후대 과학자들을 위해 이휘소 박사가 그런 뛰어난 과학자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을 3편에서는 그 죽음의 진실을 다룰 계획이다.
사실 지금 한국에 살아있는 유족들과 미국의 자녀들이 강력하게 반발해온 내용의 글을 쓴다는 것이 그 유족들 가슴의 아픈 상처를 다시 헤집는 것은 아닌지 고심을 거듭했다.
하지만 강대국 권력에 의해 우리 국민이 암살당했을 가능성이 단 1%만 있어도 우리는 그 실체를 파려고 노력해야 한다. 주권의 문제이자 인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민족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로 결정적인 민족의 영웅에 대한 문제라면 차후 다시는 그런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그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
물론 이 기획물에는 소중한 내용도 많이 담겨 있긴 하지만 특히 올 4월 30일과 5월 1일, 총 2편 KBS 기획특집 ‘이휘소의 진실’ 다큐에서 어머님의 증언 등도 다 무시한 채, 철저히 미국에서 제공한 단 몇 가지 자료만 가지고 단순사고사로 확정보도를 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더불어 이 방송 내용 중 이휘소 박사의 딸 이안 씨의 ‘핵개발보다는 아버지의 조국에 대한 사랑과 과학적 업적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는 그 염원의 말에 글을 발표할 용기를 많이 얻었다. 그 이안 씨에게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미국 역사에서 이휘소 박사만큼 뛰어난 과학자는 없었으며 앞으로도 영영 없을 것이라고, 그래서 한국으로 기어이 돌아가려는 애국심 깊은 이휘소 박사를 그들은 살려둘 수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그 증거가 너무도 많은데 어떻게 같은 피를 이어받은 한민족의 후배가 이 사실을 알고서 침묵할 수가 있겠냐고...특히 위키백과 사전을 검색해 보면 양자역학 연구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연구 성과인 ‘표준모형’을 정립하는데 사실상 이휘소 박사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음에도 이휘소 박사 이름은 사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에 분노까지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제2의 살해와 다를 것이 없다고 본다. 우리 민족과 나라를 그토록 사랑했던 이휘소 박사의 업적을 정당하게 평가받게 하고, 후손 만대 공정하게 기록되도록 하는 일을 어느 나라에서 해주겠는가. 결국 우리의 몫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나라사랑 방법 상에 있어 필자 개인적으로는 동의할 수 없는 측면이 없진 않지만 그래도 우리나라를 그토록 사랑했던 이휘소 박사의 영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니겠는가.
아무리 연구해 봐도 이휘소 박사는 미제국주의 지배세력들에 의해 타살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결론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물론 단순히 박정희 정권의 핵개발을 도와주려는 했기 때문이라는 세간의 추정 때문만은 아니다. 핵개발을 막는 방법으로 꼭 이휘소 박사를 죽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더 확실한 방법은 당연히 대통령을 제압하는 더 확실한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또 이휘소 박사가 한국의 군사력 강화에 기여하지 않았다고 단정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보다 근본적인 살해 이유는 이휘소 박사가 기이어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했기 때문으로 본다는 것이다.
미 지배세력들은 자신들 중에 누구도 이휘소박사만큼 뛰어난 과학자가 없는 조건에서, 이휘소 박사가 앞으로 어떤 연구결과를 어떻게 만들어 낼 지 도대체 가늠할 수 없는 조건에서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는 곳으로 자유롭게 놓아줄 수는 없었을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특히 군사적, 정치경제적 동북아시아 패권전략에 있어 지정학적으로 미국이 절대로 놔줄 수 없는 너무나 중요한 한반도의 남단 교두보인 한국으로 보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당시 이휘소 박사의 능력은 미국이 그렇게 두려워할 정도로 뛰어났다. 하지만 조국애가 너무 강한 이휘소 박사는 하루라도 빨리 조국으로 돌아갈 생각뿐이었다. 금은보화도 쾌락도 아예 관심이 없었다. 오직 조국으로 돌아가 한국을 하루빨리 과학강국으로 군사강국으로 일으켜 세울 생각뿐이었다.
추정이기는 하지만 이휘소 박사의 죽음을 앞당긴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과도한 핵개발 의욕과 조급증도 한몫했다고 추정된다.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미국은 이휘소 박사를 결코 살려서 한국으로 돌려보내면 안 될 존재라 최종 판단했을 것이다. 왜 그런가.
▲ 영채가 빛나면서도 인자한 성품 어려있는 이휘소 박사 모습 ©자주민보 ◐세계 과학자들이 극찬한 이휘소 박사
"내밑에 아인쉬타인도 있었고 이휘소도 있었지만 아인쉬타인보다 이휘소가 더 뛰어났다"
-전 미국 프린스턴연구소장 오펜하이머-
"이휘소에게는 1960년대 중반에 이미 노벨상을 주어야 했다"
-양진녕( 1957년 노벨상 수상자) -
" 그와 같이 6개월간 생활하면서 나는 도리어 이휘소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겔만 (1969년 노벨상 수상자) -
"이휘소는 현대물리학을 10여년 앞당긴 천재이다. 이휘소가 있어야할 자리에 내가 있는 것이 부끄럽다. 1분간 그를 생각하는 묵념의 시간을 갖기를 제안한다." -살람(1979년 노벨상 수상소감 중에서) -
"내가 노벨상을 받은 것은 벤자민 리의 공이었다. "
- 스티븐 와인버그 (1979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새로운 이론적 요소, 실험결과들... 벤자민 리는 그 중심에 있었다."
- 헤라르뒤스 토프투 (1999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이휘소 박사는 세계 물리학계의 슈퍼스타였다. 한국 사람 중에서 그런 사람은 물리, 화학, 생물을 다 합쳐서 앞으로 몇 십년간, 몇 백년간 안 나올 것이다."
- 김진의 (서울대 교수)
"1977년 6월에 있었던 그의 비극적인 사망은 전 세계 과학계에 타격을 입혔다."
- 슈럭 (스토니브룩 대학 물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