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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친일파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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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처럼 일본군 끌려갔던 나도 친일사전에 넣어라"

염동현 입력 2010-01-07 11:34 | 수정 2010-01-07 12:25


"일본군에 복무한 일정 계급 이상 장교는 친일행위자고 그 이하 나같은 사병은 개처럼 끌려갔던 희생자라서 명단에 뺐단 말이냐. 이건 우리 세대에 대한 모독이다. 계급 고하를 막론하고 당시 일본 군인이었던 자를 전부 친일파 명단에 넣었더라면 마음은 차라리 편했을 것이다. 그런 면죄부 뒤에 숨고 싶지 않다."


일제 말기 일본군에 사병으로 입대했던 86세의 한 노인이 스스로를 반민족행위자였다고 소개하면서 "일본의 열등 2등 국민이었던 우리 세대는 전쟁터에서 죽는 대가로 동족의 지위가 크게 향상되리라는 것을 믿고 일본인 병사보다 더 용감하게 죽어 朝鮮 젊은이 기개를 보여주려고 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또 "반민족행위 시비에 휘말린 세대의 대부분은 잃었던 나라를 되찾고 6·25전쟁에서 나라를 지켜냈고 오늘의 대한민국 위상을 이루는 데 기초를 닦은 세대이기도 하다는 것을 기억해 달라"고 호소했다.



▲ 우수용씨 ⓒ朝鮮일보


경남 진주에 사는 국가유공자 우수용씨(86)는 6일 朝鮮일보에 "저도 반민족 행위자였습니다"라는 기고문을 싣고 "전쟁이 몇 달만 더 끌었다면 나도 전선에서 인간지뢰가 돼 죽어 가미카제 특공대원이었던 탁경원씨처럼 반민족행위자란 소리를 듣게 됐을 것"이라며 "이것은 너무도 불공평한 일이며 요행에 의해 살아서 국가유공자 행세를 하는 내가 너무 죄스럽고 부끄럽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지난해 말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을 "우리 세대 전체에 대한 모독"으로 규정했다.


우씨는 "사전에는 일본군 가운데 일정 계급 이상 장교는 넣고 나같은 사병은 개처럼 강제로 끌려갔던 보잘것없는 희생자라 해서 너그럽게 용서하여 이름을 뺐다더라"며 "장교건 사병이건 임무를 위해 내던지는 목숨 무게는 모두 같으므로 넣으려면 계급 고하를 막론하고 다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군인이었던 자를 모두 반민족행위자 명부에 넣었더라면 우리 마음은 차라리 편했을 것이다. 그런 면죄부 뒤에 숨고 싶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백선엽 전 육군참모총장의 예를 들며 "6·25때 다부동 전투 승리로 나라를 백척간두에서 지켜낸 국민 영웅을 일본군 하급장교였다는 이유로 반민족행위자로 규정 지은 것은 마치 그가 한때 로마 관리였다는 전력을 들어 위대한 성자 바울을 악마로 몰아세우는 것과 같다"고 비유하고 "과거 역사를 단죄하려는 사람들은 폭넓고 열린 마음으로 사리를 판단하라고 질타했다.




다음은 우씨가 朝鮮일보에 기고한 글 전문




저는 일정(日政) 때 朝鮮人 징병 1기 해당자로 금년에 86세가 됩니다. 우리 세대의 해는 이미 저물었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그나마 앞으로 얼마 안 있어 모두 사라질 겁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들의 세대는 영원히 침묵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꼭 해 두고 싶은 말을 지금부터 하겠습니다.


일본 자살 특공대 가미카제(神風) 대원이었던 경남 사천시 출신 탁경현씨가 1945년 5월 11일 비행기를 몰고 오키나와 섬에 정박 중이던 미군 함대를 향해 돌진, 자폭하여 생을 마감했던 바로 그날, 저는 당시 대전에 있었던 일본군 제224부대 병영 안에서 징집된 육군 일등병으로 폭약상자를 등에 메고 적군의 전차 밑으로 뛰어들어 자폭하는 훈련을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만일 전쟁이 몇 달만 더 끌었더라면 저는 아마 어느 전선엔가 보내져서 훈련받은 그대로 인간 지뢰가 되어 적군의 전차 밑으로 뛰어들어 죽었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저와 탁경현씨는 지금 똑같이 반민족 행위자라는 말을 듣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탁경현씨가 죽은 후 석 달 만에 우리나라는 해방이 되었습니다. 그 해방은 우리가 싸워서 얻은 성과가 아니고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상황의 돌변에 의하여 저절로 주어진 요행이었습니다. 어쨌든 그 해방 덕분으로 그때까지 살아남았던 저는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와 6·25전쟁 때 경찰전투요원으로 참전하였습니다. 지금은 국가유공자로 대우 받으면서 안락하게 살고 있습니다. 반면 그 때 죽었던 탁경현씨는 일본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 반민족 행위자라 하여, 외로운 넋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조차 같은 동족들에 의하여 거부당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불공평합니다. 살아서 국가유공자 행세를 하고 있는 제가 죄스럽고 부끄럽습니다.


