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경 재판에서의 도조 히데키.
도조히데키:일본 은 미국 도 영국 도 두렵지 않다.
그는 14명의 A급 전범들과 함께 교수형을 당했고. 그 시체는 화장되어 항공기에 의해 쓰레기 투하하듯 태평양 한가운데에 버려집니다.
그런데 한 주지가 화장터에서 그의 작은 유골조각을 몰래 들고 갑니다. 1958년 그와 A급 전범들의 무덤을 만들자 하여
1960년 아이치 현의 "산가네 산"꼭대기에 순국 칠사묘에 안치됩니다.
그리고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어 그의 행위를 일본 극우파가 숭배하기 시작합니다.
일본의 A급 전범 아시아 의 히틀러 도조 히데키 등 7명 사형 집행
1948년 12월 23일은 일본의 A급 전범 용의자 도조 히데키 등 7명을 극동국제군사재판에 기소해 사형을 집행한 날이다.
도조 히데키는 도쿄에서 장군의 아들로 태어나 엘리트 교육을 받았으며, 주로 전략 장교로 활동했다. 1930년대에 들어 경제 불황으로 사회가 불안해지자 군부가 정권을 잡고 군국주의 체제를 강화했고, 도조 히데키는 이 와중에 급격하게 부상해 1940년에 육군대신이 되었다. 당시 일본이 독일의 히틀러,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와 동맹을 맺고 침략 전쟁을 더욱 확대하자, 미국은 원유 수출 금지 조치를 취해 일본 경제를 압박했다. 군부는 미국과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싸울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1941년 10월에 총리가 된 도조 히데키는 워싱턴에서 열린 회담이 결렬되자, 천황 히로히토의 절대적인 신임 아래 미국과 영국에 대해 전쟁을 일으켰다.
전쟁 초기에 일본이 승전을 거듭하자, 도조에 대한 천황의 신임은 두터워졌다.
그러나 1943년과 1944년에 전세가 뒤바뀌어 미국이 승리를 거두기 시작하자, 천황의 신임도 떨어지고 중신들의 도조내각 타도운동에 직면했다. 결국 도조 히데키는 1944년에 사이판이 함락되자 총리직을 사임했고, 일본이 항복한 후에는 A급 전범 용의자로 극동국제군사재판에 기소되어 1948년 12월 23일에 처형되었다.
2차 세계 대전 전범:쇼와천황.도조히데키 총리
[출처] 12월23일 일본의 A급 전범 도조 히데키 등 7명 사형 집행|작성자 푸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