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07-04 16:4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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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정부가 마침내 헌법해석을 변경하여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겠다고 천명했다. 이른바 전후체제를 청산하고 ‘보통국가’의 첫발을 내딛은 셈인데, 실로 역사적인 전환점이다.
이러한 시기에 지나의 국가주석이 한국을 방문하여 정상회담을 나누었다. 당연히 내외의 많은 관심이 집중되었을 터. 응당 日本에 대한 가혹한 비판이 나올 것이라 예상한 분들도 많았을 게다. 그러나 두 정상의 공동성명에는 日本의 집단적 자위권을 언급하지 않았다.
1950년 한국전쟁 때 지나는 적국이었다. 소위 원조전쟁이라 하여 그들은 대군을 한반도에 파병했다. 그 결과 한반도 수복을 눈앞에 두고 유엔군은 1,4후퇴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중공군’에 희생된 국군이나 유엔군은 통한의 눈물을 삼키며 쓰러졌으리라.
6.25 한국전쟁은 1953년에 휴전되었다. 전쟁을 멈췄다는 얘기다. 당연히 침략의 책임을 당사자들 그 누구도 지지 않았다. 심지어 "침략한 세력"의 사과는 한 마디도 없었다. 이것은 해석 이전의 분명한 팩트다.
한국정부는 앵무새처럼 ‘올바른 역사인식’을 日本과의 관계개선의 ‘전제조건’으로 삼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한국정부는 지나의 ‘역사인식’에 대해서도 日本처럼 엄격하고 가혹한 시선을 지녀야 그나마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게다. 응당 이번 공동성명에 지난 한국전쟁에 대한 언급이 나와야 마땅하고 지나 주석의 사과 표명이 있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싶다. 아쉽게도 여기에 대해선 여전히 언급은 없다. 지나의 주석이 "국빈"으로 왔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착잡한 마음에 예전에 했던 얘기를 다시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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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식은 ‘시각’의 문제다. 예컨대 하나의 사안에 대해 내리는 평가에 "a"와 "b"가 있다고 치자. 이 둘이 그 사안을 ‘똑같게’ 평가할 수는 없다. 각자의 처해 있는 상황과 입장에 따라 제 각각의 해석을 내리는 게 오히려 당연하다. a가 b의 머릿속마저 지배할 요량이 아니라면 ‘하나의 해석’에 대해 이견을 좁히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지, 그 해석을 말살하려는 건 모순이고 오류다.
민주주의의 척도는 ‘나의 견해뿐만 아니라, 타인의 견해도 존중’하는 행위에 있다. 획일화를 강요하는 건 김씨조선이나 지나 같은 전제국가 혹은 일당독재국가에서나 통용될 일이다.
日本은 전후 지금까지 타국을 침략하지 않았다. 아베총리가 야스쿠니를 참배하면서 분명히 강조한 것이 있다. 전쟁 때 희생된 영령들을 위로하고 세계평화를 간절히 원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적극적 평화주의’를 내세웠다. 여기에 대해 ‘이견’이 있다면 만나서 대화해야 한다. 그게 정상이다. 내 생각과 일치하지 않으니까 만나지 않겠다고 하는 건 유아적 발상에 다름 아니다. 지금 日本이 무력으로 침공했는가? 아니, 무력 충돌의 와중이라도 협상과 타협은 늘 베이스로 깔아져 있어야 한다. 그게 국가 간의 외교란 것이다. 그 옛날 고려 때 서희는 침공한 적을 만나 협상하고 담판했다. 하물며 21세기인 지금 아예 만나지 않겠다고 하는 건 도대체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나?
이견이 있는 게 정상이다. 이견이 있기에 그 차이를 좁히려 토론도 하고 협상도 하고 타협도 하는 것이다. 나에게 ‘안중근’이 소중하다면 당신에겐 ‘이토 히로부미’가 소중할 수 있다는, 그 차이를 인정하는 게 민주주의의 바로미터다. 이견을 좁힐 생각은 아예 하지 않고 내 견해만 앵무새가 되어 떠벌리며 문을 닫는 행동... 정말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한국정부는 ‘과거’를 전제로 깔아 이웃국가와의 대화의 문을 닫았다. 그렇다면 이 행위가 일관되어야 그나마 신빙성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응당 지나도 그렇게 해야 한다. 지나는 한국전쟁 때 ‘항미원조전쟁’이란 명분으로 대군을 투입시켜 결과적으로 한반도의 통일을 저지시켰다. 중공군들에게 희생된 분들이 얼마나 많았나?
그런데 한국정부는 지나와 반목하지 않는다. 유지군은 지나가 한국전쟁 때의 만행에 대해 사과하고 배상했다는 말을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했다. 혹시 사과와 배상했다는 정보를 아는 사람이 있으면 댓글 달아주기 바란다. 그렇다면 유지군이 미처 정보를 알지 못한 상황에서 견해를 피력한 것이므로 이 글은 삭제하겠다.
2008년 뻬이징 올림픽 직전 성화 봉송을 향해 성화를 든 주자가 전 세계를 돌았다. 그때 성화주자는 日本을 거쳐 한국을 왔다. ‘티벳독립주의자’들이 성화봉송 과정에서 독립을 피력하는 시위도 했다. 그 과정에서 지나인들의 ‘티벳 반대시위’도 만만치 않았다.
日本은 경찰의 힘으로 철저히 막았다. 한국은 도심이 지나인들에게 점거당한 채 난장판이 되었다.
그때 유지군은 정말 분노했다. 인터넷도 뜨겁게 달구어 동영상이 많이 돌기도 했는데, 日本쪽 동영상을 본 유지군은 많이 허탈했다. 日本경찰의 위엄에 눌린 지나인들은 감히 난동을 부릴 엄두도 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난동을 부린 지나인들은 한국경찰마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했다. 종주국 의식이 베이스로 깔려 있지 않다면 어찌 그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러니 과장되고 왜곡된 소문도 떠돌았다.
日本人들은 전후 지금까지 한국땅에서 집단으로 난동을 부린 적이 없다.
전후부터 2014년 지금까지 日本은 민주주의를 수호해 왔다. 자국민의 시위가 절정에 달했던, 극좌무장단체까지 출몰했던 60년대 말, 70년대 초에라도 탱크를 끌고 자국민을 학살한 적이 결코 없었다.
지나는 1989년 천안문에서 탱크를 몰고 시위군중을 깔아뭉갰다. 자국민을 짓밟았던 마오쩌뚱도 숭배하고 있다. 소수민족의 시위에 대해 여전히 초강경으로 대응한다.
도대체 어디가 한국과 민주주의를 공유할 수 있는 국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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