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저능 정신병 쪽바리들은 언제나 조선의 인구를 증가 시켰다고 말하지요
그당시 인구조사를 근거 하면서 이야기 하지요
하지만 조선시대 인구 조사는 호패로 하고 있었고요
일제시대때는 호적으로 했지요
호패는 조선시대때 신분증 같은것 이었는데
그 당시 조선은 농경 사회여서 호패가 그렇게 필요 하지 않았지요
호패는 상인들이나 가지고 다녔지 일반인들이 잘 지니고 다니지도 않았습니다
호패를 발급받으면 세금이나 군역등 많은 부담을 가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호적은 달랐지요
호적에 등록이 안되어 있으면 사회활동뿐 아니라 경제 활동도 못했고요
호적은 당시 반강제적으로 등록을 해야 했지요
그러니 인구가 차이가 나는 것이고요
절대 일제시대가 좋아서 인구 증가된 것이아니지요
일본도 막부의 인구와 메이지유신 이후의 인구도 많은 차이가 나지요
우리나라 조선시대때는 호패에 의존한 인구조사였기에 인구가 적을 수 밖에 없었고
일제시대때는 호적에 의한 인구조사여서 인구가 증가한 것 처럼 보일뿐입니다
아래는 조선시대 16세 이상의 남자가 차고 다닌 호패 사진 ↓

[사진설명]
광주시 북구 용봉동 광주시립민속박물관. 광주문화재자료 제16호.
대한제국시대에 문신으로 활약하던 죽파 김봉선이 남긴 호패.
호패에 관하여 자세한 부연설명 http://100.naver.com/100.nhn?docid=171710
그나저나
중국에 정확한 인구수는 얼마입니까?
제도개혁으로 정확한 호구조사가 이루어져서 소수민족의 인구를 모두 파악했다고 해서
인구가 증가한 것이nika???/
그리고 이것은
당시의 종두법이라든지 근대의학의 발달로 세계적인 인구변화추이입니다
Source: United Nations, World Population Prospects, The 1998 Revision; and estimates by the Population Reference Bureau.
인구증가는 당시의 국제적인 대세군요
그럼에도
20세기 초는 새로운 의료와 위생관념 등의 보급으로 전세계적으로 인구가 증가하던 시기였다.
1900년, 16억명을 조금 넘던 세계 인구는 1950년에 25억으로 증가한다.
일제시대 일본의 기록으로는 1910년에 한반도 인구 1300만, 1944년에 2500만 정도를 기록하고 있으니 이런 세계적 인구 증가 추세를 반영한다고 볼수있다.
문제는 1910년의 통계조차도 의문이다. 왜냐하면 1915년 일본 통계에는 한반도 인구가 갑자기 1700만이상으로 나오는 것으로 봐서는 1910년의 인구조사는 아직 조직을 정비하지 못한 일제초기의 잘못된 통계일 확률이 높다.
결국 한반도의 인구는 일제시기에 1700만 정도에서 2500만 정도로 증가했고, 이것을 일제의 덕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추세의 일부일뿐인 것이다.
더욱이, 일제직후 한반도가 세계 최빈국이었다는 사실로 봐서는 일본인들의 "일제시대는 한반도에 혜택만을 주었다"는 주장은 다시 생각되어야 한다.
47295,0 1910
72764,0 1945 > 조선보다 더 증가한 경우가 많습니다 조선은 평균 이하정도군요
인도네시아 http://www.library.uu.nl/wesp/populstat/Asia/indonesc.htm
22245,0 1945
15000,0 1910 조선 ..1.7배?
http://www.library.uu.nl/wesp/populstat/Asia/skoreac.htm
3423,0 1910
5144,0 1945 말레이지아>조선
6293,0 1910
15655,0 1945
미얀마 2배이상>조선 http://www.library.uu.nl/wesp/populstat/Asia/myanmarc.htm
8220,0 1910
18846,8 1945 > 2배이상 필리핀 >조선
http://www.library.uu.nl/wesp/populstat/Asia/philippc.htm 3662,0 1910
4328,0 1910
8242,0 1945 역시 모로코>조선
모로코http://www.library.uu.nl/wesp/populstat/Africa/moroccoc.htm
5842,0 1910
11281,0 1945 남아공>조선
남아공http://www.library.uu.nl/wesp/populstat/Africa/safricac.htm
1939,0 1910
3015,2 1945 튀니지>조선
http://www.library.uu.nl/wesp/populstat/Africa/tunisiac.htm튀니지

세계적 역사통계의 권위자인 앵거스 매디슨 박사가 89년 발간한 "20세기 세계 경제"에 의하면 1913~18년 우리나라 연간 1인당 경제성장률은 2%가 조금 넘었다.
