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을 방문한 뚜웨이밍 원장. 그를 빼놓고는 현대 유학·유교의 흐름을 논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세계적인 유교학자다
중국에서 유교는 부활하고 있는가.
그렇다. 정부뿐만 아니라 대중 차원에서 그렇다. 부활의 과정은 하향식(top-down)이 아니라 상향식(bottomup)이다. 유교에 대한 관심은 널리 퍼져 있다. 중국은 한국과 달리 역사적 기억과 유산을 대폭 상실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잔인한 침략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문화적 연속성은 탄탄하다.
중국 유교의 부활은 국가 주도 아닌가. 위험하게 보일 수 있다.
그렇지 않다. 유교의 부활이 처음 시작된 곳은 학계와 대학이다. 1980년대에 대학생들은 서구에 관심을 가지는 한편 중국의 문화적 뿌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들은 유교에 대한 문화혁명 당시의 공격을 극복하려고 했다. 정부는 학계·재계 그리고 일반 대중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유교 부활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활용하려고 한다. 정부는 유교 부활에 소외되지 않기 위해 가담하려는 것이다.
한국의 유교를 어떻게 보는가.
나는 사실 한국의 유교를 상당히 오래 전부터 연구했다. 1967년부터다. 그래서 퇴계와 다산의 연구에 대해서도 친숙하다. 나는 한국 유학이 유교 전통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한다고 본다. 유교는 중국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사실 한국의 유교·유학은 중국 중심의 유교·유학에 대한 이해에 도전한다. 그래서 유교·유학(Confucianism)보다는 복수형으로 유교들·유학들(Confucianisms)이라고 해야 한다. 이들 전통은 서로 충돌하면서도 서로 보완관계다. 한국의 유교 전통은 매우 풍성하다. 한국의 유교는 사회적으로나 군주의 권력에 대해 매우 강력했다. 사회적으로 중국 유교는 한국 유교만큼 강력하지 않았다. 그가 지닌 특권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군주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고 동등한 위치에서 유교 세계에 참가하는 일개 구성원에 불과했다.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었다.
동아시아는 새로운 유교를 창안해야 할 것인가.
당연히 그래야 한다. 또 불가피하다. 유교의 부활과 부흥은 복고적인 형태를 띄면 안된다. 오늘날 세계의 위기와 난제에 대답하는 형태가 돼야 한다. 한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통일 한국의 인구는 독일과 비슷하다. 한국은 그리스도교 인구의 비중이 크다. 하지만 많은 한국인들이 자신을 ‘유교적 그리스도교인’, ‘그리스도교적 유교인’으로 이해한다. ‘휴머니즘적 유교’와 ‘그리스도교적 영성’은 상호 이해를 넓힐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독자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말은?
한국의 유교 전통은 매우 풍성하다. 한국은 한자를 버렸기 때문에 유교 전통으로 돌아가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한국의 태극기나 화폐 속 등장인물만 봐도 얼마나 한국의 유교 전통이 뿌리 깊은지 알 수 있다. 한국 유교는 중국에 가르칠 게 많다. 한국 드라마가 중국에서 인기 있는 이유도 중국인들이 한국 드라마를 통해 유교의 가치를 배우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