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기에는 무려 수백년이나 일본의 영토였다고 하는데,
삼국지에서 "弁韓"은, 삼한의 왕인, 마한의 辰王의 영토라고 기록되어 있고,
광개토대왕 비석에서 "任那加羅"는, 400년에 광개토대왕이 점령해서 신라에게 인계했다고 기록되어 있는 등,
일본서기 외의 다른 기록에서는 야마토의 영토라고 하는 기록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한반도의 남부, 충주에는 "신라는 고구려의 신하"라는 내용의 고구려의 비석이 있으며,
신라의 왕릉에서는 고구려 왕의 이름이 적혀있는 청동 그릇이 발견되고,
宋書에는 고구려가 야마토를 합병하려고 하고 있다면서 도움을 요청하는 야마토의 왕, 武의 말도 기록되어 있다.
광개토대왕 비석의 南征의 기록은 고고학적으로도 증명되는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일본인의 임나일본부설은 일본서기의 외에는 고고학적, 기록적 근거가 전혀 없다.
400년에 야마토가 신라의 수도를 공격하고 있던 것은 사실이나, 곧 바로 광개토대왕에 패퇴했다.
일본서기에는 그러한 패전의 사실은 전혀 기록하지 않은 채 정신승리와 거짓말을 기록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