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연탄을 쓰는 곳이 있을까’ 의심될만 하지만 ‘104마을’이라 불리는 이곳은 사실 서울에서 가장 많이 연탄을 소비하는 곳이다. 주민들은 저소득층으로 연탄마저도 정부 보조를 받는다. 서울 25개 자치구 중 가장 많은 거주자들이 연료비를 보조받고 있기 곳이기도 하다. 500여 가구 중 294가구가 연탄쿠폰을 받고 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70세를 훌쩍 넘긴 노인들로, 기초생활수급자인 동시에 장애인들이다. 주민의 절반 이상이 연탄에 의지해 몸을 녹이고, 세숫물을 데우고, 음식을 해먹는다.

이선례(가명ㆍ40ㆍ여) 씨는 지난 18일 올 해 처음으로 연탄 아궁이에 불을 뗐다. 이날 새벽 아이들이 깊은 잠을 못이룬채 뒤척이는 것이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궁이에 연탄 3개를 채워 놓으면 하루가 거뜬하고, 마음도 든든해진다고 말하는 이 씨.

이 씨는 19년전인 1993년 이곳으로 시집왔다. 14년을 연탄을 때우며 살다 5년 전 쯤 분가했지만, 홀로 사시는 시아버지가 눈에 밟혀 다시 돌아왔다. 시집와 낳은 딸은 올 해 고3 수험생이 됐다.
1960년대 서울 전역에서 재개발 바람이 불때다. 용산, 동대문, 청량리의 원주민들은 돈 다발을 들고 다니는 자들에게 쫓겨났다. 쫓겨날 당시 철거민들이 갈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다. 그들이 선택한 곳이 바로 이곳 불암산 기슭, 104 마을이다.

동대문 철거민 출신인 최명순(가명ㆍ84) 할머니는 예전 이야기를 들려주며 눈시울을 붉혔다. 최 할머니는 “여기서 나 혼자 30년 넘게 살았어. 의탁할 곳이 없던 손자녀석이랑 같이 살 때도 있었는데 2003년에 그놈도 허망하게 하늘나라로 갔어. 자식들이 있는데 어디 손벌릴 수가 있나. 자식들이 있다고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도 안돼. 죽는 날까지 뭐 어떻게든 버텨봐야지…”라고 말끝을 흐렸다.
104마을의 전세가는 500만원. 월세라 해도 보증금 100만원에 10만원 정도다. 저소득층이나 자식들에게 부담이 되기 싫은 노인들이 이곳에 많이 몰려 산다. 세(貰)가 싼 대신 계약서에 집수리나, 난방 등은 세입자 몫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다. 이런 이유로 연탄을 쓰는 가구가 많다고 동사무소 직원이 귀띔했다.

멀어져 가는 가을, 다가오는 겨울. 인근 동네 주민들은 104마을에서 연탄을 때 머리가 아프다고 민원을 넣기도 하지만, 이곳 104마을 사람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하루 하루를 버티듯 살고 있다.
용산 철거민 출신으로 이 마을에서 45년을 살아왔다는 김 모(77) 할아버지는 3형제를 키웠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김 할아버지는 이곳에서 자식들을 대학에서 강의하는 애니메이션 박사로, 국제영화제 평가위원장 등으로 길러냈다.
김 할아버지의 며느리 이선례 씨는 “수능을 앞둔 고 3 딸아이 때문에 요즘 잠도 못자요. 애들이 대학가서 졸업할 때 쯤이면 연탄 때는 이 집에서는 벗어나야할 텐데”라며 웃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