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이씨(全州李氏)와 족보 그리고 이성계에 대해 說 2 편
현재 한국에 있는 모든 성씨(姓氏)의 족보는 高麗때부터 기록한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기록하기 시작한 것은 조선왕조(朝鮮王朝)초기 때 부터 이다.高麗 말기는 이미 몽고의 지배 하에 있었고 명(明)나라의 강한 세력에 압박당하고 있었기에 혈통(血統)을 중요시한 족보 따위는 엄두를 낼 수 없었던 것이다.
이성계(李成桂)가 한반도로 건너온 후 朝鮮王朝가 점차 안정을 찾을 수 있는 태종(太宗 AD. 1418년)말경부터 세종(世宗 AD. 1419년)초에 이르러 한반도로 이주해온 모든 성씨(姓氏)의 씨족(氏族)들이 혈통(血統)의 중요성을 느끼고 그때부터 족보(族譜)를 만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때 족보의 역사를 삼한(三韓)으로 기준하고 高句麗, 百濟, 新羅, 高麗를 거쳐 朝鮮王朝초까지 인맥을 정리하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족보를 기술할 당시는 한반도에 漢字의 地名이 모두 행정의 편이상 바꾸어진 상태였다.
상고시대(上古時代) 때부터 고려(高麗)때 까지는 모계사회의 영향이 많이 남아 있어서 굳이 혈통(血統)을 고집하여 똑같은 성(姓)을 지키려 하지는 않았다. 모계사회서 파생된 성씨(姓氏)는 혈통(血統)과 관계없이 그때 그때에 따라 성(姓)을 하사받게 되거나 봉작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관직을 받을 경우와 王으로부터 성을 하사받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물론 춘추전국(春秋戰國)이후 전란으로 인하여 성(姓)의 계보를 지키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어 신하(臣下)가 죽음을 두려워 멀리 숲으로 도망갔을때 아예 성까지 바꾸어서 다른 사람이 된 경우 임씨(林氏)성이 되었을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따라서 굳이 血統을 고집하고 성을 이어온 것은 조선왕조(朝鮮王朝)뿐이다.
이성계(李成桂)는 고려(高麗)가 망하게 되자 한반도로 건너와 朝鮮을 건국하였다. 그리고 붕어 하시자 朝鮮王朝 3대 태종(太宗 AD. 1401~1418년)말 이후 세종(世宗)때 이르러 족보(族譜)를 편찬하기 시작했고 지금의 전라북도 전주(全北 全州)에 태조 李成桂의 사당을 짖고 영정을 모시는 과정에서 全州를 본관(本貫)으로 했다는 이야기 이다.
고로 전주이씨라는 것은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지어낸 것이며 全州李氏라는 것은 역사적(歷史的)으로 없는 것 이었다.
오늘날의 전주이씨(全州李氏) 대종보(大宗譜)에는 新羅의 35대 경덕왕(景德王)때 사공(司空)을 지낸 이한(李翰)을 시조로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신라의 35대 경덕왕(景德王 AD. 739~761년)때 사공(司空) 벼슬을 하였던 이한(李翰)이 중국인명대사전(中國人名大辭典)에 실려있다.중국인명대사전(中國人名大辭典)은 1958년 장여화(藏勵 )가 편저한 중국지명대사전과 맥을 같이 하는 책이다.
이한(李翰)은 신라(新羅)인 으로 신라가 대륙에 있을 때 사관(史官)으로서 사공(司空)의 벼슬을 한 인물이다. 그러기에 중국인명대사전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사실은 신라(新羅)가 대륙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고 볼 수 있다.
주요내용을 요약하면 중국인명대사전(中國人名大辭典) 447쪽에는 이한(李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이한(李翰)의 아버지는 이화종(李華宗)이다. 李翰은 일찍 문과에 급제하여 사공(司空)의 직급을 받았다. 당(唐)나라 천보(天寶 AD. 742~756년)말 때 방관(房琯)의 벼슬을 했다고 적고 있다. 태어난 곳은 휴양( 陽)이라 했다.
*방관(房琯)은 방관(房官)으로써 동방관(同房官)과 같은 직책으로 향시동고관(鄕試同考官)이다. 향시동고관과 합시동고관(合試同考官)을 겸임하여 시험관의 직급이다.
*사관(史官)은 나라에서 귀중한 자료를 왕명을 받아 기록하고 저술하는 직책을 뜻한다. 죽기 전에는 한림학사(翰林學士)로서 임무를 수행했다.
*휴양은 하남성(河南省) 상구현(商丘縣)남쪽이다.(중국고금지명대사전)
이한(李翰)의 22세손이 이성계(李成桂)이고 이성계의 父母는 여진(女眞) 사람이다.
그러면 신라 사람의 후손이 여진국에서 태어나는 이유를 설명 하겠다.
이성계(李成桂)가 태어난 곳과 동기는 다음과 같다.
太祖 이성계는 함주(咸州)에서 태어났다. 중국고금지명대사전 603쪽에는 함주(咸州)를 요(遼)나라가 두었는데 그곳은 함평(咸平)이라고 적고 있다.
함평현(咸平縣)은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통허현(通許縣)이라고 되어있다. 이곳은 금(金)나라 때 地名을 함평로(咸平路)라고 적고있다. 함주(咸州)인 함평(咸平)은 하남성(河南省) 의주(義州)가 있던 급현(汲縣)땅이다.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의 아버지는 이인인(李仁人)이며 환조(桓祖)로 되어있다. 이인인(李仁人)이 환조(桓祖)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혈통의 계보로는 태조의 아버지가 환조(桓祖)로 되어있다. 환조의 아버지는 도조(度祖)이며 도조의 아버지는 익조(翼祖)이며 익조의 아버지는 목조(穆祖)라고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공양왕(恭讓王)편과 고려도경(高麗圖經)편에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