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는 지금으로부터 약 2천 년 전 한나라의 류안(劉安)이 회남왕(淮南王)으로 있을 때 처음 만든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원래 류안은 도가에 심취돼 회남에서 수련을 했었는데 그를 동반한 승려들이 식생활 개선을 위해 두부를 연구 발명하여 류안에게 대접했고, 그 맛을 본 류안이 대량제조의 명령을 내려 두부의 발명권은 회남왕 류안에게로 돌아가게 됐다고 전해진다.
우리 문헌에서 두부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고려말기 성리학자 이색(李嗇)의 문집인 <목은집>의 "대사구두부내향(大舍求豆腐來餉)"이라는 시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나물국 오래 먹어 맛을 못 느껴 두부가 새로운 맛을 돋우어 주네. 이 없는 사람 먹기 좋고 늙은 몸 양생에 더없이 알맞다."라는 구절이 바로 그것이다.
두부의 전래 시기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 기원이 중국임은 확실하고 우리 문헌에 등장하는 때가 고려 말이고 보면 아마도 가장 교류가 많았던 고려 말에 원나라로부터 전래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조선시대에는 우리나라의 두부 만드는 솜씨가 뛰어나서 중국과 일본에서 그 기술을 전수해 갔다고 한다.
두부의 기원은 중국에서 연유했다고하며 일본 이름인 도후로 세상에 널리 퍼지고 있다. 그러나 두부의 종주국은 한국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다. 콩의 원산지가 옛 고구려 영토인 것만으로도 알 수 있고 문헌상 기원전 2세기 한무제(漢武帝)때 손재간이 좋았던 회남왕(淮南王)이 처음 만든 것으로 되어있다. 그 예로 이만영(李晩永)의 재물보(才物譜)(1798) 두부 조에 豆腐(漢淮南王劉安始作豆腐) 黎祈(仝)라 하였다.
그러나 중국의 한(漢), 위(魏), 육조(六朝)는 물론 수(隋), 당(唐)에 이르기까지의 수많은 문헌을 보아도 두부라는 글자가 나오지 않고 당대 말기에서 송대 초기에 비로소 등장하니 두부의 기원은 한대까지 올라갈 수 없다고 보여진다. 동이권에 살던 우리 조상들은 본디 유목계이었기 때문에 요구르트나 치즈 같은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나 점차로 곡물 음식문화가 발달하면서 유(乳)식품에서 멀어짐에 따라 옛날 먹었던 것을 회상하며 그들 스스로 많이 먹고 있던 콩을 이용하여 그것과 비슷한 것을 만들어내니 이것이 두유(豆乳)이고 더 나아가서 두부가 된 것으로 보여진다고 이성우교수는 주장했다.
그 이후 기록으로 세종 14년에 명나라로 사신을 갔다 돌아온 박신생이 명나라 임금의 서한을 갖고 왔는데 "조선에서 보낸 궁녀들의 음식 솜씨가 매우 좋으며 특히 두부 만드는 법과 그 요리 솜씨가 절묘하다. 앞으로도 두부 잘 만드는 궁녀를 골라 보내달라" 고 하였다니 당시 명나라와 우리나라의 두부문화 실상을 알 수 있으며 한편 일본의 유명한 전통 두부로 고지현(高知縣)의 당인 두부를 치는데 이는 바로 임진왜란 때 납치되어 가서 그 곳에 살았던 경주(慶州) 성장(城將) 박호인이 그 두부를 만든 원조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두부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새끼로 묶어서 들고 다닐 수 있을 만큼 단단한 막두부, 처녀의 고운 손 아니고는 문드러진다는 연두부, 콩즙을 끓일 때 약간 태워 탄 내가나는 탄두부, 굳히기 전에 먹는 순두부, 속살을 예쁘게 한다는 약두부, 명주로 싸서 굳히는 비단두부, 기름에 튀겨 먹는 유부, 얼려 먹는 언두부, 두부콩을 끓일 때 생기는 두부피, 찌꺼기로 남는 막비지, 막비지를 띄운 띄운비지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리고 이들을 이용한 두부요리는 우리 서민들의 매 식탁에 반듯이 오르는 상용 음식들이다.
두부는 이제 국제 식품이 되어 최근에는 미국 백악관 식탁에까지도 올랐다는 보도가 있었으며(1993) 미국에서도 대형 두부 공장이 계속 늘고있고 병원식으로도 이용 빈도가 격증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우리음식 문화가 국제화되어 가는 단면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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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이 먹는 두부는 한국이 기원이다. 이제부터 두부를 먹을 때는 한국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먹도록 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