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사 옆 낮은 동산에 가보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신국신사(辛國神社)가 자리잡고 있다. 동대사 관람객 십중팔구는 그냥 지나쳐버릴 정도로 내버려진 외진 곳이다. 그러나 바로 이 신사가 한국인들의 혼령을 모신 우리들의 신사다. 즉 나라에서 숨져간 한반도 도래인들의 혼령을 모신 곳이다. 신사 이름은 처음에는 「한국신사(韓國神社)」였지만 명치유신 때 韓자와 똑같이 「가라(から)」로 소리나는 辛(매울신)자를 써서 신국신사, 즉 가라쿠니신사로 개명해버린 것이다. 한국을 싫어하는 일본인들이 꾸준히 진행해온 역사 인멸의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나라에는 동대사와 서대사에 이어 남대사로 속칭되는 백제대사가 있었으나 서기 1017년 지진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기록에만 남아 있었는데, 최근 그 환상의 절터가 발견되었다는 외신보도가 있었다.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 백제대사는 일본의 7대 명찰이면서 동시에 일본에 르네상스를 일으킨 성덕태자(聖德太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어졌다고 한다. 성덕태자는 백제의 혜총과 고구려의 혜자법사에 의해 불교에 귀의하였고 그 불력(佛力)으로 왕위에 등극했다고 믿고 있던 백제 서명왕(舒明王)이 백제천(百濟川)변에 대찰을 지어 백제대사로 이름붙인 후 성덕 태자의 명복을 빌었던 것이다.
이처럼 백제대사는 일본 최초의 왕립(王立) 사찰임과 동시에 백제 망명정권의 원찰(願刹)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찬란했던 백제불교의 진정한 모습이 또 하나 복원되기를 기대해 본다.
신라가 이민족(異民族)인 당(唐)나라를 한반도에 끌어들여 백제를 멸망시킨 것은 곧 세계에서 가장 섬세하고 훌륭한 문화를 말살시켜버린 것이다. 참으로 애석해서 통탄을 금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생각은 야마토 평원의 교토(京都)에 자리잡고 있는 광륭사(廣隆寺), 즉 고류지에 가서 보면 더욱더 아픔으로 마음을 저미어 온다. 일본 국보 제1호 「미륵보살 반가사유상 」, 이는 우리 한국 국보 제83호인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과 쌍둥이처럼 닮았다. 백제에서 만들어 가져갔거나 아니면 건너간 백제인들이 만들었던 것이 확실하다. 그 재질 이 한국산 적송(赤松)임이 이를 증명해 준다. 불공을 드리는 불자(佛子)의 발등에 떨어지는 그 시선과 잔잔한 미소가 사람의 마음을 순화시켜 주기에 충분하다.
지난 80년대 초반 미륵보살의 매력에 감동한 일본 관람객이 불상을 껴안는 바람에 불상의 새끼손가락이 잘라지는 사건이 발생하여 문화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그 관람객은 당황한 나머지 잘라진 새끼손가락을 가지고 줄행랑을 쳐버렸다. 언론의 간절한 노력으로 그 새끼손가락을 다시 찾아 접합했는데 범인은 대학생이었다.
그런데 이 사건이 한국의 사학계를 흥분시키고 말았다. 절단된 새끼손가락의 단면 재질을 정밀 분석해 보니 한국산 붉은 소나무(赤松)였기 때문이었다. 일본의 학자들이 내린 결론이어서 그 흥분은 더 했던 것이다.
광륭사 역시 백제에서 건너간 하타카와카쓰(秦河勝)가 축조하여 그의 성(姓)을 따 진공사(秦公寺), 태진사(太秦寺), 또는 진사(秦寺)라고 불린다. 하타카와카쓰는 일본에 술을 만드는 법과 양잠, 농경법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산업의 신」으로 추앙받고 있기도 하다. 교토의 마쓰오대사(松尾大社)는 하타씨(秦氏) 부처(夫妻)를 신체(神體)로 조각하여 제신으로 봉안하고 있는데 일명 「주조신사(酒造神社)」라고도 불린다.
이처럼 일본 문화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백제를 일본인들은 「큰 나라(大國)」로 불렀다. 백제의 일본 표기는 구다라(百濟)인데 큰 나라 → 쿠나라 → 구다라로 바뀐 것이다. 이와 관련해 지금도 일본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말 중에 「구다라 나이(百濟無い)」라는 말이 있다. 직역하면 「백제가 없다」인데 속뜻은 백제 것이 아니다, 즉 백제 것이 아니면 쓸모가 없다라는 말로 「백제 것이면 무엇이든지 최고」라는 속담이 된 것이다.
백제는 이처럼 일본 사회에서 선민의식, 즉 우월감으로 표출되어 자신의 성(姓)을 백제와 연관하여 짓는 경우도 허다했다. 「구다라」라는 성씨도 있고 또 부여의 여(餘)자를 따 성을 삼기도 했으며 남원의 남바라(南原), 충주의 옛 지명인 중원을 따 나카하라(中原) 등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오늘날 그 후예들이 많이 살고 있음이 이같은 역사적 사실을 입증해준다 하겠다. 뿐만 아니라 백제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지명도 무수히 많다. 백제군, 백제면, 백제역, 백제천, 백제교, 백제천역, 백제촌, 백제고개, 백제산 등이 있는가 하면 오사카에는 오사카시립 남백제소학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