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0년 6월 28일, 한국군이 북한군의 진격을 무서워해 일반 피난민와도 다리를 폭파.
폭파시, 교량상에는 4000명의 피난민이 있었다.
이 사건에 대한 육상 자위대 간부 학교 교관의 평가:
「한국군 주력은, 북한군의 강압은 물론이고, 스스로 과조에 퇴로를 차단했던 것이 결정적인 요인이 되고,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붕괴하며 갔다」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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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8일, 한국군이 북한군의 진격을 무서워해 일반 피난민와도 다리를 폭파.
폭파시, 교량상에는 4000명의 피난민이 있었다.
이 사건에 대한 육상 자위대 간부 학교 교관의 평가:
「한국군 주력은, 북한군의 강압은 물론이고, 스스로 과조에 퇴로를 차단했던 것이 결정적인 요인이 되고,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붕괴하며 갔다」
슬프다.

1950年6月28日、韓国軍が北朝鮮軍の進撃を恐れ、一般避難民もろとも橋を爆破。
爆破時、橋梁上には4000人の避難民がいた。
この事件に対する陸上自衛隊幹部学校教官の評価:
「韓国軍主力は、北朝鮮軍の強圧もさることながら、自ら過早に退路を遮断したことが決定的な要因となって、
信じられぬ速度で崩壊していった」
悲しいな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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