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의 시체와, 일본군인.

●일본군이 난징을 점령하자 일장기를 꽂고 환호하고 있는 일본군인들.

○중화문밖에서 집단학살된 중국인들의 시체.
그리고 중국인들의 시체를 바라보는 일본군인.

●집단 학살이 발생한 현장지도.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만여 명을 몰살시킨 일본군은 시체를 소각하거나 양쯔강에 내던져 버렸다.

○일본군인들은 자신들이 중국인들을 학살했다는 증거를 없애기 위해 양쯔강에 버리거나, 시체를 불에 태워버린다.

●중국인포로의 목을 베는 일본군인.
이 사진을 보아, 일본군인들은 중국인포로들을 죽여도 되는 필요없는 것으로 생각했을것이 뻔하다.

남경 대학살에 관여한 일본군 수뇌부

최근 중국 난징(南京) 대학살 당시 일본군이 중국인들을 생매장하는 사진이 일본에서 공개되면서
지금까지 중국이 항일을 위해 사진을 조작했다고 주장해오던 일본의 주장을 완벽하게 뒤엎게 됐다.

난징을 향한 상쾌한 목 베기 경쟁
잘드는 칼로 30여명을 베는 체험
"조선인 학살에 軍隊도 가세"
日변호사聯보고서 처음 인정언론들, 학살책임 회피 안간힘
1일은 일본에서 관동(關東·간토) 대지진이 일어난 지 80주년이 되는 날이다.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58분, 일본 도쿄와 요코하마 일대에 진도 7.9의 격진이 밀어닥쳐 14만여명의 인명이 희생되고 가옥 57만채가 전파·소실됐다. 그러나 한국인들에게 이날은 ‘학살의 날’로 기록돼 있다.
지진 후 공황상태에서 ‘조선인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우물에 독약을 넣었다’는 악성 유언비어가 퍼져, 6000여명(추정)의 재일동포들이 일본인 손에 무참히 학살당했다. 이국 땅에서 억울한 죽음을 맞은 당시 조선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각종 행사와 진상규명 움직임이 지진 발생 80주년을 맞아 활발해지고 있다.
◆ 진상규명 움직임
일본 변호사연합회는 지난달 25일 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은 일본 정부가 유발한 책임이 있다면서, 고이즈미 총리에게 사죄와 진상규명을 권고( 본보 8월 26일자 A16면 보도 )했다. 연합회는 그때의 일본 정부 자료와 형사재판 기록 등을 토대로 조선인 학살을 유발한 유언비어가 일본 정부에 의해 조직적으로 유포됐다는 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관동대지진 80년 만에 일본의 공공 단체가 처음으로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 일본 정부가 내린 ‘학살명령’
일본 변호사연합회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조선인 학살을 유발한 유언비어는 당시 경찰이나 군 기록에도 허무맹랑한 유언비어에 불과하다는 것이 일관되게 기술돼 있다. 지진 발생 다음 날 취임한 야마모토 곤베에(山本權兵衛) 당시 일본 총리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9월 2일 오후 3시 자경단원이 ‘폭탄과 독약을 소지하고 있다’며 경찰서로 끌고 온 조선인이 갖고 있던 것은 설탕이었다.”
그렇다면 유언비어의 진원지는 어디일까. 일본변호사연합회 조사보고서도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다만 지진이 난 후 내무성 경보국(警保局)이 방화와 폭동 등의 소문을 ‘조선인 폭동’ ‘내습’ 등의 표현을 써가며 사실인 것처럼 전국에 통보한 것이 조선인 학살의 ‘큰 원인’이 됐다고 밝히고 있다.
조사보고서가 제시한 자료를 확인해보면, 지바현 후나바시(船橋) 해군송신소에서 내무성 경보국장 명의로 전국의 부(府)·현(縣)지사에게 보낸 전문에는 “도쿄 부근의 진재(震災)를 이용해서 조선인들이 각지에서 방화하고, 현재 도쿄 시내에서는 조선인들이 폭탄을 소지하고 석유로 방화하려 하고 있으니, 각지에서는 충분히 주도면밀한 시찰과 조선인의 행동에 대한 엄밀한 단속을 실시하라”는 내용이 있다.
내무성은 사이타마(埼玉)현 등 도쿄 인근의 현에 대해선 “재향군인회원, 소방수, 청년단원 등과 협력해서 조선인들을 경계하고, 일단 유사시에는 신속히 적당한 방법을 강구할 것” 등을 지시했다. 내무성의 이런 지시는 사실상 조선인 학살을 허가하는 내용이었다.
정부 주도의 선전은 일본 민중들을 쉽게 흥분시켰다. 조선인 학살이 본격화된 것은 내무성 전문 타전이 시작된 직후인 4일을 전후해서이며, 도쿄에서 가장 심했던 곳은 가메이도(龜戶)경찰서였다. 여기서는 하룻밤 사이에 300여명을 학살했다. 그 외에도 요코하마, 지바, 사이타마 등에서 수천 명이 학살됐다. 이와 함께 중국인 폭동설이 유포되면서 중국인도 수백명 학살됐다.
학살 방법은 잔인함의 극치였다. 일본인들은 죽창이나 몽둥이, 총칼 등으로 닥치는 대로 조선사람을 죽여 강물에 던지거나 불에 태웠다.
조선인 학살은 지금까지 전해내려온 것처럼 자경단이나 경찰에 의해서만 자행된 것은 아니었다. 치안유지를 위해 도쿄 시내에 들어온 군대까지 가세했다. 조사보고서가 제시한 자료 ‘관동계엄사령부 상보’에 따르면, 9월 3일 도쿄 오시마(大島)에서는 조선인 200명이 군인들에게 살해되는 등 3~4일 이틀간 230여명이 살해됐다. 조사보고서는 “기록에는 군인들의 정당방위인 것처럼 돼 있으나 학살행위를 정당화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 일본의 책임회피
일본의 언론들은 대지진 8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획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일본의 방재능력을 점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 조선인 학살에 대해선 애써 외면하는 분위기다.
일본의 우익 세력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최근에는 조총련 지방본부와 금융기관에 폭발물을 설치하거나 총격을 가하는 등 조총련계 동포들을 위협하고 있다. 일본변호사연합회가 지적한 대로 여전히 뿌리 깊은 민족차별이 존재하는 것이다.
특히 대표적 극우 정객인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도지사 같은 경우는 최근 한국인 소매치기를 비롯해 불법 외국인들이 도쿄를 무법천지로 만들고 있다며, 유사시 이들이 폭동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망언을 되풀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