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의 유명한 물레방아 날조가 포함된
세종 11년(1429년)의 조선통신使 朴瑞生 일화
1. 물레방아는 원래 고구려가 일본에게 가르친 기술.
倭車와 같은 부분의 기록에 나타나는 唐車 등,
여러가지의 물레방아 기술이 있었지만
기후의 문제로 보급이 원활하지 않았던 것인데,
일본인은 조선에는 원래 물레방아 기술이 없었는데
일본에서 처음 배운 것이라고 날조한 것이다.
일본인의 물레방아 날조는 이 곳을 참고 :
일본인의 물레방아 날조
https://www.kjclub.com/kr/board/exc_board_9/view/id/3692440
2.

일본으로 파견된 통신使 일행은 귀국한 뒤에 왜지가 단단하고 질긴 것은 제조법 덕분이 아니라 원료인 왜닥나무의 우수성 덕분이라고 보고하였다.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80127
일본의 紙를 칭찬하는 내용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紙의 경우는 조사 결과 제조법보다는 일본의 닥나무의 우수성이었던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던 것 같다.
3. 세종이 일본에서 도입하려고 했던 일본의 尖底船이라는 것은,
사실 일본이 600년 전에 신라에서 도입했던 신라船의 기술이다.
한국의 선박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尖底船이 쇠퇴하고,
연안 항해에 유리한 平底船으로 이행했지만, 일본에는 신라의 尖底船의 기술이 남아있던 것.

求法僧이 탑승한 신라선 그림



보듯이 조선통신使 朴瑞生이 일본에서 배워왔다는 기술은,
첨단의 신기술에 대한 내용은 아니었다.
일본인이 조선통신使 朴瑞生이 일본에서 배운 내용을 떠드는 것은,
마치 인공위성을 만드는 나라에게,
인공위성은 만들지 못하지만,
세탁기 제작 기술을 자랑하는 것과 같은 일.
당시 첨단 기술의 비교는 이 곳을 참고 :
조선시대 vs 무로마치 시대 과학력
https://www.kjclub.com/kr/board/exc_board_9/view/id/3771670
그리고 조선통신使 朴瑞生의 報告에는,
당시 일본의 비참한 상황도 기록되어 있지만,
일본에서는 적당히 은폐하니까 이 부분은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 부분은 이 곳을 참고 :
세종과 동시대의 일본
https://www.kjclub.com/kr/board/exc_board_9/view/id/38635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