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주석원
(죠난 고등학교의 이사장을 맡아 국회 의원도 역임했다)
(일본병을 지휘해 다대한 공적을 올렸기 때문에, 훈장을 받은 인물)
1915년 육군 사관 학교를 졸업(27기.졸업시의 성적은 466인중 432위),
동년 12월 25일에 소위로 승진해, 2년 후에는 중위가 되었다.
1931년에 만주 사변이 발발했을 때에는,
자주포 중대장(대위)으로서 큰 전과를 들었다.
또, 1937년의 중일 전쟁 시에는 대대장(소좌)으로서 종군,
산서성으로 한 개대대를 인솔해중국군을 섬멸해,
이 공적으로부터, 조선인으로서는 처음,
또 생존하고 있는 영관에서는 이례의 금치훈장공3급이 수여되었다.
이 일로부터 당시의 조선에서는,
「금 부대장 분전기」, 「금 주석원 부대 격전기」, 「전진 여담」
이라고 하는 돈을 칭하는 기사가 연일 미디어에 대해 발표되어
최남선의 작사로 「금 소좌를 생각한다」라고 하는 노래까지가 만들어졌다.
또, 1941년에 태평양전쟁이 발발했을 때에는,
조선인의 청년들에게 학도 동원에 참가하는 님 호소하는 강연 활동등 ,
후방의 지원도 적극적으로 갔다.
(중략)
1950년에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
군부의 요청으로 수도 사단장으로서 현역에게 복귀해,
조선인민군과 교전했다.눈사태를 쳐 후퇴하는 한국군의 진두에 서,
일본도를 내세우고 지휘를 맡는 돈의 모습은,
병사를 많이 용기 붙여돈이 지휘하는 수도 사단의 용전은 눈부시고,
더글라스·막카서로부터 감사장을 받는정도였다.
또, 지장이라고 해도 평가의 비쌌던 돈아래에는,
전 일본병인 한국인이 전국으로부터 집결한 일로도 알려져 있다.
2002년에 친일파 708 인명부에 게재되었을 때에는,
죠난 고등학교의 부지내에 있는돈의 동상을
철거하려고 하는 활동이 일어나, 다음 2003년에 철거되었다
금 주석원이 없으면
지금의 한국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반도는 북한이 되어 있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스스로가 곤란하면 의지해, 필요가 없어지면
은혜도 잊어 탄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