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1. 국보 제218호 아미타여래삼존도. 삼성리움 소장. 극락세계를 주관하는 아미타부처와 그를 보좌하는 관음보살, 지장보살을 그린 불화이다. 고려불화의 대표작으로 고도의 회화적 완성도를 보여준다.
”이보다 더 화려하고 섬세할 수 있을까.”
그 존재가 알려진 게 불과 50년이다. 극히 희귀한 데다 대부분 일본이 갖고 있으면서 꼭꼭 숨겨놓아 여간 접하기 어려운 게 아니다. ‘한국 미술사의 정수’이자 ‘동양 회화사의 군계일학’이라는 고려불화를 이르는 말이다.
일본 미술사가 구마가이 노부오(熊谷宣夫)가 1967년 <조1선학보>에 발표한 논문 ‘조1선불화징’은 한국 회화사를 새로 쓰게 했다. 구마가이는 송나라, 원나라 대의 중국 회화로만 알려진 불화 70여 점이 사실은 고려불화였다는 놀라운 사실을 고증을 통해 처음 밝혀냈던 것이다.
이어 1978년에는 일본 나라현에 있는 사설 미술관 야마토분카칸(大和文華館)이 고려불화 50여 점을 한자리에 모아 특별전을 개최하면서 그 실체가 만천하에 드러난다. 당시만 해도 일본은 한국의 문화재에 대한 뿌리 깊은 열등감으로, 좋은 작품일수록 한국 것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있었고 고려불화의 존재도 부정하려고 했다. 그래서 일본의 박물관에서, 게다가 고려불화를 제목으로 하는 전시회를 여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국내에서는 고려불화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전무할 만큼 이해와 정보가 부족했다. 야마토분카칸 특별 전시회를 계기로 국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일어 1980년대 다양한 루트를 통해 고려불화의 매수가 진행되기 시작한다. 불화 가격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가였다. 일본에는 100점이 훨씬 넘는 고려불화가 존재한다는 소문이 떠돌았지만, 불화를 팔려는 사람은 없었다. 고려불화가 그렇게 많이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한국민들의 거센 반일감정을 불러일으킬까 걱정해 극도로 몸을 사렸던 것이다.

사진2. 보물 제1426호 수월관음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소장. 수월관음도는 달빛이 비치는 보타락가산의 바위에 걸터앉아 있는 관음보살을 선재동자가 찾아가 맞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고려불화 중에서도 백미로 꼽힌다.
문화재 수집광이던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행동에 나섰다. 아미타삼존도와 지장도를 점찍고 삼성물산 미국 지사를 동원해 비밀리에 사들였다. 불화 두 점을 구입하는 데 당시로서는 천문학적 금액인 수천만 달러를 지불했다. 아미타삼존도와 지장도는 1984년 각각 국보 제218호, 보물 제784호로 지정됐다.
이후 국내 학자들에 의해 고려불화가 속속 발굴돼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160점 정도가 확인됐다. 이 중 대부분인 130여 점이 일본의 사찰과 박물관에 소장돼 있고 미국과 유럽 유수의 박물관에 10여 점이 보관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내는 삼성리움을 시작으로 호림박물관,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용인대박물관 등 사설 박물관과 개인들이 외국에서 사들여 현재 10여 점을 확보하기에 이르렀다.
고려불화는 고려 말 일본인의 노략질, 임진왜란 중 약탈, 일제강점기하에서의 무단 반출 등으로 일본에 넘어갔다. 그중 일부가 일본을 통해 다시 미국과 유럽으로 팔려나갔다.
고려는 한국사의 황금기이자 문화의 절정기였다. 삼국시대 불교가 탑과 불상 등 건축·조형물 중심으로 발전했다면 고려의 불교는 참선과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선종의 유행으로 회화가 발달했다.
고려불화는 13세기 후반부터 14세기 전반까지 원나라 간섭기에 절정을 맞는다. 이 시기 왕실과 친원 세력들이 고려불화의 주요 수요자였다. 고려불화는 폭 8, 높이 150 정도의 아담한 탱화들이다. 사찰의 법당에 봉안한 게 아니라 왕실이나 귀족들이 가문의 안녕을 바라며 저택 안 작은 원당(예배 공간)을 장식하는 용도였다.

