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서기를 태워버려라
일본서기의 제기, 왕통기는 칸무(桓武737~806) 왕이 ‘삼한이 일본의 모국이요, 동족’이란 기록에 불만을 가지고 불살라(焚書) 없애버렸다.
칸무 왕은 백제 왕녀의 아들이며, 수많은 백제 미녀들을 후궁으로 거느렸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일본의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나 자신과 관련해서는 옛 칸무(桓武) 50대 일왕의 생모 다카노노니이가사(高野新笠)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紀)에 기록돼 있어 한국과의 인연을 느끼고 있다”고 말한 바로 그녀를 말한다.
따라서 9세기 초까지 백제인들의 민족의식이 강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와 같이 칸무 일왕의 한일동족설에 기인한 일본서기 분서를 일본역사상 최초로 공표한 사람은 기타바타케 치카후사(北白田白親房1293~1354년)이다.
그는 14세기 전제군주 치하에서 영향력 있는 정치·사상적 지도자였다. 그의 저서 <신황정통기(神皇正統記)>에서 “옛날에 일본은 삼한(三韓)과 동종(同種)이라고 전해 왔으며, 그 책들을 칸무(桓武) 일왕 때에 불태워버렸다.” 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는 분서사건의 근거로는 9세기 초엽의 <코우닌시키(弘仁私記)> 참조했다. 코우닌시키는 제52대 사가(嵯峨)일왕의 지시로 편찬된 기록으로 거기에 칸무일왕이 책을 불사르도록 명령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더욱이 일본서기 원본은 1467년 5월 오우닌(應仁) 대란(大亂) 때 불타 없어졌고 일부를 모아 다시 꾸민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서기는 우여곡절 끝에 현재 나라현립(奈良縣立)도서관에 1669년 작성된 필사본 15권 남아 있다. 전 30권을 갖춘 것은 없다고 한다.
일본서기가 쓰레기와 같이 조작된 것은 임진왜란 직후 "고사기전"을 저술한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 히라타 아쓰타네(平田篤胤) 등이 지목되고 있다.
이들은 고사기,일본서기,만엽집 등 고문헌 연구에 집착한 4대 국학자들로서 일본
▲高野新笠의 묘(KBS 제공)
서기를 전면 해체하여 황국사관을 정립하기 위해 신공왕후 등 일본서기를 조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원본. 필사본. 메이지유신 시절 등 어느 시점에 조작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 일본서기에 대한 학자들의 의견
"일본어의 비밀"에서 밝혔듯이 나가야마 야스오(長山靖生)는 그의 저서 <사람은 왜 역사를 위조하는가>에서 일본이 역사를 조작한 사실들을 파헤쳐 폭로한 중요한 자료이다.
모리 前수상이 재임 중에 주권재민(主權在民)과 민주주의를 거부하는 “일본은 신의 나라다”라고 정신 나간 소리를 했듯이 나가야마는 일본이 신국(神國)으로 신앙하는 뿌리는 조작한 역사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단언했다.
나가야마는 이 책에서 일본의 역사조작 주범으로
1) 일본의 정사(正史)라는 "일본서기",
2) 저자 미상의 "일본은 고대부터 세계를 재패했다", "예수는 일본에서 죽었다"
3) ‘일본어의 비밀’에서 기술한 히라다 아쓰타네(平田篤胤)의 "상기(上記)",
4) 스에마쓰 겐쵸(末松謙澄)의 "칭기스칸은 일본인이었다" 등의 위서(僞書)를 꼽았다. 나가야마는 여기에서 일본서기를 최고의 위서로 지목했다.
2.
일본사학자 마쓰모토 기요바리(松本淸張)은 “고사기(古史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는 일본왕실의 만세일계를 확립하기 위해 쓰여졌기 때문에 이런 이유로 해서 상당 부분이 왜곡되어 있으며, 왕실이나 중앙정부에 불리한 것은 무엇이든지 제거되었는데 이로 인해 객관성이 결여된 부분이 매우 많다.”라고 말했다.
3.