탁경현씨와 저는 나이도 그 당시 20대 전반으로 같은 세대였습니다. 저희들 세대는 태어나면서부터 일본 국민이었습니다. 그것도 무기력하게 나라를 잃은 선대들의 원죄를 물려받아 병역의무가 없는 대신 참정권이 없어 일본인들로부터 온갖 차별을 받는 열등한 2등 국민이었습니다. 그 서러움은 젖먹이 나이 때부터 일본에서 자라난 저에게는 더욱 직접적으로 피부에 와 닿았습니다.


같은 동족 어른들 사이에서 "朝鮮 독립"이라는 속삭임이 간혹 어렴풋이 들리긴 했지만, 그것은 시궁창에서 살고 있는 소녀가 꿈속에서 신데렐라를 보는 것만큼이나 현실성이 없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었고, 이어서 朝鮮人에게도 병역의무가 주어져 저 자신이 징집 1기에 해당되게 되었습니다. 사실이지 두려웠습니다. 죽는 게 무서웠습니다.


그런데 그 무렵부터 저희들을 대하는 일본인들의 태도에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바로 대놓고 "조센진(朝鮮 人)" 하고 민족을 비하(卑下)하여 부르던 그들이 그 말을 쓰는 것을 스스로 금기시하게 되고, 대신 지역을 말하는 "한토진(半島人)"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저에게 "너희들에게도 곧 참정권이 주어져서 우리들과 같은 권리행사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일본인 친구가 늘어났습니다.


저는 저희들에게 주어진 병역 의무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즉 우리들이 전쟁터에 나가서 죽는 대가로 뒤에 남은 동족들의 지위가 크게 향상되리라는 것을 믿게 된 것입니다. 저에게는 징집 영장이 바로 오지 않고 본적지 면사무소에 와서 영장을 받아 입대하라는 면장으로부터의 전보가 전달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난생처음 보는 고향 면을 찾아가 하룻밤을 자고 이튿날 국민학교 교정에서 열린 환송행사에 다른 입대 장정들과 함께 참석하였습니다. 많은 고향 어른들이 저희들의 장도를 격려해주셨고, 고향 후배인 학생들이 손에 손에 깃발을 들고 흔들면서 환송을 해주었습니다. 저희들은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당당하게 입대하였습니다. 기왕에 죽을 바엔 일본인 병사들보다 더 용감하게 죽어서 朝鮮 젊은이의 기개를 보여주려고 하였습니다. 어리석었을지는 몰라도 사악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상이 반민족 행위자인 저의 변명의 전부입니다.


고향에서 제가 보았던 환송행사가 사실은 일본의 강압에 의해 이루어진 거짓 행사였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모두 내 탓은 아니고 남 탓이었을까요? 우리들 가운데 어느 한 사람도 나라 잃은 선대들의 원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서 이제는 구차스러운 변명은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다만, 지금 반민족 행위 시비에 휘말리고 있는 세대의 대부분이 어떻게 되어서이든 간에 잃었던 나라를 되찾고 6·25전쟁에서 나라를 지켜냈고 오늘의 대한민국 위상을 이루는 데 기초를 닦은 세대이기도 하다는 것만은 기억해주십시오.


이번에 만들어진 "친일인명사전"인가에는 일본군에 복무했던 사람들 가운데 일정 계급 이상의 장교는 넣고, 그 이하의 저와 같은 사병들은 개처럼 강제로 끌려갔던 보잘것없는 희생자라 해서 너그럽게 용서하여 이름을 뺐다더군요. 그렇다면 그 명부에 등재된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질 능력이 있는 완전한 인격을 갖추었고, 이름이 빠진 저희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질 능력조차 없는 책임 무능력자란 말입니까? 이건 우리 세대 전체에 대한 모독입니다. 넣으려면 계급의 고하를 막론하고 다 넣어야 했습니다. 군인은 장교건 사병이건 넓은 의미에서 모두가 병사입니다. 임무를 위해 내던지는 목숨의 무게는 모두 같으니까요.


