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건너뛰기

KJCLUB 한일 문화교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한국 기원의 불고기

조회수 : 507
KO 255 Member_60388 1,962,144 / 2,811,753

고구려 안악 3호 벽화  불고기의 원형 맥적을 구워 먹는 그림

조선시대 김홍도 그림에서 불고기의 다른 이름 설야먹을 구워 먹는 그림

김홍도의 <설후야연> (雪後夜宴)에서는 양반가 집안에서 불고기를 먹는 모습이 나온다

김홍도가 정조대의 화가이니, 18세기 중후반의 그림이라고 보면 된다.
선비와 기생들이 야외에서 한적하게 불고기를 구워먹는 광경이다,
보온용 머리장식과 소나무 가지의 흰눈을 보면, 시기적으로 겨울임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숯불과 철판을 이용해서 불고기를  구워먹고 있다

조선시대 석쇠를 이용해서 고기와 생선 떡등을 구워 먹었다

 

국적/시대 : 한국(韓國) / 조선(朝鮮)
재질 : 금속(金屬) / 철제(鐵製
크기 : 가로(가로) : 31.8 , 세로(세로) : 19.7
용도/기능: 식(食) / 취사(炊事) / 취사(炊事) / 석쇠(석쇠)

출토지: 충청남도(忠淸南道)
소장처 : 공립(公立) / 대전향토(대전향토)
유물번호 : 향사역민 000874-000

기록으로는


4세기 진대(晉代)의 수신기(搜神記)

3세기경 중국 문헌 수신기에 ‘맥적을 만들 때 장(醬)과 마늘로 조리해 불에 직접 굽는다’고 했으며. 의례(儀禮)에는 범적무장(凡炙無醬)이라고 해 ‘적(炙)은 이미 조리되어 있으니 먹을 때 일부러 장에 찍을 필요가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4세기 진나라 때 간보라는 사람이 쓴 ‘수신기(搜神記)’에 중원의 귀족과 부자들이 오랑캐 음식인 강자맥적(羌煮貊炙)을 즐긴다고 걱정하는 대목이 있다. 티베트의 강족이 먹는 삶은 양고기와 고구려 구성원인 맥족의 숯불구이가 중국에서 지나치게 유행한다고 걱정하는 모습이다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  한반도의 숯불구이가 얼마나 유명했는지 원나라에서는 고려에서 쇠고기를 수입해 가는 것은 물론이고 숙수(요리사)까지 초빙해 갔다

조선시대 불고기는 ‘설야먹’이라 불렸으며 요리책 ‘음식디미방’에 따르면 ‘설야멱(불고기)’을

가지처럼 먹는다‘라고 설명하고 있을 정도로 대중적인 음식이었다

필원잡기 (筆苑雜記)(1487년) 세종 때 직제학 벼슬을 지낸 김문은 정승들과 담소를 나누다가

천하제일의 요리는 우심적(牛心炙), 즉 소고기 숯불구이라 말한 기록

산림경제 (山林經濟)(1715년)는 설야멱 적에 대하여 "소고기를 저며 칼등으로 두들겨 연하게 한 다음 대나무 꼬챙이에 꿰어서 기름과 소금을 바른다. 충분히 스며들면 뭉근한 불에 구워 물에 담갔다가 다시 굽는다. 이렇게 세 차례 하고 참기름을 발라 숯불에 다시 구우면 아주 연하고 맛이 좋다."고 하였다

홍만선은 "산림경제"에서 숯불구이를 설하멱적(雪下覓炙)이라 기록

조수삼(趙秀三:1762∼1849)이 쓴 (세시기)에서는 "설야멱을 일명 곶적(串炙)이라 하며 대나무 꼬챙이에 꿰어 굽는다."고 하였다

열하일기(熱河日記)(1780년) 실학자 박지원이 난로회의 풍류를 기록으로 남겼다.
“눈 내리는 날, 김술부 공과 함께 화로를 마주하고 고기를 구워 먹으며 난로회를 했는데 방안이 연기로 후끈하고 파, 마늘, 고기 굽는 냄새가 온몸에 배었다. 공이 북쪽 창문으로 가서 부채를 부치며 맑고 시원한 곳이 있으니 신선이 사는 곳이 멀지 않다고 말했다.”

