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라우를 발견한 최초의 유럽인은 1543년의 스페인인 루이 로페즈 드 빌라로보스로 스페인은 1686년 섬에 대한 소유권을 제기했으나 발전이나 식민지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취하지 않았다. 그후 미국-스페인의 전쟁으로 허약해진 스페인은 팔라우를 독일에 팔았고 독일은 1899년 통제권을 획득해 서양에서 전래된 질병으로 주민의 감소를 방지하기 위한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는데 이는 코코넛농장의 노예등으로 삼기 위함이었다
일본은 팔라우를 1914년부터 2차 대전 종료까지 점령했다. 이 기간은 팔라우의 문화가 급격하게 변화한 시기로 일본어의 방언이 섬에 전래됐으며 마을 족장은 일본 식민지 통치자에 의해 영향력을 상실한다.독일이 팔라우인을 노예로 부리기 위해 질병감소에 힘쓰듯 전시체제와 수탈을 위해 코로르가 도로 포장과 전기와 파이프를 통한 물의 공급등이 이뤄진다 수 천명의 일본인, 한국인, 오키나와인 노동자가 이주했으며 전통을 계승하던 패턴은 자신의 땅을 잃은 것과 마찬가지로 산산이 파괴됐다.
1930년대 후반 일본은 팔라우를 세상과 단절시키고 섬들을 통해서 군사 요새화에 노력을 집중한다. 2차 대전의 마지막 단계에서 팔라우에 위치한 일본의 군사시설은 연합군의 공격목표가 됐으며 펠렐리우와 앙가우르 섬에서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졌으며, 그야말로 팔라우는 산산히 부서져 버리고 만다
일본은 과거에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이토록 아름다운 팔라우에 여기 저기 동굴을 뚫어 경관을 망치고 그 곳에는아직도 일본측으로 부터 끌려간 강제징용자와 위안부가 죽어나간 기념비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정말로 팔라우에 사과하고 사죄해야
하는 것은 야마토 자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