계급 고하를 막론하고 당시의 일본군인이었던 자를 모두 반민족 행위자 명부에 넣었더라면 우리들의 마음은 차라리 편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면죄부 뒤에 숨고 싶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덧붙이겠습니다. 6·25전쟁 중에 다부동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나라를 백척간두에서 지켜낸 자랑스러운 국민적 영웅을 일본군 하급장교였다는 이유로 반민족 행위자로 규정지은 것은 마치 그가 한때 로마의 관리였다는 전력을 들어 저 위대한 성자인 바울을 악마로 몰아세우는 것과 다른 것입니까? 지금에 와서 과거의 역사를 심판하여 단죄하려는 사람들은 좀 더 폭넓고 열린 마음으로 사리를 판단하였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 노인의 기고를 읽고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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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帝時代親日派の証言

"犬のように日本軍引かれて行った私も親日辞書に入れなさい"

廉同賢入力 2010-01-07 11:34 | 修正 2010-01-07 12:25


"日本軍に服務した日程階級以上将校は親日行為者でその以下私のような兵は犬のように引かれて行った犠牲者なので名簿に抜いたんなのか. これは私たち世代に対する冒涜だ. 階級高廈を問わず当時日本軍人だった者を全部親日派名簿に入れたら心はかえって楽だったろう. そんな兔罪符後に隠れたくない."


日製末期日本軍に兵に入隊した 86歳の一年寄りが自らを反民族行為者だったと紹介しながら "日本の劣等 2位国民だった私たち世代は戦地で死ぬ対価で同族の地位が大きく向上するだろうと言うことを信じて日本人兵士よりもっと勇ましく死んで 朝鮮 若者意気を見せてくれようと思った"と告白した.


彼はまた "反民族行為是非に巻き込まれた世代の大部分は失った国を取り戻して 6・25戦争で国を守り出したし今日の大韓民国位相を成すのに基礎を修めた世代でもあることを憶えてくれ"と訴えた.



▲ 優秀用さん c。朝鮮日報


慶南晋州に住む国家有功者優秀用さん(86)は 6日 朝鮮日報に "私も反民族行為者でした"という寄稿文を載せて "戦争が何月だけもっと引きじたら私も電線で人間地雷になってたまらなくてがミカゼ特攻隊員だったタックギョングワンシのように反民族行為者と言う(のは)音を聞くようになったこと"と言いながら "これはあまりにも不公平な事で紛れによって暮して国家有功者になりすます私がとても恐れ多くて恥ずかしい"と吐露した.


彼は引き続き昨年末民族問題研究所が発刊した "親日人名辞書"を "私たち世代全体に対する冒涜"で規定した.


ウシは "辞書には日本軍の中日程階級以上将校は入れて私のような兵は犬のように強制に引かれて行ったしがない犠牲者だと言って寛大に許して名前をペッダだったよ"と "将校でも兵だか任務のためにほうり出す命重さは皆同じなので入れようとすれば階級高廈を問わずすべて入れなければならない"と言った. 彼は "日本軍人だった者を皆反民族行為者名簿に入れたら私たち心はかえって楽だったろう. そんな兔罪符後に隠れたくない"と付け加えた.


彼は特にバックソンヨブの前陸軍参謀総長の例えて "6・25の時ダブドング戦闘勝利で国を百尺竿頭で守り出した国民英雄を日本軍下級将校だったという理由で反民族行為者で規定したことはまるで彼がひとときローマ管理だったという全力を持って偉い聖者パウロを悪魔で責め立てることとようだ"と比喩して "過去歴史を断罪しようとする人々は幅広くて開かれた心で私利を判断しなさいと叱咤した.




次はウシが 朝鮮日報に寄稿した文専門




私は日程(日政) 時 朝鮮人 徴兵 1期該当者で今年に 86歳になります. 私たち世代の太陽はもう暮れました. 生きている人はあまり多くないでしょう. それさえもこれからいくらあらなく皆消えるつもりです. そのようになれば私たちの世代は永遠に黙るようになるでしょう. それで必ずしておきたい言葉を今からします.


日本自殺特攻隊がミカゼ(神風) 隊員だった慶南泗川市出身タックギョングヒョンシが 1945年 5月 11日飛行機を走って沖繩島に停泊の中だった米軍艦隊に向けて突進, 自爆して生を終えたすぐその日, 私は当時大田にあった日本軍第224袋兵営の中で徴集された陸軍一等兵で爆薬箱をあぶ担いで敵軍の電車下に跳びこんで自爆する訓練を熱心にしていました. その時もし戦争が何月だけもっと引きじたら私は多分どの電線円価送られて訓練受けたそのまま人間地雷になって敵軍の電車下に跳びこんでたまらなかったはずです. そうだったら私とタックギョングヒョンシは今まったく同じく反民族行為者という言葉を聞いていたはずです.


ところでタックギョングヒョンシが死んだ後三月ぶりに我が国は解放になりました. その解放は私たちが戦って得た成果ではなくて誰も予測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状況の突変によって自然に与えられた紛れでした. とにかくその解放おかげであの時まで生き残った私は解放された祖国に帰って来て 6・25戦争の時の警察戦闘要員に参戦しました. 今は国家有功者で待遇されながら安楽に暮しています. 一方その時死んだタックギョングヒョンシは日本のために命を捨てた反民族行為者だと言って, さびしい魂になって故郷に帰って来ることさえ同じ同族たちによって拒否されています. これはあまりにも不公平です. 暮して国家有功者になりすましている私が恐れ多くて恥ずかしいです.