시의전서(是議全書)는 19세기 말엽 조선 말기의 요리책으로 지은이는 전해지지 않는다 에서는 정육을 얇게 저며 양념한 것을 "너비아니"라 하였다,

추재집 (秋齋集)(1839년) 소고기를 먹는 법과 조리법으로 신라인도 먹었다  조수삼의 ‘추재집(秋齋集)’에. 신라에도 박달나무로 숯불을 피운 후 고기를 구워 먹는 모임이 있었으니 송나라보다도 이전이다. 참고로 설야멱을 숯불구이 불고기의 옛말이다 기록
 

임원경제지 (林園經濟志) (1842년) 40년 가까운 세월의 열정과 노력을 담아낸 개인 저작 조선 최대 백과사전으로 순조 때 서유구가 쓴 "임원경제지"의 석쇠로 소고기를 구웠다 기록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1849년)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음력 10월 1일(올해 양력으로는 10월 27일)은 숯불에 고기 구워 먹는 날이라고 10월의 행사로 기록돼 있는 날이다

“서울 풍속에 화로에 숯불을 피워놓고 석쇠를 올려놓은 다음 쇠고기를 기름, 간장, 달걀, 파, 마늘, 후춧가루 등으로 양념해 구우며 화롯가에 둘러 앉아 먹는데 이를 난로회라고 한다. 숯불구이는 추위를 막는 음식으로 이달부터 볼 수 있다.”

해동죽지 (海東竹枝)(1925년)에는 설야적(雪夜炙)이 나오는데, "개성부(開城府)의 명물로서, 소갈비나 염통을 기름과 훈채로 조미하여 굽다가 반쯤 익으면 찬물에 잠깐 담갔다가 센 숯불에 다시 굽는다. 눈 오는 겨울밤의 안주로 좋고 고기가 매우 연하여 맛이 좋다."고 하였다

조선요리제법(1939년)에서는 우육구이(너비아니) 만드는 법에 대하여 "고기를 얇게 저며서 그릇에 담고 간장과 파 이긴 것· 깨소금· 후추· 설탕을 넣고 잘 섞어서 굽는다."고 했다. 지금의 양념구이인 것이다. "너비아니"란 말은 소고기를 너붓너붓하게 썰어서 굽기 때문에 나온 것이라고 한다.

고사통 (故事通)(1943년) 맥적(불고기)의 기록은 육당 최남선의 역사서 에 기록되어 있다

고구려(맥적) -> 고려 (설야먹) -> 조선 (설야먹. 너비아니)

위 기록은 모두 불고기에 대한 기록

.


 

열도의 육식 문화는

일본 역사를 보면 675년 덴무 천황이 육식금지령을 내려 무려 1872년 육식금지령이 해제된 1200년 동안 고기를 먹지 않았다. 그래서 고기를 쉽게 먹을 수 있도록 발달한 것이 샤부샤부와 돈가스였다.

그 밑바탕에는 불교의 융성과 도래인 세력을 음식 측면에서 견제하기 위한 정책이었다는 설도 있다. 메이지 유신이 되고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천황이 먼저 육식 시범을 보였다.


 

육식이 해금된 1872년 2월 메이지왕의 거처에 해금령을 반대하는 측의 자객이 열 명이나 난입하여 4명이 사살된 사건이 발생했다 그만큼 육식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그러나 육식에 대한 거부감이 있던 서민들은 쉽게 동화되지 못했고 육식에 일본식 요리법이 가미되면서 서양요리의 일본화가 진행되었다. 그래서 메이지 유신을 요리 유신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금의 돈가스는 서양의 튀김요리인 커틀릿(Cutlet)이 원조로 처음에는 포크 가쓰레쓰로 불렸고 이후 가늘게 채를 썬 양배추와 간장 소스가 결합되면서 돈가스로 발전했다. 일본의 서민들이 자유롭게 육식을 먹은 것은 불과 100년이 안되었다 

(( 참고 : 이탈리아의 음식을 오스트리아가 수입 그리고 비엔나 슈니첼은 영어권으로 수출되면서 포크 커틀릿으로 이름이 바뀌었고,일본인들이 19세기 메이지유신 이후 서구 문명을 닥치는 대로 소화해내면서 커틀릿을 가츠레츠로 음차하고 돼지라는 뜻의 돈(豚)을 붙여 돈가스를 만들었다))

한국의 불고기가 일본에 전래된 야끼니꾸의 시초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오사카에서 평양 냉면집을 경영하던 평양 출신의 임광수라는 식도원 창업자가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때 한국에 들어와 냉면집에서 불고기를 굽는 것을 보고 일본 오사카에 돌아가 불고기를 굽기 시작한 것이 일본 야끼니꾸의 시초가 된 것이다.


