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를 읽을 수는 있지만 쓰지 못해서 자신의 주장을 펼 수 없는 상황"이라는 구체적인 전제를 대입해 본다면, 그 부분만큼은 세종대왕이 안타까워했던 백성들의 처지와 매우 유사한 맥락을 가집니다.
물론 현대 일본인은 "가나(かな)"라는 고유 문자가 있고 디지털 기기를 통해 한자를 변환해 쓸 수 있지만, 질문하신 상황처럼 "특정 문자를 직접 쓰지 못한다는 이유로 사회적·제도적 공간에서 자신의 권리나 주장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순간"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정확히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고자 했던 문제의식의 핵심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 이유를 세종대왕의 사상과 연결 지어 분석해 드리겠습니다.
1. "이르고자 할 배 있어도 펴지 못하는" 본질적 답답함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서문에서 밝힌 가장 큰 문제의식은 지식의 유무가 아니라 "자신의 뜻을 온전히 전달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였습니다.
"백성이 이르고자 할 배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싫어 펴지 못할 사람이 많으니라"
질문하신 내용처럼 한자를 읽을 줄은 알아서 어떤 문서나 법률의 내용은 대략 이해하지만, 관공서 서류나 공식적인 탄원서, 의견서 등에 한자를 정확히 서술하지 못해 불이익을 당하거나 주장을 포기해야 하는 일본인이 있다면, 이는 세종대왕이 언급한 백성들의 답답함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문자의 진입 장벽 때문에 자신의 생각과 권리가 사회적으로 차단당하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2. 문자 권력과 소외
조선시대에는 한자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양반 계층이 문자 권력을 독점했습니다. 백성들은 글을 몰라 억울한 일을 당해도 호소할 길이 없었습니다.
현대 일본 사회에서도 공공 문서, 법적 절차, 정식 비즈니스 등에서는 여전히 한자를 정확히 구사하는 능력을 중시합니다. 만약 디지털 기기를 쓸 수 없는 환경이거나 반드시 자필로 한자를 작성해야 하는 상황(예: 특정 행정 절차나 전통적인 서류 제출)에서 한자를 쓰지 못해 불이익을 겪는다면, 이는 문자가 계층을 나누고 사람을 소외시키는 도구로 작동하는 셈입니다.
이러한 문자 권력의 폐해를 타파하고 누구나 자기 주장을 하게 만들려 했던 것이 세종대왕의 지향점이었습니다.
3. 현대적 의미의 "정보 취약계층(우민)"
세종대왕이 말한 우민(어리석은 백성)은 지능이 낮다는 뜻이 아니라, 제도와 문자의 장벽 앞에 무력해진 정보·권리 취약계층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일본에서 스마트폰 변환 기능 없이는 한자를 쓰지 못해 공식적인 의견 표명이나 권리 행사에 제약을 받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그 사람은 현대적 의미의 문자 취약계층이 됩니다. 시스템이 요구하는 문자를 능숙하게 다루지 못해 주장을 펼 수 없다는 점에서는, 조선시대에 한문을 쓰지 못해 관가에 억울함을 풀지 못했던 백성들의 처지와 본질적으로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현대 일본인 전체를 조선시대 백성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문자(한자)의 난해함과 구사 능력 부족 때문에, 사회 시스템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권리를 제약당하는 개인"을 상정한다면, 그 개인은 세종대왕이 구제하고자 했던 백성들의 눈물겨운 처지와 정확히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종대왕은 바로 그런 이들이 "쉽게 익혀 날마다 씀에 편안하게" 만들기 위해 한글을 창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