タックギョングヒョンシと私は年もその頃 20代前半で同じ世代でした. 私ども世代は生まれてから日本国民でした. それも無気力に国を失った先代たちの原罪を受け継いで兵役の義務がない代わりに参政権がなくて日本人たちからあらゆる差別を受ける劣等な 2位国民でした. その悲しいことは赤ん坊年の時から日本で育った私にはもっと直接的に肌に触れました.


のような同族大人たちの間で "朝鮮 独立"というささやくことがたまにぼんやり聞こえたりしたが, それはドブで住んでいる少女が夢の中でシンデレラーを見る程現実性がなかったです. そういう中太平洋戦争が始まったし, 引き継いで 朝鮮人にも兵役の義務が与えられて私自分が徴集 1期に当たるようになりました. 事実であって恐ろしかったです. 死ぬのが恐ろしかったです.


ところでその頃から私どもを対する日本人たちの態度に変化が見え始めました. 前にはすぐつけておいて "ゾセンジン(朝鮮 人)" して民族を卑下(卑下)して呼んだ彼らがその言葉を使うことを自らタブーの時するようになって, 代わりに地域を言う "韓土陣(半島人)"と呼び始めました. 私に "君たちにもすぐ参政権が与えられて私たちのような権利行事をするようになること"と言う日本人友達が増えました.


私は私どもに与えられた兵役義務を肯定的に考えるようになりました. すなわち私たちが戦地に出てたまらない対価で後に残った同族たちの地位が大きく向上するだろうと言うことを信じるようになったのです. 私には徴集令状が正しく来ないで本籍地村役場に来て令状を受けて入隊しなさいという兔将からの電報が伝達しました. それで私は生まれて初めて見る故郷面を尋ねてひと晩を寝て明くる日小学校校正で開かれた歓送行事に他の入隊壮丁たちと一緒に参加しました. 多くの故郷大人たちが私どもの雄途を励ましてくださったし, 故郷後輩である学生たちが手に手に旗をあげて振りながら歓送をしてくれました. 私どもは誇らしい心に堂堂と入隊しました. せっかくに死ぬところには日本人兵士らよりもっと勇ましく死んで 朝鮮 若者の意気を見せてくれようと思いました. オリソックオッウルジは分からなくても邪悪ではなかったです. 以上が反民族行為者である私の言い訳の全部です.


故郷で私が見た歓送行事が事実は日本の強圧によって成り立った偽り行事だったという話を耳にたこができるように入りました. ところでそれが苗も私のせいではなくて男のせいだったでしょうか? 私たちの中ある一人も国失った先代たちの原罪から自由ではないです. その事実を謙虚に受け入れてこれからは貧しい言い訳はしなかったらと思います.


ただ, 今反民族行為是非に巻き込まれている世代の大部分がどんなにドエオソでも間に失った国を取り戻して 6・25戦争で国を守り出したし今日の大韓民国位相を成すのに基礎を修めた世代でもあることだけは憶えてください.


今度作られた "親日人名辞書"人家には日本軍に服務した人々の中日程階級以上の将校は入れて, その以下の私のような兵たちは犬のように強制に引かれて行ったしがない犠牲者だと言って寛大に許して名前を抜いたと言う. それならその名簿に登載された人々は自分の行動に対して責任を負うべき能力がある完全な人格を取り揃えたし, 名前の抜けた私どもは自分の行動に対して責任を負うべき能力さえない責任無能力者と言う言葉ですか? これは私たち世代全体に対する冒涜です. 入れようとすれば階級の高廈を問わずすべて入れ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です. 軍人は将校でも兵だか広い意味で皆が兵士です. 任務のためにほうり出す命の重さは皆同じだからです.


階級高廈を問わず当時の日本軍人だった者を皆反民族行為者名簿に入れたら私たちの心はかえって便したかも知れないです. そんな兔罪符後に隠れたくないです.


最後に一つだけ付け加えます. 6・25戦争の中にダブドング戦闘を勝利に導いて国を百尺竿頭で守り出した誇らしい国民的英雄を日本軍下級将校だったという理由で反民族行為者で規定したことはまるで彼がひとときローマの管理だったという全力を持ってあの偉い聖者であるパウロを悪魔で責め立てることと他のことですか? 今のところ過去の歴史を審判して断罪しようとする人々はもうちょっと幅広くて開かれた心で私利を判断したらと思う心です.










が年寄りの寄稿を読んで皆さんはどう思います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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