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권은 독일이 전쟁에 지자 가혹하리 만치 독일의 영토를 분활하고 제재를 가했다.
그에 비해 쪽바리는 과거의 영토를 그대로 두고 오히려 자신들이 침략했던 지역까지 영토로 인정해주는 서방 승전국들의 결정으로 지금의 쪽바리가 주제를 모르고 날뛰고 도둑질을 계속하는 것이다.
쪽바리는 현재 자신들이 영토라고 주장하는 지역 특히나 오키나와,훗카이도까지 자신들이 침략했던 지역으로 독일 식으로 처리했다면 현재의 오키나와와 훗카이도는 쪽바리의 영토가 될 수 없었다.
분명히 국제법과 전쟁을 일으킨 전범국에 대한 처치는 영토 전쟁을 일으킨 전범 당사국은 피해국에 영토로써 이를 보상한다.
따라서 독일은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국,발트국가들에게도 자신들의 영토를 분활하여 줌으로써 영토로써 보상을 해주었다.
전쟁을 일으킨 전범국이 영토를 피해국,전승국에게 주는 것은 당연한 국제 이치이다.
따라서 현재 쿠릴열도는 전범 패전국 쪽바리들 것이 아닌 러시아의 것이 맞다.
댜위오다오는 중국 것이며 오키나와도 엄밀히 따져 미국 것이다.
그리고 대마도 역시 한국 것이다.
규슈,시코쿠,훗카이도 역시 한국,미국,러시아가 분활하여 가지고 혼슈도 축소하여 일부는 한국,미국,러시아가 가지는 것이 바로 전범 패전국 일본에 맞는 조치였다.
독일에게만 너무 가혹하게 영토를 빼앗고 지금의 조그만 영토만 남겨두었다.
쪽바리들이 현재 살고 있는 영토는 실제 쪽바리의 영토가 아닌 타국의 영토이다.
혼슈 일부지역만이 쪽바리들의 땅이다.
미국도 처음엔 오키나와를 자신들이 가질려고 했으니까 말이다.
연합국이 독일 수준에 준하는 정도로 했어야 했는데 역사적인 오판을 하고 만 것이다.
세계의 쓰레기를 방치하여 세계가 더 썩어들어가는 것이다.
세상에 아무 쓸모없는 쓰레기 똥 찌끄러기 일본.
1919년 6월 28일의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독일은 제1차세계대전 이전 영토의 13%를 상실했다.
- 독일은 모든 해외 식민지를 상실했다.
- 독일과 오스트리아간의 통일이 금지되었다.
- 경제적으로 중요한 북 슐레지엔 동부 The eastern part of Upper Silesia 가 새롭게 탄생한 폴란드에게 넘어갔고, 폴란드는 발트해로의 출구를 얻었고, 포젠 Province of Posen 과 서 프로이센 West Prussia 도 얻었으며, 이렇게 탄생하게 된 "폴란드 회랑"이 동 프로이센과 나머지 독일을 갈랐다.
- 단치히 자유시의 탄생- 단치히는 1920년부터 1939년까지 존재했던 준자치적 도시국가였다. 자유시는 1919년의 베르사유조약에 따라 1920년 11월 15일에 탄생했다. 자유시는 단치히시와 200여개의 인근 마을,정착촌을 포함했다. 국제연맹의 규정에 따라, 이 곳은 독일과 새롭게 탄생한 폴란드로부터 독립된 상태였다. 자유시는 독립국가는 아니었고, 국제연맹의 보호하에 있었고, 폴란드와 관세동맹 관계였다. 폴란드는 또한 도시에 대한 특권을 보유했다. 자유시는 폴란드가 바다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위해 만들어졌다. 자유시의 대다수 인구를 차지하는 것은 독일인이었고, 폴란드인은 소수에 불과했다.
- 동 프로이센의 북부, 즉 메멜란트 Memelland가 프랑스의 통제하에 놓이게 되었고, 이후 리투아니아에 병합된다.
- 북 슐레지엔의 훌친 Hultschin 은 체코슬로바키아에게 넘어갔다.
- 외펜과 말메디 Eupen-Malmedy 가 벨기에에게, 북 슐레스비히가 덴마크에게 통합되었고, 알자스와 로렌이 프랑스에게 반환되었다.
- 자르 Saar 탄광지대가 15년동안 국제연맹의 통제하에 놓이게 되었다.
- 라인란트 전역과 라인 강 동안의 50km 지역까지 비무장지대가 설정되었다. 이 라인란트 비무장지대는 1936년 3월 7일, 히틀러가 나치 독일군에 진주를 명하면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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