If Aenggeoseu Madison doctor who is authority of universal history figure depends to "20th century international economy" as long as is scarlet in 89, rate of economic growth 2% per 1913 ~ 18 year our country year 1 person exceeded a little.
이는 60년대 이후 외환위기 때까지 우리가 기록한 연평균 6%가량의 성장률 3분의 1밖에 안 되는 것이다.
This yearly mean 6% that we record until after this foreign exchange juncture in the 60s almost of growth rate 1/3 become .
큰 차이가 아닌 것 같지만 2%로 성장해 소득이 2배가 되는 데 걸리는 36년이라는 기간 중 6%로 성장하면 소득이 8배 이상 증가하게 되는 엄청난 차이다.
Do not seem to be big difference, but though income becomes double because growing by 2%, income is great difference that increase more than octuple if grow by 6% during period for 36 years that take.
그나마 이것도 일제에 유리한 비교인데, 이는 30년대 이후 일제하에서의 경제성장은 일본의 제국주의적 팽창을 위한 전시경제 체제하에서 이루어졌던 것으로 궁극적으로는 지탱이 불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This is profitable comparison at Japanese Empire even so, because economic growth of this was thing which alimentation is impossible ultimately by thing which consisted under wartime economy system for imperialistic swelling of Japan under after this Japan-made in the 30s .
일제 전시경제가 무너지면서 우리나라 경제도 붕괴해 국내총생산(GDP)은 1950년까지도 38년의 72% 수준에 머물렀던 것이 그 증거다.
As Japan-made wartime economy collapses, it is the evidence that GDP (GDP) stayed in 72% level of 38 years until 1950 because our country economy collapses.
게다가 광복 이후 식민지 착취하의 생활고에 못 이겨 해외로 이주했던 많은 동포가 돌아오면서 1938~50년 인구가 35%나 늘어났고, 따라서 1913년과 50년을 비교하면 결국 우리나라의 1인당 소득은 성장한 것이 아니라 연평균 0.2%의 속도로 수축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In addition, as many brethrens moved abroad doing not win in hardships of life under colony exploitation since revival come back, population increased 35% 1938 ~ 50 year, and therefore, if compare 1913 and 50, calculation that income per 1 person of our country contracted with the speed of yearly mean 0.2% not that grow finally comes out.
이렇게 보잘것없는 성장의 과실도 그나마 매우 편중되게 분배되었다.
Fruit of such worthless growth even so very preponderance to be done share .
일제 시대 우리나라의 소득분배에 관한 신빙성 있는 자료는 별로 없지만, 당시 일본의 소득분배가 국제기준으로 불평등한 편이었던 데서 유추해 보면 식민지인 한국의 소득분배는 굉장히 불평등했다고 보아야 한다.
There is no many dependable data about income division of our country Japan-made age, but if analogize at place that income division of Japan was unequal by international standard at that time, Korean income division that is colony must see that was great unequal.
비경제적 측면에서도 상황은 유사하다.
Situation is resemblant in unexplored regions removal from a register side.
일부에서는 일제가 영국 등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과 달리 현대식 교육을 보급하여 후일 한국 등 식민지들의 성공에 기여했다고 하지만 45년 광복 직후 우리의 문맹률은 78%로 영국 식민지였던 말레이시아의 62%(47년), 짐바브웨의 64%(45년)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었다.
I speak that contributed in colonies" success such as the South Korea later days supplying modern style education unlike the imperialism countries that Japan-made is different such as the Britain in some, but it was higher level than Britain colony was 62% (47 years) of Malaysia, Zimbabwe"s 64% (45 years) by our illiteracy rate 78% shortly after revival 45 years.
결국 정치적.
End, political .
문화적으로 온갖 굴욕을 당해가면서 35년간 일본의 식민지 결과 1인당 소득은 식민지가 되었을 때보다 낮아졌고, 그나마 그 소득도 지극히 불평등하게 분배되었으며, 대부분의 국민은 문맹으로 남아 있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Income per colony result 1 person of Japan became low than became colony 35 years encountering culturally every humiliation, and the income was shared as is unequal extremely even so, and conclusion that most people remained as unlettered person appears.
이런데도 일제 지배를 긍정적으로 볼 수 있을까?
May I conduct Japan-made control positively is like this?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Cambridge professor Dae who is grand .
경제학
Economics
쪽바리들이 인구를 늘렸다는것도 쪽바리의 문화인 거짓말 날조 왜곡 자위 소리라 반박할 가치도 없지만
또 지옥과 같은 일제시대 단순한 거짓말 인구증가로 조선이 지상낙원이라는 쪽바리들의 주장에 지금 인구증가율이 가장 높은 아프리카는 지상낙원 입니까?
어이가 없어 쪽바리들을 전부 소총으로 머리를 쏴버리고 싶은 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