한.중 고대사의 권위자인 하야시 세이고(林靑梧)교수는 그의 저서 <일본서기의 암호>에서 “일본 왕통 혈족의 만세일계(萬世一系) 세습제부터가 날조이며, 일본 개국왕은 김수로왕 후손임은 상식인데도 이를 부정, 신공왕후라는 유령을 내세웠다”고 밝혔다. 또 “임나일본부 설치를 날조했을 뿐 아니라 오오진(應神)왕이 백제계 부여(夫餘) 후왕인 의라(依羅)이며, 기토라 고분의 40대 텐무(天武)왕은 신라 김다수(金多遂)임에도 일본인으로 변조했다”고 주장했다.
4.
나오키 코우지로(直木孝次郞)는 그의 저서 <日本神話と古代國家>에서 “일왕의 기원을 가능한 오랜 옛날로 늘려 잡기위해 있지도 않았던 일왕 이름을 조작하여 추가 시켰다. 또한 참위설(讖緯說-고대 중국에서, 음양오행설에 의하여 인간 사회의 길흉화복을 예언하던 학설)에 입각해서 제30대 스이코(推古)왕 9년(601)부터 1260년 前 BC 660년을 진무(神武)왕의 즉위년으로 만들었다.
이 제1대 진무왕의 이야기도 일왕가의 기원을 설명하면서 권위를 세우기 위해 조작한 것이며 사실로 볼 수 없다.”
5.
한일고대사 연구가 하니하라 가주로(埴原和郞) 동경대학교 교수는 <한반도를 경유한 아시아대륙인>이라는 저서에서 “인류학적 시작에서 고찰해 보면 한반도를 통해 일본으로 건너온 이주족(移住族)들과 일본 원주족(原住族)의 비율은 대략 85%대 15% 정도이다.
이주족들은 나라시대(奈良時代- 제50대 칸무(桓武) 왕이 784년 헤이안(平安)으로 천도하기 이전)까지도 한복을 입고 한국음식을 먹었으며 심지어는 한국말까지 사용했는데 고사기(古事記), 일본서기, 만엽집(万葉集) 등에 아직 조작되지 않은 부분은 한국어의 한국식 한자용어가 남아있다”고 말해 전체적으로 일본고사기들이 조작되었음을 밝혔다.
6.
1949년 일본은 한반도와 같은 기마민족설(騎馬民族說)을 주장했던 전 동경대학교 명예교수이자 동 대학의 오리엔트박물관 관장.동아시아사(東亞細亞史)학회장을 역임했던 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 교수는 만세일계(萬世一系)를 중심으로 조작된 일본서기의 허구성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일본의 고대국가를 건설한 천황족(天皇族)은 대륙 및 한반도 방면으로부터 4~5세기에 일본 열도로 정복해 들어간 기마민족이다. 특히 미마키(美麻紀) 라는 별명을 가진 10대 스진왕(崇神王)은 가야에서 건너 온 황족이 틀림없으며 미마키란 스진왕이 살았던 옛궁성의 이름인데 미마나(任那)를 일본 발음으로 미마키(みまき)라고 표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그는 “일본서기의 강림신화에 나오는 ‘하늘의 신들이 일본땅 이즈모와 규슈에 내려와 원주민인 땅의 신들을 무찌르고 지배하였다’에서 하늘의 신들이란 임나(가야)에서 건너온 사람들 즉 임금의 땅에서 건너온 황족사람이다”라고 주장했다.
7.
일본 고대사에 있는 쇼토쿠태자는 "헌법17조" 와 "관위(冠位)12계" 를 제정해 일본 국가의 틀을 잡았으며 호류지(法隆寺)를 창건해 불교 중흥에 힘썼다는 것이 정설로 되어 왔다.
그러나 오야마 세이치(大山誠一) 주부대학 교수는 "쇼토쿠(聖德)태자는 실존하지 않았다.
정치적 요청에 의해 "일본서기(日本書紀)" 에 등장한 허구에 불과하다"고 주장해 일본서기가 조작되었음을 주장했다.
