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건너뛰기

KJCLUB 한일 문화교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거북선의 fact를 늘어놓아 ~

조회수 : 304
JA 255 ihmai1 2,811,753


조선 왕조의 역사서인 「태종 실록」태종 13년(서기 1413년) 2월 5일갑인조


→「거북선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수도 방위를 위해서 림츠에에 띄울 수 있고 있었다」라고 하는 기술이 있었다.

※써 있었다고 하는 것이 FACT이며, 실제로 있었는지가 FACT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태종 실록」태종(서기 1415년) 15년 7월 16일 신해조


→「거북선은 적에게 충돌해 손해를 준다.승리를 결정하는 양책으로서 건조된 딱딱한 배이다」라고 하는 기술이 있던

※써 있었다고 하는 것이 FACT이며, 실제로 있었는지가 FACT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이순신행록」

「판자집선과 거의 같이 위를 판으로 가려, 그 판 위에는 십자형의 좁은 길이 되어있고, 겨우 사람이 지나갈 수 있게 되어 있었다.그리고 그 이외는, 죄다 도추(칼모양의 송곳)를 별로, 발을 디딜 여유도 없었다」

여기에는 어디에도 귀갑선이라고 하는 기재는 없다.

한국에서는,이판자집선을 당시의 주력 전함이라고 정의해,태종 실록으로 불명이 되고 있는 배를이순신이 개량해 운용했던 것도라고 해석하고 있다.

덧붙여판자집선의 등장은명종 10년(서기 1555년)이 되고 있다


「이 충무공전서」1795년

여기로부터 간신히 그림이 나오는

이 문헌보다, 귀갑선의 구조는 저판이 길이 14.2 m, 현판최하 제일판 20.6 m, 뱃머리판(선미) 상4.4 m, 머리가 넓이 3.6 m, 최상급 제7판 34.2 m, 아래가 넓이 3.2 m, 허리가 넓이 4.4 m, 높이 2.3 m, 꼬리가 넓이 3.2 m, 두께 0.12m로 해석한다.

>트레이스>

덧붙여 이 자료의 50년전에 맞는1747년 3월, 「조선 왕조 실록」내의 전라도 오른쪽 수영이 작성했다고 추정되는 문서보다, 영조 16년(서기 1740년) 6월 18일에 「해 골선」되는 고속정의 기재가 있다가, 이쪽은 현상 부흥의 목표는 서있지 않다.



「서유 견문」(1895년) 유길준

「귀갑선이 천하에서 제일 먼저 만들어진 철갑선」과 기재

1906년, 최 주석여름의‘조선의 영혼’이나 1908년탄 히토시·신채호(신·최 호)의‘대한의 희망’과 같은 문장을 통해서 항일 의식과 맞물려, 철갑선 전설은 당사의 한국내에 넓게 퍼졌던 것도로 보여지고 있다.(한국과학기술원의 신·돈워 교수의 설)

덧붙여탄 히토시는 철갑선설이*정한론의 연장선으로부터 나온 것을 알아 1930년대, 조선일보에 연재한‘조선 상고사’를 통해서 철갑선설을 부정했다.

<*정한론:당사「정한위략」(한국을 정벌 해야 할 )이라고 하는 카와구치장유의문헌이 나돌고 있었다.거기로부터 나와 있는 론>


그리고 관광화, 영화화로 현재에 이른다···


원문보기

亀船のfactをならべるよ~


朝鮮王朝の歴史書である『太宗実録』太宗13年(西暦1413年)2月5日甲寅条


→「亀船という名で、首都防衛のために臨津江に浮かべられていた」という記述があった。

※書いてあったという事がFACTであって、実際にあったかどうかがFACTということではない


『太宗実録』太宗(西暦1415年)15年7月16日辛亥条


→「亀船は敵に衝突し損害を与える。勝利を決める良策として建造された堅い船である」という記述があった

※書いてあったという事がFACTであって、実際にあったかどうかがFACTということではない

『李舜臣行録』

「板屋船とほぼ同じく上を板で覆い、その板の上には十字型の細道が出来ていて、やっと人が通れるようになっていた。そしてそれ以外は、ことごとく刀錐(刀模様のきり)をさして、足を踏み入れる余裕も無かった」

ここにはどこにも亀甲船という記載はない。

韓国では、この板屋船を当時の主力戦艦と定義し、太宗実録で不明となってる船を李舜臣が改良して運用したのもと解釈している。

なお、板屋船の登場は明宗10年(西暦1555年)となっている


『李忠武公全書』1795年

ここからようやく絵が出る

この文献より、亀甲船の構造は底板の長さ14.2m、舷板最下第一板20.6m、舳板(船尾)上4.4m、頭の広さ3.6m、最上級第七板34.2m、下の広さ3.2m、腰の広さ4.4m、高さ2.3m、尾の広さ3.2m、厚さ0.12mと解釈する。

>トレース>

なお、この資料の50年前に当たる1747年3月、「朝鮮王朝実録」内の全羅道右水営が作成したと推定される文書より、英祖16年(西暦1740年)6月18日に「海鶻船」なる高速艇の記載があるが、こちらは現状復興の目処は立っていない。



『西遊見聞』(1895年)愈吉濬

「亀甲船が天下で一番先に作られた鉄甲船」と記載

1906年、崔錫夏の‘朝鮮の魂’や1908年丹斎・申采浩(シン・チェホ)の‘大韓の希望’のような文を通じて抗日意識とかみ合い、鉄甲船伝説は当事の韓国内に広く広がったのもとみられている。(韓国科学技術院のシン・ドンウォン教授の説)

なお、丹斎は鉄甲船説が*征韓論の延長線から出たことを知って1930年代、朝鮮日報に連載した‘朝鮮上古史’を通じて鉄甲船説を否定した。

<*征韓論:当事『征韓偉略』(韓国を征伐すべき)という 川口 長孺の文献が出回っていた。そこから出ている論>


そして観光化、映画化で現在に至る・・・


좋아요·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

댓글 ( 2 )

게시물 목록

2,811,753

  1. KO 20 Jumong8
  2. KO 255 morort
  3. KO 255 morort
  4. KO 255 morort
  5. JA 255 竹島先住民
  6. KO 255 propertyOfJapan
  7. KO 255 morort
  8. JA 255 竹島先住民
  9. KO 255 amateras16
  10. 조회수 : 79
    KO 255 avenger
  11. KO 255 jap6cmwarotaZ
  12. 조회수 : 109
    JA 255 milet
  13. KO 255 cris1717
  14. KO 255 amateras16
  15. 5 조회수 : 109
    JA 255 dom1domko
  16. 조회수 : 89
    JA 255 sonhee123
  17. JA 255 bluebluebluu
  18. KO 255 avenger
  19. KO 255 jap6cmwarota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