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함 "후드"의 침몰.
한편, 복수심에 불타는 영국 해군은 추격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었습니다. ‘후드’가 격침당하고 ‘프린스 오브 웨일즈’가 피해를 입는 동안, 대서양 각 해역에 흩어져 있던 영국의 함대는 전속력으로 몰려들고 있었죠. 짙은 안개 속에서 영국함대의 추적을 벗어나기도 하고, 영국 항모 ‘빅토리어스’에서 발진한 뇌격기 공습에도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은 비스마르크였지만, 운은 거기까지였습니다. 5월 26일, 오전 9시 영국 해군의 수상기 ‘카타리나’가 우연히 비스마르크를 발견합니다. “북위 49도 33분, 서경 21도 50분, 브레스트로부터 서방 750마일 해상에 속력 20노트, 침로 150도로 항진하는 전함 1척 발견”, 이대로라면 하루 뒤에는 독일 공군의 엄호가 가능한 영역으로 들어갈 판 이었죠.
영국 항모 "아크 로열"에서 "소드피시" 뇌격기들이 발진합니다.
항공모함 ‘아크 로열’에서 이륙한 ‘소드피시’ 뇌격기들이 비스마르크를 향해 달려듭니다. 캔버스 천으로 만들어진 복엽날개를 가진 소드피시 뇌격기들은 당시 기준으로 보아도 시대에 뒤떨어진 구식이었습니다. 하지만 비스마르크의 대공포들이 쏘아 대는 포탄세례에도 불구하고 소드피시들은 용감하게 날아와 어뢰를 떨굽니다. 2발의 어뢰가 비스마르크에 명중하죠. 한 발은 선체 측면의 두꺼운 장갑판에 부딪쳐 폭발했지만, 다른 한 발이 치명적이었습니다. 어뢰가 조타실에 적중한 것입니다. 때마침 비스마르크는 어뢰를 피하기 위해 왼쪽으로 한껏 선회하는 중이었는데, 2개의 방향키가 어뢰의 폭발로 왼쪽으로 고정된 채로 멈춰 버린 것이었죠. 이제 비스마르크는 방향을 바꾸지도 못하고 다가오는 영국 해군의 주력함대쪽으로 곧장 직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드피시 뇌격기들이 투하한 어뢰 2발이 비스마르크에 적중합니다.
5월 27일, 날이 밝아오면서 멀리 수평선상에는 영국 함대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전함 ‘킹 조지 5세’와 ‘로드니’, 순양함 ‘노포크’가 서서히 상처 입은 비스마르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죠. 오전 8시 47분, 전함 로드니의 사격을 시작으로 전 영국 함대가 포문을 열고 비스마르크에 포탄 세례를 퍼붓습니다. 로드니의 세 번째 일제 사격이 비스마르크의 1번 포탑에 적중하는 것을 시작으로 비스마르크는 만신창이가 되어갑니다. 상처 입은 맹수가 몸부림치듯 비스마르크의 승조원들은 필사적으로 응사했지만 중과부적이었습니다. 한 시간 동안 비스마르크에 적중한 명중탄은 600여 발에 달했습니다. 마침내 오전 10시, 비스마르크의 모든 포가 침묵합니다. 이미 사령관 ‘뤼첸스’ 제독도, 함장 ‘린데만’ 대령도 전사한 후였죠. 10시 15분, 지휘권을 인수한 기관장 ‘게르하르트 유나크’ 소령은 전원 퇴거 명령을 내립니다.
이제 타오르는 거대한 고철덩이에 불과한 비스마르크였지만, 여전히 자신의 운명을 거부하고 바다위에 떠있었고, 이 전함의 숨통을 끊어 놓은 것은 영국 구축함 ‘도세트셔’가 발사한 어뢰였습니다. 도세트셔는 비스마르크의 우현에 어뢰 2발, 좌현에 어뢰 한발을 발사했고 비스마르크는 큰 물기둥과 함께 가라앉기 시작합니다. 10시 40분, 비스마르크는 밑바닥을 하늘로 쳐들고 전복되었고, 선미 쪽부터 대서양 깊은 바다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죠. 9일전 출항할 때 비스마르크에 타고 있던 2천4백 명의 승조원 중 110명만 구조되었습니다. 전사자들 중에는 독일 해군 사관학교 생도 400명도 포함되어 있었죠. 임관의 영광도 누려보지 못한 20대 초반의 젊은 생도들이 피의 폭풍우에 휘말려 사라져 간 것입니다.
구조된 비스마르크의 승조원들은 110명에 불과했습니다.
비스마르크의 침몰로 ‘라이뉘붕’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고 독일 해군은 제해권 확보에 실패했습니다. 비스마르크의 침몰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거함거포’ (巨艦巨砲) 주의의 종말을 예고하는 것이었죠. 최신 전함이 구식 복엽기에 의해 치명상을 당하고 격침된 사건은 세계 각국의 해군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고, 이후 해전의 주인공은 전함에서 항공모함으로 옮겨 갔습니다.