8.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시절 도요토미가 만들어 놓은‘코무덤(鼻塚)"이 너무나도 잔인한 명칭에 고민하다가 ‘귀무덤(耳塚)"이라 조작 시켰던 당대의 최고의 학자였던 하야시 라산(林羅山)은 "천손(天孫)들은 모두 대륙(한반도)에서 건너 온 인물이다"라고 하여 일본서기가 위서임을 밝혔다.
9.
비교언어학의 권위자인 前구마모토 대학 시미즈 기요시(淸水記佳) 교수는 박명미와의 공동저서 ‘아나타는 한국인’에서 “오늘날 일본어의 모어(母語)는 한국어이며, 일본의 역사서인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실려 있는 신화와 전설은 전부 고대 한국인의 이야기다”고 말했다.
10.
근대일본의 대표적인 작가인 사카구치 안고(坂口安吾)는 “일본열도는 고대에 고구려·백제·신라 등 삼한(三韓)과, 중국대륙 및 남양 방면으로부터 끊임없이 씨족적(氏族的)으로 집단 이주해왔다.
그들은 도호쿠(東北)지방의 변경지대며 이즈(伊豆)의 7개 섬에 이르기까지 각지에 흩어져 토착(土着)해 살았다. 또한 그 당시는 아직 ‘일본(日本)’이라는 나라 이름도 없었던 시대였기 때문에, 이주해온 사람들은 어느 특정한 나라 사람들이라기보다는 부락민 또는 씨족의 구성원으로서 다른 집단들과 뒤섞여 살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그들 속에서 유력한 호족(豪族)이 나타나게 되고, 본국으로부터 유력한 씨족들이 계속해서 건너옴으로써 차츰 중앙집권을 이루기 위한 다툼이 생기게 되었다고 본다. 특히 바로 코앞에 있는 한반도로부터 이주해온 사람들이 호족을 대표하는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은 틀림이 없다.”라며 한일동족설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밝히면서 일본서기의 허구성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견해는 에도(江戶)시대의 도테이칸(藤貞幹 1732~1797년)을 비롯해서 메이지(明治)시대의 구메 구니다케(久米邦武 1839~1931년), 기타 사다키치(喜田貞吉 1871~1939년), 가나자와 쇼사브로(金澤庄三郞 1872~1967년) 등의 학자들도 같은 주장을 했다.
11. 일제시대 일본 사학계의 거두 쓰다 소기치(津田佐右吉)는 "신공왕후의 삼한 정복설은 가공이며 괴이한 헛소리"라고 일축하여 일본서기가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일본의 우익세력과 3류 사무라이들은 극심한 견제와 생명의 위협을 가했다.
결국 쓰다는 일본 우익세력에 의해 재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쓰다는 그 이후 시대와 야합하여 일왕이 다스리는 일본제국을 위해 고대역사 조작에 앞장선다.
그는 일본서기에 백제가 처음 등장하는 것이 근초고왕. 신라는 내물왕이기 때문에 그 이전 역사들은 모두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즉 ‘삼국사기 및 고대 한국사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조작서임으로 절대로 보지도 말고 참고도 하지 말라’고 주장하여 일본학계로부터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고 이것이 일본학계의 정설로 되어갔다.
그는 이러한 공노로 1949년 일왕으로부터 문화훈장을 수여 받았다. 쓰다와 우익계의 주장대로라면 백제와 신라 초기 400년 가까운 역사가 갑자기 사라져버린 것이다.
한편 고대 한국사가 믿을 수 없는 조작서라는 일본측 주장에 대하여 박창범 서울대 교수가 삼국사기.중국.일본의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는 일식이나 월식, 오행결집 같은 현상들을 컴퓨터를 통해 과학적으로 검정을 시도하였다. 그 결과 전체적으로 삼국사기가 80%, 중국이 75%, 일본서기는 45%의 정확도를 확인했다.
그 외 역사학자 미즈노 유(水野 祐) 교수, 아라타 에이세이(荒田榮誠) 등 수 많은 국내외 학자들이 일본서기가 위서임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