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연산군이 중종 대왕에게 쫒겨난후 한글은 다시 통용되지만 kkk 무식 왜구 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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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h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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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 50권, 중종 19년 2월 28일 계해 1번째기사 1524년 명 가정(嘉靖) 1524년 명 가정(嘉靖) 3년
예조가 세자 친영 의주와 책빈 의주에 대해 계하다
국역
예조(禮曹)가 아뢰기를,
"어제 전교(傳敎)에 ‘세자 친영 의주(世子親迎儀註) 와 책빈 의주(冊嬪儀註)를 언문(諺文)으로 번역시켜 입계(入啓)하라.’ 하셨는데, 군자감 정(軍資監正) 崔世珍최세진(崔世珍)을 시키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또 친영 의주는 두 벌 번역하여 하나는 대내(大內)에 들이고 하나는 빈의 본가에 보내고, 책빈 의주는 한 벌만 번역하여 빈의 집에 보내어, 그 집에서 그 예(禮)를 잘 알게 하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5책 50권 23장 B면【국편영인본】 16책 290면【분류】 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 / 어문학-어학(語
○癸亥/禮曹啓曰: "昨日傳敎: ‘世子親迎, 《儀註》及《冊嬪儀註》, 使以諺文飜譯入啓。’ 請以軍資監正崔世珍爲之, 何如?" 傳曰: "依啓。 且親迎《儀註》, 則兩件飜譯, 一入于內; 一送于嬪本家, 《冊嬪儀註》, 則只一件飜譯, 而送于嬪家, 使彼家詳知其禮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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暴君燕山君が中宗大王に
中宗実録 50冊, 中宗 19年 2月 28日聖亥 1番目記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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