한국인들이전후 강제징용되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연탄불에 고기를 직화구이한데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호루몽 야키라고 불린다

번역문보기

韓国祈願の焼肉

高句麗 アンアック 3号壁画  焼肉の 原型メックゾックを焼いて食べる絵

朝鮮時代キム・ホンド絵で 焼肉の 他の名前雪夜墨を焼いて食べる絵

キム・ホンドの <雪後夜宴> (雪後夜宴)ではヤングバンが家で 焼肉を食べる姿が出る

キム・ホンドが貞操帯の画家だから, 18世紀重厚組の絵だと見れば良い.
士と芸者たちが野外でものしずかに焼肉を焼いて食べる光景だ,
保温用頭飾りと松枝の白い雪を見れば, 時期的に冬なのを分かる

朝鮮時代  炭火と鉄板を利用して焼肉を  焼いて食べている

朝鮮時代焼き網を利用して肉と魚餠等を焼いて食べた

 

国籍/時代 : 韓国(韓国) / 朝鮮(朝鮮)
材質 : 金属(金属) / 鉄製(鉄製
大きさ : 横(横) : 31.8 , 縦(縦) : 19.7
用途/機能: 式(食) / 炊事(炊事) / 炊事(炊事) / 焼き網(焼き網)

出土だ: 忠清南道(忠清南道)
所長先 : 公立(公立) / 大田郷土(大田郷土)
遺物番号 : 向斜役民 000874-000

記録では


4世紀賑貸(晉代)の 受信機(捜神記)

3世紀頃中国文献受信機に ‘メックゾックを作る時章(醤)とニンニクで料理して火に直接焼く’と言ったし. 儀礼(儀礼)には犯跡武将(凡炙無醤)と言って ‘敵(炙)はもう料理されているから食べる時わざわざ醤に付ける必要がない’と記録されている

4世紀秦の国の時塩加減をしなさいという人が使った ‘受信機(捜神記)’に中原の貴族と分限者が蛮夷食べ物であるガングザメックゾック(羌煮貊炙)を楽しむと心配する書き入れ時がある. チベットの姜族の食べる煮ったマトンと高句麗構成員であるメックゾックの炭火焼き物が中国ですぎるほど流行ると心配する姿だ

崔南善は ‘朝鮮常識問答’  韓半島の炭火焼き物がいくら有名だったのか元国では高麗で牛肉を輸入して行くことは勿論で幄水(板前)まで招いて行った

朝鮮時代焼肉は ‘雪夜墨’と呼ばれたし料理本 ‘食べ物知味方’によれば ‘ソルヤミョック(焼肉)’を

枝のように食べる‘と説明しているほどに大衆的な食べ物だった

筆苑雑記 (筆苑雑記)(1487年) 世宗の時職制学官職を勤めたギムムンは政丞たちと談笑を交わしてから

天下一の料理は優心的(牛心炙), すなわち牛肉炭火区と言った記録

山林経済 (山林経済)(1715年)はソルヤミョック敵に対して牛肉を薄く切ってみねで叩いて軟らかくした後竹くしに通して油と塩をつける. 充分に染みこめばムンググンした火に焼いて水に浸してからまた焼く. こんなに三回してごまあぶらをつけて炭火にまた焼けばとても軟らかくて味が良い.と言った

洪万選は ¥"山林経済¥"で炭火焼き物をソルハミョックゾック(雪下覓炙)と記録

ゾスサム(趙秀三:1762〜1849)が書いた (歳時記)ではソルヤミョックを一名ゴッゾック(串炙)といって竹くしに通して焼く.と言った

ヨルハイルギ(熱河日記)(1780年) 実学者パク・チウォンが暖炉回の風流を記録で残した.
“雪降る日, 金述部工科一緒に火鉢を向い合って肉を焼いて食べて暖炉回をしたが方案が延期でいきれたくて, ニンニク, 肉焼くにおいが全身に滲んだ. 球が北窓に行って団扇を煽って清くて凉しい所があるから神仙の住む所が遠くないと言った.”

是議全書(是議全書)は 19世紀末葉朝鮮末期の料理本で著者は伝わらないでは精肉を薄く切って 味付けした のを ¥"味付けの焼き肉¥"だと言った,

ツゼジブ (秋斎集)(1839年) 牛肉を食べる方法と料理法で新羅人も食べた  ゾスサムの ‘ツゼジブ(秋斎集)’に. 新羅にも斧折で炭火を立てた後肉を焼いて食べる集まりがあったから宋の国よりも以前だ. 参照でソルヤミョックを炭火焼き物 焼肉の古語だ記録
 

役員経済だ (林園経済志) (1842年) 40年近い歳月の熱情と努力を盛り出した個人著作朝鮮最大百科事典で順調の時の恕宥区が書いた ¥"役員経済誌¥"の焼き網で牛肉を焼いた記録

東国歳時記(東国歳時記)(1849年)  寒風が吹き始める旧暦 10月 1日(今年陽暦では 10月 27日)は炭火に肉焼いて食べる日だと 10月の行事に記録されて ある日だ

“ソウル風俗に火鉢に炭火を立てておいて焼き網を乗せた後牛肉を油, 醤油, たまご, なが葱, ニンニク, 胡椒などで味付けして焼いて炉端に囲んですわって食べるのにこれを暖炉回だと言う. 炭火焼き物は寒さを阻む食べ物で今月から見られる.”

