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大韓의 원수를 갚았노라. 조국광복을 못본채 죽는 것이 恨스러울 뿐이다. 저 세상에 가서도 독립운동은 계속 하리라』
趙義士는 그를 향해 毒劍을 힘껏 던졌다. 그러나 칼은 裕仁의 丈人 久邇宮의 목 언저리와 어깨를 찌르고 빗나가 운전사의 손등에 맞았다.
趙義士는 아수라장이 된 그 자리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고 日군경들에게 체포, 그해 7월 18일 대만고등법원 특별공판정에서 소위 「皇族危害罪와 不敬事件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3개월 뒤인 10월 10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趙義士가 순국한지 6개월 뒤인 1929년 1월 27일 久邇宮은 독기가 온몸에 퍼져 목숨을 잃었으니 선생의 거사가 성공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