사진3. 수월관음도. 미국 프리어·새클러 미술관 소장
그들은 이를 위해 돈을 아끼지 않았고, 불화의 수준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렸다. 물 흐르듯 유려하면서도 힘 있는 선과 세밀하고 원숙한 형태, 호화로운 금니(金泥·아교에 갠 금가루), 원색 위주의 화려한 색채 등 고려불화에서 볼 수 있는 고도의 예술적 완성도는 그렇게 만들어졌던 것이다.
고려불화에는 주로 아미타여래도, 수월관음도, 지장보살도를 그렸다. 극락세계를 주관하는 부처 아미타여래는 단독상과 관음보살, 세지보살을 거느린 삼존도, 8대 보살을 모두 거느린 구존도 등의 유형이 있었다.
가로 51, 세로 110 크기의 삼성리움 아미타삼존도는 아미타부처가 세지보살 대신 지장보살의 보좌를 받는 구도다. 주존인아미타여래는 ‘아미타불’을 외치면 나타나 중생을 보살피고 극락으로 인도한다. ‘여래’는 부처의 별칭이다. 머리의 계주(상투 중앙을 장식한 구슬)에서 한 줄기 빛을 내뿜어 중생을 광명의 세계로 이끈다. 그 옆으로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이 협시한다. 괴로운 소리를 들어 구제하는 관음보살은 중생을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이 불화에서 관음보살은 아미타여래 앞에 나와 허리를 약간 구부리고 손 위에 연꽃대좌를 들어 중생을 안내하는 모습이다. 지장보살은 중생이 사후 고통을 해결해주는 보살로, 오른손 위로 커다란 보주를 들고 있다.
좌측 아래에는 기도하는 선재동자가 있다. 선재동자는 화엄경에 나오는 약한 중생을 대표하는 존재인데, 구도자이자 이상적 인간형의 모델로 신봉됐다. 선재동자는 왼쪽 하단에 작게, 부처와 보살은 화면 전반을 꽉 채우는 대소(大小) 묘사법으로 이상세계를 향하고자 하는 중생의 마음을 가득 담았다. 바탕에는 엄숙한 적색을 써서 장엄함을 드높였고 부처의 옷자락이나 문양에는 화려한 금가루를 입혀 고귀함을 강조했다. 바탕천의 뒷면에 색을 칠해 안료가 앞으로 배어나오게 하는 배채법(背彩法)으로 은은한 채색을 연출해 시공을 뛰어넘는 깊고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진4. 지장보살도. 미국 프리어·새클러 미술관 소장. 지장보살은 지옥에 빠진 중생이 모두 구제될 때까지 자신이 부처가 되는 것을 포기한 보살이다. 보통 삭발한 승려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수월관음도는 달빛이 비치는 보타락가산의 바위에 걸터앉아 있는 관음보살을 선재동자가 찾아가 맞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보타락가산은 인도 남쪽에 있는 산으로, 관음보살의 거처이자 관음성지이다. 전형적인 도상으로는 미소 띤 관음보살이 금니 당초무늬로 장식된 천의(天衣)를 두른 채 반가부좌하며 그 앞쪽에 선재동자가 작게 표현된다. 수월관음도는 고려불화 중에서도 백미로 꼽힌다. 섬세하고 화려하며 우아한 종교적 아름다움과 함께 절제된 격식을 갖춰 고려불화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장보살은 부처를 보좌하는 보살이지만 별도의 예배 대상으로 숭배돼 빈번히 그려졌다. 지옥에 빠진 중생이 모두 구제될 때까지 자신은 부처가 되는 것을 포기한 지장보살은 보통 삭발한 스님이나 두건을 쓴 모습으로 묘사된다. 독존상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지장보살 아래에 지옥에서 죽은 자의 죄를 심판하는 시왕(十王)과 권속들을 배치하기도 한다.
불화로 이름을 떨친 화가는 강화도 선원사의 승려화가 노영, 일본 센소지(淺草寺) 소장 양류관음도(일명 물방울 관음도)를 그린 승려화가 혜허, 궁정화가였던 서구방, 김우문 등이 있다.
고려불화 중 국보는 국보 제218호 아미타삼존도(삼성리움 소장)가 유일하다. 수월관음도는 보물 제926호(삼성리움 소장), 보물 제1286호(용인대박물관 소장), 보물 제1426호(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소장), 보물 제1903호(호림박물관 소장) 등 보물만 있다. 극히 일부이지만 그래도 일본에 문화적 열등감을 안겼던 고려불화를 되찾아온 것은 무척 다행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