解凍竹紙 (海東竹枝)(1925年)には雪夜的(雪夜炙)が出るのに, 個性部(開城府)の名物として, 牛肉ガルビや心臓を油とフンチェで調味して焼いている途中半ば熟すればお冷やにちょっとつけてから強い炭火にまた焼く. 雪降る冬夜のおつまみで良くて肉が非常に軟らかくて味が良い.と言った

朝鮮料理製法(1939年)では牛肉焼き物(味付けの焼き肉) 作る方法に対して肉を薄く切って器に盛って醤油となが葱勝ったこと・ ごま塩・ 胡椒・ 砂糖を入れてよく交ぜて焼く.と言った. 今の味付け焼き物であることだ. ¥"味付けの焼き肉¥"と言う言葉は 牛肉をノブッノブッするように切って焼くから出たことだと言う.

故四通 (故事通)(1943年) メックゾック(焼肉)の記録は六堂崔南善の歴史書に記録されている

高句麗(メックゾック) -> 高麗 (雪夜墨) -> 朝鮮 (雪夜墨. 味付けの焼き肉)

上の記録は皆 焼肉に対する記録

.


 

列島の肉食文化は

日本歴史を見れば 675年デンム天皇が肉食禁止令を下げておおよそ 1872年肉食禁止令が解除された 1200年の間肉を食べなかった. それで肉を易しく食べ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発達したのがシャブシャブとトンかつだった.

その根本には仏教の隆盛と到来である勢力を食べ物側面で牽制するための政策だったという説もある. 明治維新になって西洋文物を受け入れながら天皇が先に肉食示範を見せた.


 

肉食が解禁された 1872年 2月明治王の居所に解禁領を反対する側の刺客が十名も乱入して 4人が射殺された事件が発生したあれほど肉食に対する拒否感が大きかった


しかし肉食に対する拒否感があった庶民たちは易しく童話され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し肉食に日本式クッキングが加味されながら西洋料理の日本画が進行された. それで明治維新を料理ユシンラで呼んだりする.

今のトンかつは西洋のてんぷら料理であるカツレツ(Cutlet)が援助で初めにはフォークがスレスと呼ばれたし以後細く千切ったキャベツと醤油ソースが結合されながらトンかつで発展した. 日本の庶民たちが自由に肉食を食べたことはわずか 100年にならなかった 

(( 参照 : イタリアの食べ物をオーストリアが収入そして ヴィアンナシュニッツェルは英語圏に輸出されながらフォークカツレツで名前が変わったし,日本人たちが 19世紀明治維新以後西欧文明を次から次へ消化しながらカツレツをがツレツに音叉して豚という意味のお金(豚)を付けてトンかつを作った))

韓国の焼肉が日本に伝来された焼肉の始めには二つのお正月がある.


大阪で平壌冷麺屋を経営した平壌出身のイメクァン数という食道院創業者が 1986年ソウルアジア大会の時韓国に入って来て冷麺屋で焼肉を焼くことを見て日本大阪に帰って焼肉を焼き始めたのが日本焼肉の始めになったのだ.


韓国人入り前後強制徴用されながら我が国の人々が煉炭ドルに肉を直化焼き物したことからその来由を捜してみることができる. ホルモングヤキと呼ばれる

좋아요·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

댓글 ( 17 )

게시물 목록

1,962,144 / 2,811,753

  1. JA 30 ponpon555r
  2. JA 0 gairyou仙人
  3. JA 0 nekokan mkII
  4. 1962144 현재 글 한국 기원의 불고기 17
    조회수 : 507
    KO 255 Member_60388
  5. JA 255 Member_52410
  6. JA 255 gussanp
  7. JA 0 gairyou仙人
  8. 조회수 : 143
    JA 255 josuncorea
  9. 조회수 : 172
    JA 30 よいこ
  10. JA 0 inunabeya
  11. 조회수 : 144
    KO 255 Member_52438
  12. JA 0 gairyou仙人
  13. JA 0 KIMURAAAAA
  14. JA 255 nooonoono
  15. JA 0 捨て猫
  16. 조회수 : 190
    JA 255 Member_50827
  17. JA 0 てんかす
  18. 조회수 : 102
    JA 130 チョンイラネ
  19. 조회수 : 377
    KO 0 Member_96860
  20. 조회수 : 188
    JA 0 nekokan mk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