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沖繩) 중부 요미탄(讀谷) 촌에서 민박집을 운영하는 지바나 쇼이치(知花昌一·64) 씨. 그는 미군기지 철폐를 주장하며 각종 집회에
참석해왔다. 일장기인 히노마루(日の丸)를 불태워 경찰에 체포된 적도 있다. 하지만 ‘오키나와 독립’을 주장한 적은 없었다. 피를 흘려 투쟁해야
독립을 얻을 수 있을 텐데 그건 무리라고 봤기 때문이다.
비가 오던 21일 지바나 씨의 집을 방문한 기자에게 그는 “올해부터
스스로 ‘독립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오키나와 주민이 어떤 주장을 해도 중앙정부는 거들떠보지 않는다. 정부에 항의하는 최후 수단이 바로
독립”이라고 말했다
22일 오키나와 기노완(宜野灣) 시의 사키마(佐喜眞)미술관.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대형 그림 앞에 관람객들의 발길이 멈췄다. 가로 8.5m,
세로 4m 크기의 오키나와전도(戰圖).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땅에서는 유일하게 지상 전투가 벌어졌던 오키나와 전쟁을 그린
것이다.
가장 섬뜩한 장면은 언니와 여동생이 상대방 목에 매단 줄을 당겨 서로 죽이는 것이다. 바로 옆에는 형이 동생의 가슴에
죽창을 찌르는 장면도 있다. 오키나와 주민들의 집단 자살을 묘사한 것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일본 군부가 미군의 본토 공격을 막기 위해 오키나와에서 총력전을 벌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또 민간인에게 집단 자결을
명령한 일본군은 미군에 투항해 살아있는 모습을 봤다. 그때부터 오키나와 주민들은 본토에 대해 지울 수 없는 적개심을 가지게 됐다.
최근 오키나와 주민들은 본토로부터 이중, 삼중으로 배신당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달 28일 오키나와가 미군 지배 아래 들어간 굴욕의 날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은 정부 행사로 ‘주권회복의 날’ 기념식을 열었다. 당시 일왕에 대해 만세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 상당수 오키나와 주민은 전쟁
당시의 아픔을 떠올렸다고 한다.
오키나와 미군기지를 방문해 “풍속업(매춘업)을 더 활용하라”고 말했던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大阪) 시장의 발언도 자존심을 건드렸다. ‘오키나와 여성들은 매춘업에 종사해도 괜찮다’는 뜻으로도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나하 시내에서 ‘쓰치(土)’라는 상호의 바를 운영하는 고모 씨(64)는 “차별당하며 살 바에야 독립하는 게 낫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오사카에서 11년 전에 이주해 온 본토인인데도 오키나와 원주민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