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의 시각에 본 원인...
비틀스 멤버 존 레넌의 부인 오노 요코가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인상적인 얘기를 했다.
"결국 세계에 받아들여지는 것은 독창성(오리지널리티)이 있는 것뿐이다. 한국에 필요한 것도 독창성이 아닐까?"
한국에서 또다시 대일 무역적자가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 같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솔직히 말해 한국의 발상과 대응에는 지난 4반세기 이상, 거의 진전이 없다.
경제학자들은 이 문제의 처방전을 쓸 수 없다. 특정국에 대한 무역적자를 경제 "문제"로 보는 정통이론이 없는 까닭이다. 할 수 없이 정치에 밀린 관료들은 80년대에는 민간기술 이전의 부족을, 90년대에는 "비(非)관세 장벽"을 비판했고, 언제나 문제의 "해결"을 일본 정부에 요청했다. 또 결과가 현실화되지 않는다며 일본의 성의부족을 비난해 왔다.
도요타 계열의 부품 메이커로 출발해, 지금은 도요타 이상의 국제경쟁력이 있다고 평가받는 덴소의 경영자는 그들의 초정밀성이 극히 균질하고 신뢰성이 있지만 실제로는 극히 단순한 것, 예를 들면 나사 한 개 등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고 얘기한다.
독창성을 추구하면서, 세계와 싸우고 있다. 화려한 학력이나 명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의 매일매일의 작은 "창의(創意)"가 일본과 독일의 지식집약형산업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런 세계가 대학진학률 80%, 영어의 연마에 피땀을 흘리고, 부동산 투자가 나사 생산의 몇 배의 수익을 일순에 올리는 한국에서 지금 가능할 것인가? 같은 나무도 다른 토양에서는 제대로 뿌리를 내리기 힘든 법이다.
대일 무역적자 "문제"의 본질은 거시(巨視)경제도, 미시(微視)기술 격차도, 중소기업의 문제도 아니다. 금형(金型) 등 개개의 기술력에서 한국이 충분히 수준이 되는데도 일본으로부터 수입할 수밖에 없는 것은, 한국의 국내 생산이 없는 등 거의가 경제합리적인 이유에 의한 것이다. 대일무역수지는 한국이 "한국, 한국기업, 한국인만이 할 수 있는" 독창성을 어디에서 찾아낼 수 있을지 라는 경제개발전략의 "결과"에 지나지 않으며, 여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한국 정부가 나서서 무역균형을 이루려는 시도가 지금까지 거의 실패로 끝난 이유는 이런 가변적 "결과"를 고정적인 "목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한류가 프랑스 영화와 할리우드 영화처럼 일본에 정착한 것은 왜일까? 질투 섞인 비판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 정서와 미(美)의식이 일본에는 없는, 한국의 독창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승용차가 일본에서 팔리지 않는 것은 왜일까? 일본에서는 승용차로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려는 의식이 이미 먼 옛날에 소멸했다. 자동차에서 이동수단 이상의 부가가치라고 한다면 이제는 재미와 즐거움, 때로는 환경의식으로 옮겨가고 있다. 한국차가 이런 범주에서의 독자성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일본에서 팔리지 않는 것이다.
결국 한국의 관민(官民)이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야 할 것은 어떻게 창의성을 실현할 것인가이지, 대일무역 수지를 균형에 맞춰놓는 것이 아니다. 문제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는 신(新)사고로 돌아서지 않는 한 무역적자 논의는 계속 사막을 헤매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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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일본인 교수는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글을 다 읽고도 이해할수 없네
결론을 말해라........ 자기도 모르는 것이면 글을 쓰지 말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